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제5공화국'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두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지난 시간을 조금만 되돌려 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전두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사그러지는 듯하다가 다시금 살아나곤 했다. 잊혀져가던 전두환은 이러 저러한 사건들을 통해 세인들의 기억속으로 화려하게 귀환하길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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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노태우와 전두환 ©인터넷 이미지 자료 |
그로 인해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膾炙)된 단어들은 대략 백담사, 골목성명, 성공한 쿠데타, 전 재산이 29만원 등이다. 한 마디로 전두환은 마르지 않는 '뉴스 메이커'인 셈이다.
뭇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려있음을 알아서일까?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전두환은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를 이끌고 1일 오전 대전국립현충원을 찾아 12.12 쿠데타의 주역 중 일인인 故 유학성 등의 묘소를 참배했다고 한다.
전두환 내외가 참배에 나서자 현충원측은 참배급수를 A급으로 정하고 현충원장이 직접 집례관으로 나섰다고 한다. 전두환 내외 등에 대한 현충원측의 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 예정된 묘소마다 의장대와 헌화병, 나팔병을 배치하고 심지어 별도 병력을 통한 호위까지 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번 전두환 내외의 현충원 방문은 우리들에게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첫째는, 전두환과 그 추종자들이 여전히 12.12 쿠데타와 광주민중학살 등에 대해서 일말의 회개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의 새삼스러운 확인이다. 그와 그의 측근들이 군사변란과 광주학살에 대해서 진정으로 반성하는 마음이 추호라도 있었다면 감히 군사변란의 주역 중 한명이 누워있는 묘소를 참배할 염(念)은 품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니 말이다.
둘째는, 전두환 내외 등을 극진히 영접한 현충원측의 태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국사회가 여전히 전(前)독재자의 자장(磁場)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전(前)독재자는 아직까지도 소멸되지 않은 정치적 영향력과 만만치 않은 문화적 위세를 뽐내고 있는 중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진작에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거나 아직까지 감옥에서 복역하고 있어야 할,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 영역 밖으로 진작에 사라졌어야 할 이 희대의 학살자가 여전히 호강을 누리며 당당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들에게 깊은 절망과 비탄을 안겨준다.
그 절망과 비탄은, 시민들이 피흘려 이룬 절차적 민주주의가 오히려 학살자와 그 측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낭패감에서도 일부 기인하지만, 아직도 학살자와 그 측근들을 두호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한국사회 안에 적지 않게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더 많이 연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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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다음 포털싸이트에 개설된 전사모 © 다음 전사모 홈페이지 |
군사반란과 민간인 학살, 그 넓이와 깊이에서 짝할 상대를 찾기 어려울 경지에 이른 각종 부정과 비리, 고문과 의문사, 강제징집 등으로 상징되는 숱한 인권유린과 극단적 노동탄압 등을 저지른 원흉이 전두환임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대한민국에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재임시는 물론이려니와 그의 죄상이 비교적 소상이 드러난 현재까지도 그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이 한국사회 안에 존재하는 현실 앞에서 가슴은 답답해만 온다.
도대체 권선징악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한국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을까? 만고에 떳떳한 학살자를 보고 있노라면 짙은 회의만 더해간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악행의 최대치를 저지른 자가 그에 상응하는 처벌도 받지 않고 여유만만하게 천명을 다하는 사회에서 윤리와 도덕이 제대로 뿌리내리길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두환과 그 측근들에 대해서 법적 처벌은 아니더라도 도덕적 단죄가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전두환과 그 측근들을 사회적으로 철저히 고립시키고 매서운 여론의 비난에 노출시켜 아무런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은 이미 존재조차 희미해져가고 있는 한국사회 안의 윤리와 도덕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다.
한국사회 안에 한 줌의 도덕이 남아있다면, 전두환과 그 측근들이 별 다른 사회적 비난에 시달리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일만은 막아야 할 것이다. / 편집위원
* 필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