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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재벌2세인가 노동자후보인가
[전격분석] 2002년 노동자의 선택을 전망한다ba.info/css.html'><
 
박태주   기사입력  2002/09/25 [11:48]
{IMAGE2_LEFT}월드컵 당시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의 성적에 따른 히딩크 감독의 거취를 가상한 우스개 소리들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 "한국이 16강에 진출에 실패하면 언론의 '히딩크 죽이기'가 시작되고 쓸쓸히 고국에 돌아간다"로 시작되는 이 유머는 "4강에 오르면 히딩크와 정몽준이 '축구당을 만들어 정계에 진출, 제1당이 된다"는 데 이어 급기야 "결승에 오르면 히딩크파가 정몽준파를 제압, 일당독재가 시작된다. 또한 전국 각지에 히딩크 동상이 세워진다"로까지 발전하였다. 다행히(?) 월드컵은 4강으로 막을 내렸고 경기이후 히딩크 감독은 귀국하였지만 정몽준이 '축구당'을 만들어 제1당이 된다는 시나리오는 우스개 이상의 신통력을 가진 듯이 보인다. 지난 9월 18일, 정몽준 의원은 "성공적인 월드컵을 주도한 데 대한 국민의 호감표시"를 바탕으로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였다. 출마선언을 하는 정몽준 의원의 뒤에는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월드컵 섹션이 붙어있었다. 지지도에서도 이회창 후보와 막상막하를 다투고 있다. - 사진출처 : 스투닷컴

축구가 정치를 이긴다?

그러나 1989년, 겨울의 울산은 테러가 난무하던 무법천지로서 2002년의 월드컵 열기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른바 용역깡패들이 파업중인 현대중공업 노조에 대한 지원을 논의하던 현대중전기 노조간부들과 해고자를 곡괭이 자루로 난타하는가 하면 현대그룹 해고자 사무실을 습격하여 현대엔진 노조간부들에게 테러를 자행했다. 이어 달포 뒤에는 500여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된 가운데 갱 영화를 방불하게 하는 식칼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는 백주의 테러가 현대중공업에서 벌어졌다. 당시 현재중공업의 회장은 정몽준이었다.

이어 1990년 4월에는 헬기의 엄호를 받으며 정문으로, 바다로 진입하는 경찰병력에 밀려 현대중공업 노조의 파업지도부는 450톤을 들어올리는 골리앗 크레인으로 올라갔다. 식수마저 끊긴 채 단식으로 맞서던 이들은 결국 밑으로 내려오고야 말았다. 소설가 방현석은 골리앗 투쟁의 마무리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1990년) 5월9일, 지상과 통신마저 중단된 상태에서 14일간을 82미터 상공의 골리앗 크레인에서 버텼던 노동자 51명은,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되고자했던 그들은, 한 마리의 외로운 늑대가 되어 지상으로 내려왔다". 이후 당시 투쟁을 이끌었던 이갑용 비상대책위원장은 나중에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당선됨으로써 골리앗 투쟁이 민주노총의 상징임을 다시 확인하였다.

* 편집자-위 글은「위클리 솔」(2002. 9. 30)에 발표될 내용을 전재한 것 입니다.

87년 7~8월, 우리나라 노동운동에서 민주노조의 불을 지폈던 바로 이 노동조합이 최근 집행부 교체를 계기로 정몽준 고문의 대통령 출마에 대해 찬성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현대중공업 노조만이 아니다. 여론조사(대한매일, 8.26)에 의하면 블루칼라의 35%, 사무전문직의 32%가 정몽준을 지지하여 정몽준 의원은 출마도 선언하기 전에 노동자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쯤 되면 노사관계가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는 어느 주간지의 기사는 수정되어야할 판이다.

과학으로 위장한 바람, 여론조사

정몽준 후보의 이미지가 월드컵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좋은 학벌과 비교할 수 없는 재력, 세련된 매너, 그리고 뛰어난 국제감각 등 어느 이미지 하나 노동자들로서는 언감생심, 혹하지 않을 요소가 없다. 그러나 정치가로서 그의 이미지가 축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 그것이 정책이나 이념과는 무관하다는 지적도 이제는 사족일 뿐이다. 지역주의의 틈바구니를 헤치고 여론의 이름 아래 이미지가 바람으로 바뀌는 판에 정책이나 이념이란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 1700억원대의 재산을-그것이 경영의 대가라지만 노동자의 눈으로 보면 착취의 결과일 수도 있는-가진 재벌2세를 노동자가 맨발벗고 맞이하는 역설이 여론조사를 빌미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더 이상 계급이 아니라는 주장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더욱이 국민의 80%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동네에서 '계급'이 자리할 공간은 그다지 넓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이미지 조작에 놀아난다면 결국 노동자들의 권익이 정치적으로 실종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정치를 혐오하고 정치가를 백안시한다고 해서 노동자의 삶에 파고드는 정치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주5일 근무제가 그러하고 병원 파업에 투입되는 경찰력도 결국은 정치의 몫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통해, 그리고 한국노총이 '개혁적 국민정당'을 창당함으로써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꿈꾼다는 것은 반길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각개약진이 전체 노동자의 10%에 지나지 않는 '조직된 소수'를 편가르고 나아가 독자적인 정체세력화의 이름아래 노동자들의 정치적 소외를 부추긴다면 그 전술은 재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스로의 지지기반을 재벌에게 넘겨주고 제 발로 설 수 있는 공간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정당에 구걸하지 않는 노동운동'을?

{IMAGE1_RIGHT}"더 이상 보수정당에 구걸하는 정치운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노총이 개혁적 국민정당을 띄우기로 하면서 내놓은 구절이다. 정치적 온실에서 살아온 한국노총으로서는, 지금도 334억원이라는 정부지원금으로 '새 회관'을 짓느라 마포에서 셋방살이를 꾸리고 있을 뿐 아니라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함으로써 정부에 대해 자기의 존재를 확인 받아온 한국노총으로서는, 실로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라 할 것이다. 과연 한국노총은 이로써 파생될 정치적 소외를 감내할 각오가 되어있는가?

총연맹이 수행하여야 하는 역할의 하나가 노동자들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상황은 민주노총의 경우라고 만만한 것은 아니다. 단위노조는 문제가 생겨도 더 이상 연맹이나 민주노총의 정치적 영향력을 믿지 않는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에 매달려 기존 정당과 경쟁관계를 형성하는 순간 하부단위의 지도부는 여의도에서 침맞은 지네마냥 정치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위원장 재임중 현장문제를 들고 조합원 앞에서 폼나게 이야기하고,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을 찾아가, 의원도 아닌 보좌관·비서관에게 도움을 청했던 내 모습이 왜 그리 초라하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내로라하면 알만한 어느 단위노조 위원장을 지냈던 분의 고백이다. 독자정당의 앞날을 이레씩이나 굶고 맞이하는 생일상마냥 기다리며 그들은 속으로 수모를 견디는 것일까?

이러한 상황에서 스스로의 뱃속에서 노동당을 잉태하였다는 영국노총(TUC)이 '정당정치로부터의 독립성'을 주장하고 사민당과 더불어 독일의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독일노총(DGB)이 정치로부터 '독립적이나 중립적이지는 않다'고 선언한다는 이야기도 결국은 바다 건너 논리일 뿐이다.

권력의 획득과정에 참여하라

사실 오늘날 노동조합운동은 '위기'라는 말이 허투루 내뱉는 협박이 아닌 현실로 다가드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한 학자는 진보정당의 물적 기반을 형성하는 노동조합운동이 '뒤늦은 성장과 때 이른 쇠퇴'로 특징지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노동자의 절대 다수가 노동조합의 바깥에 내팽개쳐져 있는가하면 조직된 소수조차 기업별 체계로 파편화되고 양대노총체계로 분단되어 있는 실정이다. 상층부가 계급이라는 이념과 전투주의를 금과옥조인 양 섬김으로써 스스로 사회적 소외를 택하는가 하면 하부단위는 실리주의에 젖어 직업적 이해기관으로 전락하고 있기도 하다. 더욱이 지식정보화사회와 기술의 발전이 산업구조와 인력구조를 변화시키고 신자유주의의 그늘에서 노동자의 개인주의화와 탈정치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한다면 노동조합운동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조차 오리무중인 상황이기도 하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동토(凍土)에서 이루어지는 진보정당 운동은 영악하여야 한다. 노동자의 정치적 소외를 부추기지 않으면서 정치세력화를 일구어내는 한편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여야 한다는 딜레마를 뚫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민주의정당(민주노동당이나 한국노총이 추진하는 '개혁적 국민정당'은 죄다 사민주의 정당이다)으로서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전술적인 측면에서 중간계층과 진보적 부르조아지와의 정치적 연대를 통해 개혁정치를 추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영국의 경우 노동당의 초기에 나타나는 자유-노동연대(Lib-Lab Alliance)가 대표적이다. 만일 사민주의 정당이 계급동맹의 가능성을 배제할 경우에는 쉐보르스키가 주장하듯 "그 계급적 성격은 단일하지만 선거에서는 영구히 패배를 맛볼 수밖에 없는 당이거나 아니면 계급적 성격이 희석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선거에서의 성공을 위하여 싸우는 당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보수정당의 개혁적인 부분과 연대하여 권력의 획득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제안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 속에서 진보를 끌어내지 못하고 교과서적인 원론을 현실에 적용하려는 것은 '진보'가 아니다.

제 밥그릇 챙기려다 밥상을 엎어서야

정몽준을 따르는 노동자를 반노동자적이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다수가 정몽준 후보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하며 그 과정은 어떠해야하는가를 진지하게 되물어볼 일이다. 스스로의 정체성 상실을 우려하여 연대를 꺼린다면 자칫 제 밥그릇 챙기려다 밥상을 엎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독일에서는 녹색당이 연정에 참여하고 얼마 전 스웨덴에서도 녹색당이 좌파와 함께 사민당과 연대하여 총선에서 승리를 기록하였다. 그렇다면 독일이나 스웨덴에서 녹색당의 정체성은 없어져 버렸는가? 정말로 '노동자 계급정당'만이 유일한 출구인가?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아닐 것인가? 식칼테러와 해고, 산업재해가 판치던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정몽준 후보의 부상을 지켜보면서 되짚어보는 물음이다.

* 필자는 현재 전국연구전문노조 지도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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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9/25 [11: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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