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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진보노선은 구소련노선을 닮았고 실패로 끝나
친북과 반미는 진보의 공통분모, 방향과 목표밝혀 밑그림 완성해야
 
자유기업원   기사입력  2004/07/30 [01:40]
* 본문은 '자유기업원 http://cfe.org '에 게재된 김영환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의 기고문입니다. 대자보가 자유기업원의 기사를 소개하는 것은 대표적 우익그룹의 사고를 엿볼 수 잇기 때문이며, 그들의 세계관을 이해한 연후 대응하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에 대한 네티즌 여러분들의 다양한 입장과 반론, 특히 경제논리에 입각한 비판기사를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주.
 
진보의 원형
 
노무현정부 출범 이후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보와 보수 논쟁은 시간이 갈수록 온 국민을 적과 동지로 갈라놓아 충돌을 향한 대결분위기가 조성되는 느낌입니다. 심지어 행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의견까지 진보와 보수반동관계로 규정되기 시작했습니다. 탄핵 때 벌어진 일사불란한 홍위병형 무차별공격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합니다.
 
한국에서 몸통은 가려진채 진행되고 있는 진보와 보수간 언어유혈충돌 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소련역사(Dimiterko, D and Pugachev, V., What is the Working People's Power?, Progress Publishers, Moscow, 1986 참조)에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한국의 보수측 논객들은 진보라는 용어에서 순진하게도 사전에 새겨진 뜻만 챙기고 그 속에 담겨진 역사적 의미를 간과하고 있는 듯 합니다. 소련에서 진보라는 표현은 마르크스 사회주의 혁명노선에 동조하는 개인이나 집단의 성향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1864 년 K. 마르크스가 주도한 1차 인터내셔날은 소멸되었지만 마르크시즘을 향한 진보적 마음을 가진 노동자(progressive-minded workers)를 규합시키는 성과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진보는 구체적 미래목표 마르크시즘을 지향하는 노동자의 개인적 행동성향을 표현합니다.
 
다른 용례를 보면, 자본주의국가에서 사회주의혁명노선에 헌신하는 집단을 진보적 세력(progressive forces)이라고 표현합니다. 10월 혁명에 성공한 다음 레닌은, 미국과 서구 등 자본주의국가 내부의 사회주의혁명이나 식민지의 해방혁명에 동조하는 노동자와 진보적 세력을 세계적 반제국주의 혁명노선에 규합하여 효과적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서도 진보는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한다는 구체적 목표가 있고, 이것을 실현하는 과정인 혁명투쟁노선에 동참하는 집단에 붙여진 표현입니다.
 
결국 마르크스-레닌의 혁명노선에 따라 사회주의국가 건설에 성공한 소련은 모든 면에서 가장 진보적 사회체제(the most progressive social system)이기 때문에, 여기에 호응하는 개인이나 집단을 표현하는 데 진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이며, 그 속에는 자본주의를 부인하고 사회주의혁명에 동참한다는 목표 지향적 행동특성이 들어 있습니다.
 
소련을 침몰시킨 진보노선
 
소련사회주의가 최고수준의 원숙단계에 접어든 1986년 2월 25일부터 3월 6일까지 27기 소련공산당대회가 모스코바에서 열렸으며, 여기에서 소련의 경제적 사회적 장기발전을 위한 새로운 지침이 채택되었습니다. 21세기를 지향하여 마련된 새로운 경제,사회발전을 위한 1986-1990 지침은 경제성장률 증진에 집중되었으며, 이를 위하여 효율적 관리조직 구축과 노동 동기부여가 강조되었습니다. 이들은 사회주의 완성의 역사적 목표달성 여부는 각자의 창의성 실현과 사회주의기관에 내재하는 잠재력 활성화에 달렸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것은 수동적 노동과 의존적 국가기관의 한계를 자각한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러닉하게도 21세기를 준비하는 새로운 경제,사회발전지침을 채택한 다음 구소련은 곧 붕괴되었습니다. 소련이 침몰되면서 개인의 창의성 실현과 사회주의기관 잠재력 활성화를 강조했다는 것은 이것이 침몰원인이라고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결국 마르크시즘은 말년에 이르러 그 한계를 자각했으나 회복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던 것입니다.
 
마르크스-엥겔스의 혁명이론을 발전시킨 레닌은 사실상 소련혁명정부의 통치이론을 개발하면서 프로레타리아독재를 사회주의혁명 성공의 기본수단으로 확립했습니다. 노동자에 공동목표, 단일의지, 행동통일, 절대복종을 요구하면서 수정과 타협 그리고 조정을 기회주의적 브르주아 반동음모라고 일축했습니다. 소련노동은 레닌의 교시에 따라 70년간 사회주의혁명 완성을 향한 단일의지로 행동을 통일하여 목표를 달성했지만, 창의성과 효율적 관리가 필요할 때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사회를 대체하는 가장 진보적 노선이라며 혁명을 선동하던 마르크시즘 실체가 성장잠재력이 없는 화석에 불과했음이 들어난 것입니다.
 
21세기 목전에서 열린 소련의 마지막 공산당대회 결론은 자본주의 경쟁논리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경제성장이 필요하고, 효율적 관리활동과 노동의 창의성이 요구된다는 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듣던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타협과 변화를 거부하고 오직 복종과 행동통일을 요구하는 사회주의 진보노선이 인간의 창의성을 퇴화시켜 성장잠재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에 소련호는 침몰한 것입니다.
 
한국의 진보노선
 
마르크스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대안이라고 착각한 소련의 진보주의가 주도한 역사실험은 70년을 넘기지 못하고 막을 내렸습니다. 인간본성의 자연스러운 발달을 막고 마르크스-레닌 머리에서 짜 낸 인위적 사회를 실현하려던 구상이 좌절된 것은 인간본성을 거스를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한국에서도 지금 진보노선이 시류를 이루고 있으나 소련의 진보노선과 달리 투명성이 없습니다. 만약 한국진보노선이 소련에서 실패한 역사실험에 미련을 두고 있다면 그 시련이 국민에 돌아갑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진보노선이 소련에서 자멸한 진보노선과 어떻게 다른지 따져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에서 친미와 반북을 말하면 수구냉전세력, 기득권 보수세력으로 찍힌다는 점에 착안하면 반미와 친북이 진보의 상징이 됩니다. 구소련은 미국을 제국주의 종주국으로 꼽아 적대관계를 강화한 반면, 마르크시즘 아래 인민공화국(프로레타리아독재)을 수립한 북한을 진보적 신생국으로 지원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반미와 친북이 진보의 확실한 공통인자입니다.
 
그동안 사회주의소련은 붕괴되고 타도대상이던 미국자본주의는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으며, 북한에서는 배고픈 인민이 탈출하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진보의 공통인자 반미와 친북은 실패한 구소련노선에 회귀하는 것이므로 진보가 아니라 복고주의노선이 됩니다. 한국의 진보노선이 국민에 희망을 주는 전진을 의미한다면 구체적 목표지점을 제시해야 합니다. 구소련의 진보노선은 자본주의 전복과 사회주의혁명을 미래의 표상으로 제시했으나 한국의 진보는 입으로 개혁만 외칩니다. 과정만 있고 방향과 목표가 빠진 한국의 진보는 손과 발만 있고 머리와 가슴이 없는 괴물과 같습니다.
 
전술면에서도 소련의 진보노선과 한국진보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레닌은 브르주아 대중매체가 심리적 조작술을 동원하여 노동계급의 각성을 차단하고 브르주아 지배체제에 굴복하도록 만든다며 세계의 진보세력에 경고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진보진영은 보수언론과 전면전을 진행중에 있습니다.
 
레닌은 마르크스-엥겔스가 제시한 원칙에 이의를 다는 어떤 의견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타협과 조정 또는 양보는 수정주의'개량주의'기회주의로 몰아 브르주아 반동음모라고 역습했습니다. 한국진보노선도 일도양단(一刀兩斷)형 택일을 요구할 뿐 타협과 양보가 없으며 국민을 적과 동지로 양분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진보노선이 구소련노선을 닮았다는 점이 아니라 그것이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입니다. 실패한 전술을 닮아 갈수록 확실해지는 실패가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한국진보노선은 과정만 앞세우지 말고 방향과 목표를 밝혀 밑그림을 완성해야 진정한 진보가 됩니다.

* 필자는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yhkim0301@yahoo.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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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7/30 [01:4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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