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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균형자 역할'과 한반도 중립화
[논단] 강대국 분쟁에 휘말리지 않는 한반도 중립화 방향으로 나가야
 
이재봉   기사입력  2005/06/06 [17:10]
 2005년 2-3월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기된 동북아 균형자 역할과 관련하여 남한의 외교 안보 정책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이른바 ‘동북아 균형자론’에 관해 노대통령이 약 1달 사이에 공식 연설을 통해 적어도 4차례나 언급했으니 요즘의 한반도 주변 정세에 비추어 상당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의 발언 2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2월 25일 대통령 취임 2주년 기념 국정 연설에서, “우리 군대는 스스로 작전권을 가진 자주 군대로서 동북아시아의 균형자로서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굳건히 지켜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3월 30일 외교통상부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는, “우리 외교는 동북아 질서를 평화와 번영의 질서로 만들기 위해 역내 갈등과 충돌이 재연되지 않도록 균형자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대상과 방법이다. 첫째, 무엇의 균형을 이루겠다는 것인가? 앞에 소개한 노대통령의 발언을 정리해보면 동북아 균형자 역할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갈등이나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 다른 목표와 요구들 사이의 균형을 취하겠다는 것으로, 이에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한편 미국과 일본이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거나 봉쇄하는 데 편들지 않겠다는 의도도 포함된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과 의혹이 제기되자, 국가안전보장회의는 “한국, 중국, 일본은 숙명적 동반자로서 이 3자 사이에 발생한 양자적 갈등 및 위험성을 우리가 조절하고 균형을 잡는 게 동북아 균형자론의 핵심”이라고 밝혔고, 동북아시대위원회에서는 “미국과 중국간의 세력 균형 조정자 역할이 아니라 향후 중국과 일본간 갈등의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노대통령까지 나서서 “동북아 균형자론은 일본의 군비를 합법화, 강화하는 논의가 한창 진행중일 때 준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둘째, 균형을 어떻게 이루겠다는 것인가? 이 역시 앞에 소개한 노대통령의 발언에 따르면, 군사적으로 작전권을 되찾아 외교적으로 유연성을 발휘함으로써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주한미군이 갖고 있는 한국군의 작전권을 돌려받음으로써 “스스로 작전권을 가진 자주 군대”가 되어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란 뜻이다. 이와 아울러 미국에 무턱대고 끌려가지 않고 “따질 것은 따지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면서” 미국에만 편들거나 의존하는 경직된 외교에서 벗어나 유연한 대외 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위와 같은 동북아 균형자 역할에 대해 남한과 미국에서 주로 보수-수구 성향의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이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비판의 내용은 남한이 무슨 힘이 있다고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국제정치학의 ‘세력 균형 이론’을 끌어들여 ‘동북아 균형자론’을 비판하고 있는데, ‘균형자’라는 국제정치학 용어를 좁게 해석하면 그러한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세력 균형’은 한 나라 또는 국가 집단이 패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고 나라들 사이에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상태나 정책 또는 체제를 일컫는 것으로, 서로 대립하고 있는 두 나라 또는 두 국가 집단 사이에서 자국의 힘을 어느 한 쪽에 보태 줌으로써 이를 실현할 수 있는데, 이러한 ‘균형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19세기 영국이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처럼 세계 최강대국이나 그에 버금가는 정도의 힘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정부의 대외 정책 관련 책임자들이나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노대통령과 참여 정부의 구상에 대해 세력의 균형자가 아닌 평화와 협력의 균형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정책이나 사안에 따라 다른 나라와 협력과 공조를 이루겠다는 뜻이다. 또한 ‘동북아 균형자론’이 국제정치학의 ‘세력 균형 이론’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개념이 좀 다르다고 설명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힘은 군사력과 경제력 등 강성 권력 (hard power) 만을 지칭하지만, 21세기적 의미의 힘은 거기에 정치력, 외교적 조정력, 문화적 친화력, 도덕적 정당성이나 매력 등 연성 권력 (soft power)이 덧붙여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힘에 의한 균형자 역할보다는 협상과 중재에 의한 평화 촉진자로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박은 일종의 옹색한 해명이나 구차한 변명으로 들린다. 노대통령은 분명히 남한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거론하며 ‘세력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북한 핵무기 개발을 둘러싸고 북미 갈등이 심화하고 미국의 폭격이나 침략 위협이 증대되는 한편,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이 노골적으로 군사 동맹을 강화하는 마당에 시의 적절하게 바람직한 대외 정책 노선을 밝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수구 성향의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의 억지 섞인 비판에 떳떳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이러한 해명이나 변명을 내세우는 배경은 ‘동북아 균형자론’이 한미 동맹을 약화할 것이라는 비판이나 우려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기득권층에는, 심지어는 ‘참여 정부’의 대외 정책 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관리들 가운데도, “미국인들보다 더 친미적”이며 미국 없이는 하루도 살기 어렵다는 식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 정부의 권력은 2-3년으로 유한하지만, 미국의 영향력은 영원 무궁하리라는 생각을 갖고 일하는 관료들이 적지 않다고 하지 않은가.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의 정책을 추종하고 미국의 비위에 거슬러서는 안되며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만 국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들은 다음의 물음에 어떻게 답할지 궁금하다. 만약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부추겨도 미국을 추종해야 하는가? 미국이 남북 관계나 한중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도 미국을 비판할 수는 없는가? 한미 동맹이 남북 사이의 화해 협력과 평화 통일 그리고 동북아의 안정과 번영에 걸림돌로 작용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튼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하든 조정자나 촉진자 역할을 하든 한미 동맹이 그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보수-수구 세력의 비판을 우려하여, 남한 정부는 자주 국방도 한미 동맹 속에서 이루고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도 한미 동맹의 틀 안에서 수행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2000년대로 접어든 뒤로는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안정에 가장 큰 위협이 미국과 일본의 동맹 강화 및 패권 추구인데, 어떻게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면서 상대국들과의 갈등을 조정하고 평화를 촉진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경성 권력이든 연성 권력이든 상대적으로 적은 국력을 지니고도 주변 강대국들 사이의 갈등이나 분쟁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방안으로 한반도의 중립화를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글이나 강연을 통해 여러 차례 중립화에 관해 주장해왔으므로 북녘 당국이 주장하는 한반도 중립화의 당위성에 관해 아래에 소개한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이 견지하여야할 활동 원칙은 자주, 민주, 중립, 평화이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국가 활동에서 중립 로선을 견지하여야 한다. 련방 공화국이 중립 로선을 견지하여야 하는 것은 두 가지 요인에 의하여 규제된다.
 
  그 하나는 련방 공화국이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를 가진 두 지역 사이의 련방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사정과 관련된다. 련방 공화국은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를 가진 북과 남 사이의 련방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어느 특정한 나라에 편중하는 정책을 실시하거나 어떤 정치 군사 동맹이나 쁠럭에 가담하면 불가피하게 통일 국가 내부에서 모순이 생기고 분쟁이 발생할 수 있으며 결국 련방 국가 자체의 존재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련방 공화국이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 우에 형성되는 것만큼 대외적으로 중립 로선을 견지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이 중립 국가로 되여야하는 것은 이런 내적 요인과 함께 외적 요인에도 기인된다. 국제 관계에서는 나라들 사이의 리해 관계가 복잡하게 엉켜있고 세력권 쟁탈을 위한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간섭이 끊임없이 강화되고 있다. 더우기 우리 민족은 력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다. 이런 형편에서 통일 국가가 자기의 존립을 보존하고 민족적 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대외적으로 중립 로선을 견지하여야 하며 친선과 호의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 친선 협조 관계를 맺어야 한다.... (심병철, ??조국통일문제 100문 100답??, (평양출판사, 2003), 31-33, 89쪽).”
 
  * 위 글은 5월 27일 '민족화합운동연합'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동북아 균형자 역할과 한반도 중립화”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논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 필자는 원광대 교수로서 '남이랑북이랑'(http://pbpm.hihome.com/)의 편집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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