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DJ 친필유고' 마침내 공개…MB '맹성토'
올초 부터 병원입원 직전까지 기록…"독재자, 역사의 가혹한 심판 받아와"
 
이석주   기사입력  2009/08/21 [10:09]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올초 부터 병원 입원 직전 까지 기록한 100여일 간의 친필 일기 중 일부가 21일 오전 언론에 공개됐다. 일기의 제목은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이며, 2009년 1월 1일부터 6월 4일까지 작성한 2권의 책자로 구성됐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친필 일기를 통해 삶에 대한 성찰과 감사, '평생의 동반자로서' 이희호 여사에 대한 사랑 등을 표현했으나, 민주주의 후퇴 위기와 경색된 남북관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선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 맹비난
 
앞서 김 전 대통령 측 최경환 비서관은 20일 저녁 브리핑을 통해 "고인의 친필 유고를 소책자 형태로 정리해서 21일 오후 전국 분향소에 배포하겠다"라고 밝힌 뒤, 21일 오전 장의위원회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PDF파일 형태로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일기가 된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장의위원회

특히 최 비서관이 일기 내용을 처음 접한 뒤 "전율을 느꼈다"고 말한 점과 고인의 일기 작성 시기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과 '민주주의 후퇴' 비판이 강력 제기된 시기와 맞물려 있어, 일기에 담긴 내용에 비상한 관심이 쏠렸었다.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한 지난 5월 23일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슬프고 충격적"이라며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고 밝혔다.
 
특히, 논란이 됐던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를 거론, "수사기밀 발표가 매일같이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5월 29일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당일엔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전 대통령, MB 겨냥한 듯 "모든 독재자, 역사의 가혹한 심판 받어"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이 생전 이룩해 놓은 민주주의와 남북관계가 이명박 정부 이후 후퇴 위기와 경색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대통령은 1월 16일 일기를 통해선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을 우려한 듯,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정부의 '수수방관'적 태도로 현재까지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는 '용산 참사'와 관련해선 1월 20일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방한했던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의 전화통화 내용을 거론, "힐러리 여사가 뜻밖에 전화한 것은 나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표명으로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에 대한 메시지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나아가 지난 3월 10일엔 "미국의 북한 핵문제 특사인 보스워스 씨가 방한했다가 떠나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전화를 했다. 개인적 친분도 있지만 한국 정부에 내가 추진하던 햇볕정책에의 관심의 메시지를 보낸 거라고 외신들은 전한다"고 소개했다.
 
▲ 일기 내용.     ©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장의위원회

고인은 지난 5월 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해선 "참으로 개탄스럽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도 아쉽다. 북의 기대와 달리 대북정책 발표를 질질 끌었다. 이러한 미숙함이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관심을 끌게 하기 위해서 핵실험을 강행하게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 예상한 듯 "이 세상 바랄 것이 무엇 있는가. 후회 없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은 이희호 여사에 대한 애뜻한 정과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느꼈을 인생의 마지막 순간, 파란만장한 한국 정치사와 함께 한 자신의 정치 역정에 대한 소회 등도 일기를 통해 여실히 드러냈다.
 
고인의 일기를 보면, 년 초에는 작성 간격이 하루 이틀로 돼있으나 5월이 넘어가면서 부터는 더욱 길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령이었던 김 전 대통령이 폐렴 증세 등 병마와 싸우던 힘겨운 상황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2월 7일),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5월 2일)
 
김 전 대통령은 3월 18일 자 일기를 통해선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고 말했으며, 4월 27일엔 "4시간 누워 있기가 힘들다. 나는 많은 고생도 했지만 여러 가지 남다른 성공도 했다. 이 세상 바랄 것이 무엇 있는가"라고 회고했다.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1월 6일)
 
김 전 대통령은 지난해 촛불정국과 관련해서도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 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2월 18일)고 말했다.
<대자보> 사회부 기자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9/08/21 [10:09]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