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마저 탄핵홍수에 익사하는가?이건희 회장의 명예박사 수여식 파행으로 촉발된 고대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마침내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탄핵을 당한 것이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자발적인 서명을 통해 탄핵을 당한 것은 고대 100년 역사상 처음이라고 하는데 탄핵을 주도한 주체는 '평화고대'라는 학생모임이라고 한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평화고대 측은 "학위수여와 시위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평화시위 약속을 깨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출한 총학생회에 대해 수차례 사과를 요구했지만 거부했다"며 "서명운동을 근거로 총학생회장단 탄핵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정작 이번 사태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이건희 회장은 역시 한국 최고 기업군의 총수답게 의연하건만, 미구에 닥칠 후환(?)이 두려운 때문인지 오히려 고려대학교 안에서 마녀사냥이 한창 진행되는 것 같아 볼썽 사납기 그지없다.
고려대학교측에서 이건희 회장 학위 수여 반대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상벌위원회에 회부할 방침을 굳힌 것도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일일진대, 이제는 한 술 더 떠서 같은 학생들이 만든 모임이 주동이 되어 총학생회에 대한 탄핵까지 발의하는 마당이니 말이다.
'평화고대'의 이번 탄핵안 발의 주도는 한 마디로 매우 적절치 못한 것이다.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이번 고대 사태는 웃어 넘길 수 있는 해프닝에 불과했다. '평화고대'측에서 총학생회측의 의사표현 방법이 정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에 대한 비판을 하면 그 뿐일 것이다.
그런데 탄핵발의라니!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하지 않는다고 총학생회를 탄핵한 지금의 사태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 대통령을 탄핵했던 작년 3월의 정국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탄핵의 명분에서부터 사과하면 탄핵하지 않을 수 있다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과거 보수정당과 현재 '평화고대'의 행태는 높은 수준의 근친성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군사정권에 의해서 어용학생회가 조직되었던 시절에도 없었던 탄핵이라는 단어의 등장은 차라리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도대체 그 무엇이 고대생들을 저토록 분노하게 한 것인가? 학위 수여식장에서 있었다는 몸싸움이 그들을 격분케 한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보다 수백배는 더한 폭력이 한국사회 도처에서 자행되고 있지만 고대생들이 그리 격하게 반응했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없으니 말이다.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그러는 것 같지도 않다. 한승조 교수의 망언이 이어질 때에도 고대생들의 반응은 걱정스러울 만큼 미온적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역시 취업문이 좁아질 것에 대한 우려가 격렬한 분노로 전화한 것인가? 진정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현재 고대생들의 분노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듯 싶다. 학살자들의 총칼에도 굴함이 없이 늠름했던 선배들의 빛나는 기상은 가뭇없고, 취업에 대한 근심으로 사리 분별 마저 흐려진 듯한 고대생들의 모습은 참으로 비감할 따름이다.
물론 먹고사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고 대학생들도 취업의 근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최근 고려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마치 희생제의에 쓰일 제물을 찾는 듯 여겨져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다.
모쪼록 고대생들이 지금의 격앙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서로를 보듬어 안는 지혜를 발휘해줄 것을 당부한다. 자랑스러운 고려대학교의 역사에 암울한 기억을 덧칠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 편집위원
* 필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
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