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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수첩' 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영호 칼럼] 생명윤리를 제기한 것 못지않게 취재윤리도 지켜야
 
김영호   기사입력  2005/12/08 [12:37]

문화방송과 황우석 교수팀이 벌여온 배아줄기세포 진위를 둘러싼 공방이 엉뚱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취재과정을 들으니 ‘논문취소’, ‘검찰수사’니 하는 위협적 언사에다 ‘신분보장’ 운운하는 회유도 있었던 모양이다. 생명윤리를 짚겠다던 피디수첩이 그런 강압적 자세였다니 취재윤리를 망각하지 않았나 싶다.
 
취재자는 사실을 말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실 뒤에 숨은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 그 진실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은밀한 일이라면 두꺼운 허울을 쓰고 파묻혀 있거나 어둠에 가려져 숨어 있다. 그것을 햇빛 아래로 끌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다양한 취재기법을 쓰나 진실접근이 용이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까닭에 통상적 취재기법에서 일탈하고픈 유혹에 빠지기 쉽다.
 
국내에는 탐사보도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의미는 수사보도라는 표현이 옳다. 취재기법을 직업적 탐정의 수사기법에서 원용하나 불법적인 수단-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 ‘미신과 언론’의 저자이며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명예교수를 지낸 커티스 맥도우걸은 이 점을 주의하도록 당부했다. 체포나 해고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는 한 다른 이유로 무단침입, 대화염탐, 전화도청, 우편절취 따위의 불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협박도 여기에 해당한다.
 
취재원에게 취재목적-의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진실추구라는 명분이 좋더라도 가명취재나 잠행취재는 예외적 상황에서 극히 제한적이어야 한다. 아동학대, 정부부패, 의료사기, 형행비리 따위의 비리-부정을 고발하더라도 공분에 사로잡혀 표현을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를 전달하는데 충실해야 한다. 탐사기자는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진실추구는 하되 주창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탐사기자의 역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파헤쳐 널리 알리는 일이다. 하지만 비리-부정을 고발하되 편향적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반대자, 패배자의 주장이나 의견에 매몰되면 취재내용이 균형감을 잃는다. 그들은 상대방에게 무엇이 유-불리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1947년 발간된 미국 허친스 위원회 보고서도 이 점을 충고한다. 또 복수 취재원의 원칙을 지켜야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생명의 시기는 어디일까? 수정설, 진통설, 노출설, 호흡설 등 양심과 신념에 따라 다양하다. 같은 의학자, 신학자, 법학자일지라도 다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낙태문제를 둘러싼 찬반격론이 뜨겁다. 이 나라에서는 불법낙태가 연간 백만건 단위로 자행되지만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적이 없다. 형법이 엄연히 낙태금지를 규정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과문한 탓인지 낙태죄로 처벌받은 사례를 듣지 못했다. 생명윤리가 마비됐다는 뜻이다.
 
이런 현실에서 피디수첩이 난자취득과 관련하여 생명윤리를 제기한 것은 그 자체로 의미하는 바 크다. 국민적 우상으로 떠오른 황 교수를 상대로 하는 문제제기이니 대중적 저항도 각오했을 것이다. 하지만 취재과정을 보면 자만심에 빠져 사정기관의 지위를 향유하려 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그 진실은 무의미하다. 대학에서도 취재현장에서도 탐사보도와 취재윤리를 전문적-체계적으로 교육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만하다. 피디수첩만의 문제가 아니다.
 
* 본문은 <한겨레> 12월 8일자에 게재됐습니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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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2/08 [12:3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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