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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칠레, 좌파에 이혼한 여성대통령 선택
중도좌파 바첼레트 결선서 53.5%로 당선, 남미 7번째 좌파정권 기염
 
최별   기사입력  2006/01/16 [18:14]
중도 좌파를 표방한 칠레의 미첼레 바첼레뜨 후보(54)가 16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53.5%를 얻어 사상 첫 여성대통령시대를 열었다고 BBC가 보도했다. 정적인 보수우파 연합 후보인 기업가 출신 세바스띠안 삐네라(56) 후보는 패배를 공식선언했다.

바첼레뜨는 그의 승리를 환호하는 수만명의 지지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선거사무실 앞 마당에서 거행한 대통령 수락 연설에서 “10년이나 15년 전쯤에 누가 칠레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올 것으로 예측했겠냐”며 “일자리 창출과 사회정의 실현 공약을 완성하기 위해 모든 국민이 힘을 모아 함께 해결하자”고 호소했다.

바첼레뜨의 대통령 당선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집권과 행보는 공고해지고 있다고 언론은 덧붙였다.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정권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정권(1999년 2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2005년~),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2003년~), 아르헨티나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2003년~), 우루과이 타바레 바스케스 대통령(2005년~), 에콰도르 루시오 구티에레스(2003년~)에 이어 7번째다. 4월 페루 대선에서도 좌파 여성후보인 루데스 플로레스 후보의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나타나 좌파정권 선풍을 반영하고 있다.

“가장 가부장적 나라에서 정치이변”

이 번 선거는 지난 1990년 17년간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 독재정권 지배 뒤 4번째 거행된 민주적 투표과정이었다. 리카르도 라고스 대통령은 첫 좌파 여성대통령 당선에 대해 “역사적 승리”라고 환호했다.

라고스 대통령은 97.5% 개표가 완료된 상태에서 46.5%의 표를 얻은 중도우파 연합 후보인 삐네라 후보도 바첼레뜨 후보의 당선을 인정했다. 그는 연설에서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수백만명의 여성 유권자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그들이 부른 변화를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BBC의 산티아고 통신원은 당선이 확정된 뒤 수만명의 바첼레뜨 지지자들이 길거리로 나와 국기를 흔들고 호루라기를 불며 그녀의 당선을 환호하고 있으며 거리를 지나는 자동차 운전자들도 축하경적을 울려대고 있다고 전했다. 결선투표가 마감되고 불과 3시간 만에 바첼레뜨 당선이 확실시 됐고 지지자들이 몰려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공약했었고 특히 여성과 인디오 등 소수 약자들의 권익을 적극 대변할 것으로 보인다고 방송은 전했다. 여성들의 경우 그녀의 당선으로 대거 공직 진출이 예상돼 고무된 분위기라고 현지 언론의 보도도 전했다.

그녀의 당선은 지난 12월 1차 투표에서 예고됐었다. 당시 46%를 얻은 그녀는 과반득표에 실패, 당시 25%를 얻은 보수우파 연합 후보인 삐네라 후보와 결선투표를 해야 했다. 하지만 삐네라 후보가 3위 후보(23%)였던 호아킨 라빈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결선이 박빙으로 갈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삐네라 후보는 라빈의 지지표를 모두 얻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칠레의 집권 중도좌파 연합인 ‘콘체르타시온’은 바첼레뜨의 대통령 당선으로 1990년 피노체트 군사정권을 몰아내고 집권한 이래 4번째 대통령을 낸 정치그룹이 됐다. 의사이자 한부모(편모, 칠레에서 이혼은 불법)였던 경력 때문에 바첼레뜨의 당선을 두고 이례적 선거결과라는 평가가 나라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칠레는 남미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가톨릭 성향의 문화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라고스 현 대통령 “역사적 승리”

바첼레뜨는 51년 산티아고에서 태어났다. 이 나라는 그녀가 태어나기 2년전인 1949년까지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71년 칠레대학 의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사회당 청년당원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살바도르 아옌데 좌파 대통령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희망과 불확실성이 교차하던 때였다.

바첼레뜨의 아버지는 공군 장군 알베르토 바첼레뜨로 아옌데 대통령이 72년 기용했다. 아옌데 좌파정권 하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카를로스 프라츠 장군과 함께 가장 존경 받는 군부 인물이었다. 프라츠 장군은 74년 피노체트(73년 쿠데타로 아옌데를 몰아내고 집권) 정권시절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바첼레뜨는 75년 1월 어머니 앙헬라 에리아와 함께 피노체트 비밀경찰(DINA)에 체포되기도 했다. 피노체트 정권이 좌파 활동가 검거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 때 그녀는 고문을 받았다. 그리고 모녀는 오스트레일리아로 감제 추방됐다가 동독으로 이사했다.

동독에서 바첼레뜨는 칠레의 건축가인 호르게 다발로스와 결혼해 2명의 아이를 두었다.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세바스티안(26)을 낳았고 산티아고로 79년 돌아간 뒤 프란시스카(21)를 낳았다. 그리고 1990년 첫 남편과 헤어진 뒤 역사학자 안토니오 헨리케스와 3년여 사귀며 셋째 딸 소피아(12)를 얻었다.

그녀는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지던 1990년 독재정권의 횡포(살해, 고문 등)로 부모를 잃은 고아를 돌보며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당시 에이즈 예방 프로그램의 활동에도 참여했다.

그녀는 1999년 사회당 정치위원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2000년 5월 대통령으로 당선된 리카르도 라고스에 의해 보건장관으로 천거됐다. 그리고 2년 뒤에는 국방장관으로 기용됐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첫 여성 국방장관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2004년 장관을 그만 둔 그녀는 대통령 선거를 준비했다.

피노체트 군사독재시절 고문피해

한편, 바첼레뜨의 정적인 보수우파연합 후보 삐네라는 기민당 출신의 대통령이었던 에두아르도 프레이 몬탈바(1964~70) 시절 벨기에와 유엔 대사를 지낸 엔지니어 출신 외교관 호세 삐네라의 아들이다. 하바드대에서 수학했으며 백만장자로 칠레 경제계에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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