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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순홧팅 2008/09/25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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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역할에 관하여..
    필자의 예리한 시각이 돋보이는 글입니다.
    우리 문학풍토가 필자의 말처럼
    권위적인 서열체제로 형성되었다면
    정말 큰 문제로군요.
    필자의 말처럼 문학이 우리네 삶에 기여하는 바가 클진대
    문학계의 타락정도가 이 정도라면 앞으로 별 기대할 게 없어 보입니다.
    사대주의적 관점일진 몰라도 우리 문학계는 어찌 중국의 루쉰같은 사람이
    안나오나 안타까웠는데 (사실 나는 옛날에 필자가 자주 언급하는 황석영이나 박완서에게 그런 기대를 가졌습니다만)다 이유가 있는 게로군요.
    창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표절을 관행으로 알고 있음 안되지요.
    젊은 작가들이 서열체제에 주눅이 들면 더욱 안되지요.
    그런 봉건적인 악습에 누구보다 분개하고 타개해야할 사람들이
    바로 문학인들 아니겠습니까.
    문학인들이 이슬만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회사원이나 조폭조직의 일원은 더욱 아닐 것입니다.
    그런 짓할려면 문학인이라는 허울을 벗고
    장사치나 폭력배로 나서야지요.
    문학은 문학인의 자존심입니다.
    그런 자존심을 상업영역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하여
    거대 문화권력에 종속되고 끼리끼리 패거리지어
    철밥통을 지키려는듯한 모양새에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루쉰은 병든 중국을 구하려고 몸의 병을 고치는 의학을 포기하고
    문학을 선택했습니다. 마음의 병고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는 문학을 통하여 중국을 당장 다 구하지는 못했어도
    미몽에 빠져있던 수많은 중국사람들을 각성시키고 계몽시켜
    오늘까지 중국사람들의 찬란한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어찌 중국뿐이겠습니까.
    루쉰을 존경하고 흠모하는 전세계의 양식있는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습니까.
    루쉰은 생전에 중국인의 악습과 병폐를 가혹하리만치 비판하여
    "중국인이면서 어찌 저렇게 중국사람을 비판할 수 있느냐
    저 놈이 중국망신을 다 시킨다"고 비방 받아왔지만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중국의 가장 위대한 자랑 중 하나가
    바로 루쉰같은 작가를 가졌단 것 아니겠습니까.
    중국망신은 커녕 중국을 자랑하는 일등 공로자가 바로 루쉰이었던 것입니다.

    영국의 섹스피어는 말해 또 무엇하겠습니까.
    이처럼 문학의 힘은 위대합니다.
    우리네 박완서같은 작가는 "나는 대설가가 아니라 소설가일 뿐이다"라고
    겸손해하지만 겸손도 지나치면 비굴이 됩니다.
    나는 지금도 안타까운 것이 젊은 시절 박완서의 사회를 바라보는
    그 예리한 시각이 어디로 사라져버렸나 하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어, 불우한 개인사의 연속으로 혹은 달관의 철학관으로
    변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이유를 필자가 언급한 문학인들끼리의
    정실의 관계에 묻혀 사라져 버렸다고 추정합니다.
    대설가가 아닌 소설가인 박완서는 그 인간적인 사슬의 댓가로
    그 예리함을 집어 던져버렸다고 말입니다.
    그같은 예는 참 많습니다.
    춘원 이광수와 당시대의 여타 문인들과의 관계도 그런 것입니다.
    춘원이 끼친 문학인의 폐해는 정말 커다란 것이었는데도
    그를 가까이했던 문인들(이들 대부분이 해방후 남한의 대표적인 문학인들이죠) 누구 하나 춘원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춘원은 인간미가 좋은 사람이었고 사회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이
    중론이었습니다. 인간미좋은 춘원과의 각별한 교류 때문에
    감히 그를 비판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진실을 바라는 독자들은 비방이 아니라 비판을 원했던 것이었음에도 말이지요.
    이것이 필자가 개탄하는 문학계 정실풍토의 전형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속만 터지는 정치관계글 일색에서
    이렇게 문학을 통하여 우리 사회를 조명하는 필자의 글을
    대자보에서 보는 것은 참 기분좋은 일입니다.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