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몸통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이른바 황우석 사태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한국사회의 온갖 병균을 그 한 몸에 걸치고 있는 괴물처럼 보인다. 황우석 교수의 비극에서 누군가는 경제개발 이후 고질이 돼버린 과정 무시와 결과 중시 풍토를, 과학의 진보와 역행하여 난자 공장으로 전락한 여성의 몸을, 누군가는 시민사회의 맹목적인 과학기술 떠받들기를, 또 누군가는 줄기세포를 돈방석으로 본 노무현 정부의 막무가내식 지원이 빚은 파국을 읽어내려 할 것이다.
최근엔 한동안 논문 조작 사건에 가려져 물밑으로 가라앉을 듯하던 난자 채취의 윤리 문제가 황 교수 연구팀 여성연구원의 난자 제공이 강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연구자가 자신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내주어야 하는 어이없는 현실은 대학 사회에 만연한, 교수의 ‘시다바리’로 전락한 대학원생들의 불우한 처지를 알려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교수 횡포…대학원생 짓눌려 주변의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 몸에서 난자를 제공해야 했다고 증언한 황 교수 연구팀의 여성 연구원, 그리고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에 가담했다고 스스로 실토한 김선종 연구원의 경우는, 정도야 물론 다르지만 서로 처지가 비슷한 점이 있다. 학문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젊은 연구자들이 하늘같은 교수의 횡포에 짓눌려 굴욕을 당하고 인생을 망치기까지 하는, 대학의 일그러진 학문 풍토를 잘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자 연구원은 제 몸에 대한 권리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실험도구로 전락하는 여성 연구원보다는 처지가 나은 셈이다. 기자회견에서 젊은 학자로서의 기백은 오간데 없고 자괴감과 무기력이 뒤덮고 있던 김 연구원의 얼굴은 일말의 부끄러운 빛도 비치지 않은 황우석 교수의 당당함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범죄의 교사자는 떳떳하기만 한데 잘못을 고백한 하수인은 보스를 대신하여 혼자 고초를 뒤집어써야 하는 현실은 건달의 세계에서나 가능할 듯하지만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 사회에서도 버젓이 활개치고 있다. 만약 김 연구원이 ‘윗전’의 부당한 지시와 압력을 거부했다면 그는 감당할 수 없는 수모와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까. 장담컨대 젊은 학자가 양심을 팔아 범죄자로 전락하는 일에 불응하는 대가는 결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건달 집단에서 말을 듣지 않는 신참을 곱게 봐주겠는가.
학생들의 무의식까지 점령 대학원 수업이 재미없어 하품을 하고 다니던 몇 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논문자격시험을 치를 즈음 모 교수는 자신의 소논문을 내주며 시험을 준비하라고 했다. 학자의 글이라고 해서 주눅이 들지 않았던 당시의 기고만장한 나는 그의 글이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교수의 견해를 따를 생각은 없었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더니 돌아온 반응은 낙제였다. 근거를 묻는 내게 교수는 틀린 답을 썼기 때문이라고 할 뿐 더 이상의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교수의 태도에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그 이후 그의 실명을 거론하며 여기저기에 퍼뜨리고 다녔다.
나중에야 자신의 이름이 명예롭지 못하게 떠돌고 있음을 알게 된 교수가 화를 낸 건 당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뜻밖이었던 건 평소에 교수들의 수업태도를 성토했던 동료 몇몇이 그때 내게 보낸 싸늘한 눈빛이었다. 대학원생의 무의식까지 지배하는 교수의 힘을 절감한 건 그 때였다.
교수를 정점으로 한 대학사회의 폐쇄성은, 학자로서 균형을 잃은 교수는 용납할지언정 바른말 하는 동료는 용서할 수 없는 학생들을 낳는다. 교수의 불명예는 곧 자신들의 불명예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교수에게 밉보이면 학위도 취직도 장래도 보장받을 수 없는 한, 대학원생들 스스로 교수의 그늘 속에 있고 그와 한 배를 탄 운명이라는 의식을 가지는 건 무리가 아닐 수도 있다.
제자를 학문적 동반자로 존중해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황 교수의 사퇴 기자회견에서 심청 부녀의 이별 대목인 양 눈물바다를 이룬 연구원들의 모습은 보기 딱하기도 했지만, 자신들의 미래와 엮인 사람을 잃는 상실감을 그들로서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교수가 무너지면 자신들도 끝장이라는 생각을 갖게끔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었던 게 그들 스승의 면모였다. 황 교수가 젊은 연구진을 함부로 대하는 데 맛을 들이지 않았어도 그의 비극은 어떤 식으로든 제동이 걸렸을 것이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http://www.dominilbo.co.kr) 1월 10일자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