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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와 한현, 그리고 여성주의의 방향
한현님에게 반론, 구조결정주의의 오류를 넘어ba.info/css.html'>
 
법치국가   기사입력  2002/11/13 [15:51]
1. 루소

한현님이 인용한 루소로부터 시작을 하죠.
루소가 말하길, "남성과 여성이 신체구조에 있어서나 성격에 있어 동일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고, 그렇게 될 수 없으므로 당연히 양자는 동일한 교육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루소의 논리구조는, 남성과 여성의 자연적인 신체구조와 성격의 차이를 통해 동일한 교육방식을 거부하는 사회적 요구를 근거짓는 것입니다. 왜 이야기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일까요?

한현님이 적절히 적길, 이는 자연성 이데올로기입니다. 자연적인 무엇을 통해 도덕과 사회적 의무 등을 추론해 내는 방식입니다. 즉 여성적인 것, 자연적인 것, 고로 "여성의 본래 기능"이 무엇무엇이다 이런 논증방법이지요. 속칭 자연주의 오류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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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2_LEFT}제가 루소와 동시대를 살았거나 혹은 루소가 지금 제 앞에 있다면, 당연히 다음과 같이 반론할 겁니다. "자연적인 그 무엇이 사회적 권리 내지 의무를, 혹은 교육제도의 내용을 근거짓는 이유를 논증해라!" 이렇게 루소에게 요구할 겁니다. 구체적으로 "자연적인 성향과 신체의 차이가 설령있다손 치더라도 그게 필연적으로 여성이 달리 교육되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라고 주장하겠지요. 나아가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로 인해 아주 특별한 몇몇 교육이 필요할지도 모르나, 그렇다고 일반적으로 완전히 달리 취급하여 교육시켜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할 것입니다. 특히 "여성의 본래기능"이란 말은 "개념이 공허한 말로서, 누구든지 논증자가 그 안에 무엇을 집어넣어도 상관이 없어지기 때문에(예컨대 여성은 강하다도 가능하고 여성은 약하다도 가능하고) 이건 완전히 사기추론이며, 여성의 본질을 논하면서, 본질을 정의하는 대신 여성의 유형 몇가지로 슬쩍 바꿔치기한 외관논증이다"라고 반박할 겁니다.

아마 루소는 이에 대해 이렇게 하지 않을까요? "여성의 신체와 성격의 구조를 보면 여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구조적 접근론을 채택해야 한다" 이렇게요. 그리고 "그 구조에 의해 필연적으로 교육의 사명을 정의할 수 있다" 이렇게요. "생래적인 것, 본래적인 것 그래서 자연적인 것은 구조이고, 그 구조로부터 여성 교육의 사명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요.

그러면 제가 또 반박하지요. "그런 구조로부터 여성의 본래적 기능이나 교육의 사명을 추론하는 것은, 구조결정론이고, 이런 구조결정론은 여성을 무뇌아로 취급하는 것으로, 계몽주의 선구자인 루소 당신의 이론과는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라고요. "신체구조와 자연적 성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선택하고 받을 권리는 인간인 여성의 자유와 권리, 즉 자신의 의사에 속한다"라고요.

그러면 또 루소는 한발 뒤로 빼면서, "나의 이론은 구조결정론이 아니라, 내가 여기서 이해한 구조는, 경제시스템과 정치체제, 사회구조와 사회문화, 법체제와 법의식을 아우르는, 미시적이기도 하지만 거시적이기도 한 개념으로서, 그러한 개개의 개념들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할 것입니다. "즉 여성의 신체구조와 성격 등의 자연적인 구조들은 인간 사회문화와 상호영향을 주고 받으며, 따라서 교육과도 상호 주고 받는 것으로, 여성교육을 형성하는데 이런 구조적 이해는 반드시 필수다"라고 할 것입니다.

자,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가상의 루소와 저와의 "여성 신체구조와 교육제도 사이의 관계"라는 주제로 벌어진 혈전이었습니다. 한현님은 누구 말이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루소입니까 저입니까? 루소에 대한 재반박은, 한현님에 대해 반박글을 쓴 다음 이어집니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2. 한현

1) 우리의 논의의 발생의 원인은, 이화여대 총학생회가 말하고 한현님이 옹호한 "군대있음으로 전쟁있다" 하나와 "군대는 성폭력의 원인이다"가 그 둘이었습니다. 혹시 기억이 나실런지 모르겠네요.

2) 처음에 제가 반론하길, "군대는 성폭력의 원인이다"가 맞다면 여성은 강간발생의 원인이라 소리도 맞게 되는데 이게 얼마나 한심한 이야기인지 아느냐고 반문했지요. 군대와 성폭력 사이의 관계는 가능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성폭력 방지를 위해 군대를 없애자는 것은 '교각살우'의 오류라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비유로, 학교와 직장에서 성폭력 발생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나, 그렇다고 아무도 학교 그 자체나 직장 그 자체를 없애자고는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기억이 나실런지 모르겠네요.

3) 이에 대해 한현님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접근"을 통해 군대와 성폭력 사이를 이해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가능성이 배제되면, 남는 것은 당연히 필연성입니다. 이건 논리학의 아주 기초적인 범주론입니다. 가능성(혹은 개연성 혹은 우연성)과 필연성 사이에 제3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가능성이 배제되면 필연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한현님의 "구조적 접근"이란 것을 저는 당연히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구조가 행위를 필연적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군대가 성폭력을 결정한다."

이런 구조적 접근론은 구조결정주의 오류라는 것이 제 두번째의 반론이었습니다. 기억을 재생시켜 드리는 의미에서 간단히 요약만 말하지요. 구조결정론은, 첫째 인식론적 오류에 빠져 있고(구조와 행위 간에 인과관계 증명이 안된다), 둘째 만약 구조결정론이 맞다고 치면, 윤리적으로 무장해제 당하는 것으로 치명적이다(강간한 군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리고 셋째, 설령 구조결정론이 맞다고 친다면, 가장 높게 자리잡고 앉아 있는 구조로 환원해야 한다는 점에서 군대가 아니라 자본주의 구조가 성폭력과 강간 발생의 원인이어야 한다. 이 구조들은 먹이사슬처럼 연쇄적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중간단계의 구조인 군대만 없앤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좌파 맑시스트들이 그래서 한현님 같은 주장을 보고 비과학적 주관적 망상이라고 하는 것이 이해되는지요. 즉 군대 없앤다고 전쟁안나는 것이 아니란 이야깁니다. 전쟁은 자본가들의 탐욕 혹은 자본주의 착취 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들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현님의 주장은 인식론적으로, 윤리적으로 지지를 얻을 수 없다가 제 반론의 핵심이었습니다.

4) 그랬더니, 한현님은 이번에는, 구조결정론이 아니라, 자기가 말한 구조란 "경제시스템과 정치체제, 사회구조와 사회문화, 법체제와 법의식을 아우르는, 미시적이기도 하지만 거시적이기도 한 개념"이라 한다고 합니다. "현재의 각종 시스템들(경제구조, 사회구조, 법 등)은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 즉 사회문화에 영향을 끼치고 또한 사회문화도 거꾸로 사회체제에 영향을 끼치는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라고 하여 구조와 사회 혹은 구조와 인간 간에 상호영향관계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 논의로 다시 돌아와 국한시키면, 군대란 구조와 성폭력 사이에 상호영향관계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아가서 성폭력 발생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구조인 군대나 군대제도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누가 뭐라나요? 고작 이런 주장하려고 그 먼길을 돌아 왔나요? 용두사미가 따로 없군요. 누가 군대와 성폭력 간의 상호영향, 주거니 받거니 하는 관계를 부정하는가요? 애초 이총이 문제제기하고 한현님이 변호한 내용은, 이런 뜻뜨미지근한 "둘 사이 상호영향관계"가 아니라, 센세이션한 "군대는 성폭력의 원인" 혹은 한현님의 주장인 "군대는 성폭력의 기제" 이거 아니었던가요?

다시 반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설령 상호영향관계가 있다고 해서, 군대 그 자체를 폐지하자는 것은 교각살우의 오류입니다. 한현님은 이 오류를 인정해야 합니다. 자꾸 이 오류를 인정 안하고 이총을 변론하기 위해 도망다니기 때문에, 구조가 결정한다로 갔다가 다시 상호영향관계로 왔다가 하는 겁니다. 갔다리 왔다리 얼마나 숨가쁘십니까?

서울대 신교수(우조교) 성희롱 사건이 대학 내에서 있었습니다. 봉건적 사제관계와 대학내의 서열구조 등등이 이런 성희롱 사건 발생에 분명히 영향을 주었음을 누가 부정하겠습니까? 그렇다고 그 대학 자체를 없애자고 하던가요? 한현님은 성희롱과 성폭력에 장소를 제공하는 대학 그 자체를 없애자고 주장하실렵니까? 검사가 물고문을 했습니다. 피의자가 사망을 했지요. 검찰 내의 상명하복 문화 및 내부감시제도 부족 등등이 이 사건의 원인을 만드는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검찰 그 자체를 폐지할까요? 아님 고문 검사 일단 처벌시키고, 검찰 수뇌부 책임지워 옷 벗기고, 검찰 내에 내부감시제도를 만들자고 하는 주장을 할까요?

다른 분야에서는 과잉된 주장을 하지 않으시는 분들이, 왜 유독 성폭력 원인인 군대 자체를 폐지하자는 이 과잉된 요구를 하시는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5) 결국 한현님은 어디로 빠져 나가도 다 오류에 빠집니다. 군대와 성폭력이 상호 영향관계에 있다고 하면, 교각살우 오류에 빠지고, 군대가 성폭력의 구조적 결정원인이다 하면, 구조결정론적 인식 오류와 윤리적 무장해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딜레마에 빠진 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한현님 스스로의 책임입니다.

이런 딜레마를 벗어나려면 한가지 방법 밖에 없습니다. 애초 한현님의 주장 "군대는 성폭력의 기제다"를 폐기해야 합니다. 대신 저처럼, 군대에서 발생한 강간범은 전범으로 끝까지 처벌하자와 군대 내에서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만들어 내자 하는 주장을 채택하면 됩니다.

3. 다시, 루소

루소를 다시 불러 봅시다. 저는 이렇게 반박할 것입니다. "여성의 신체구조와 여성교육의 사명이 상호영향관계가 설령 있다 할지라도, 그런 신체구조의 차이가 여성을 달리 취급해야 할 어떤 필연성도 없다"라고요.

루소가 여성의 신체구조를 근거로 여성에 대한 교육 내용을 근거짓는 것은 자연주의 오류이며, 한발 빠져서 둘 사이의 일정한 상호영향관계가 있다고 해도 그게 여성불평등을 도덕적으로 기초짓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라고 비난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비난의 궁극적 원인은 루소 스스로가 제공한 것입니다.

루소가 이런 비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의 말도 안되는 자연주의 논증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여성의 신체구조가 사회적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다는 이 말도 안되는 주장을 유지하는 한, 계몽주의의 선구자인 루소도 자신이 쳐 놓은 함정에 지 스스로 발목이 잡혀 아둥바둥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루소는 이미 200년 전 사람. 죽고 없으며 '에밀'인지 뭔지 하는 책이 그렇게 현재 영향력을 갖고 파급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총이나 한현님은, 루소를 자연성 이데올로기에 빠진 마초라고 비판하면서도, 마초들이 하는 똑같은 논증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논증방식에서 둘은 형식은 같으나 내용만 달라집니다. 뭔가 자연적이고 뭔가 구조적인 것이 존재하고, 이런 구조나 자연적 본래의 기능을 파악하면 사회적 사건이나 발생된 일들을 설명해 줄 수 있고 나아가 그에 기반하여 사회적 요구를 근거지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루소나 한현님이나 동일한 형식을 갖습니다. 현상의 본질 운운이 아마 이것을 잘 말해 줄 겁니다.

틀린 것은 이것입니다. 루소에게 자연적인 것은 여성의 본래적 기능이었고, 그래서 여성의 도덕적 의무로서 남성에게 순종할 것을 요구합니다. 반면 한현님은, 군대란 것은 성폭력의 기제란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 즉 구조적인 것이었고 따라서 '군대없애자'는 이런 사고방식의 필연적 결론입니다.

{IMAGE1_RIGHT}루소와 한현님은 극과 극의 주장을 하지만, 서로 논증방식의 동일성에서는 아주 쌍동이입니다. 제가 한현님과 같은 여성운동가라면, 루소의 마초같은 자연성 이데올로기 공격을 하기 보다는 그의 논증오류를 공격할 겁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제가 한현님이라면 같은 논증오류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고, 따라서 이총의 "군대=성폭력"이란 이런 과잉논증을 여성운동가인 나 스스로 비판할 겁니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감싸는 것이 여성운동가의 몫이 아닙니다. 아가리를 벌리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하십시요. 그래야 마초들에게도 면목이란 것이 서지 않겠습니까? 틀린 것을 계속 감싸주려다 보니, 졸지에 한현님 같은 분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보같은 상황에 빠져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4. 사족 : 계몽?

한현님이 중언부언 설을 푼, 헌법변천이 어쩌구 노동법 어쩌고 형법이 어쩌고 읽으면서 "계몽"이란 말이 새삼 의문스러워 졌습니다. 누가 누굴 계몽한다? 계몽되어야 할 사람이 딴 사람을 계몽하겠다고 덤비는 꼴이 참으로 가관이 아니올시다.

하나 예를 들지요. 노동자는 단결의 자유를 갖습니다. 따라서 이는 위법성 조각사유가 아니라 아예 범죄구성요건 요소도 아닙니다. 누가 계모임 만든다고 처벌하던가요? 누가 에초티(HOT) 팬클럽 가입했다고 일단 범죄구성요건에는 해당되는데 위법성 조각사유가 있어 범죄성립을 부정하던가요?

파업이란 것은 굉장히 적극적인 행동(작위)이 아니라, 가장 소극적인 행위(부작위)입니다. 즉 일을 안해 버리는 겁니다. 이론적으로 출근 안하고 집에서 애보고 있으면 파업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애초 파업에 개념내재적으로 적극적 작위 개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위행위나 피켓팅 같은 적극적 행동은 그러기에 파업하고는 무관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파업에 대한 금지는 결국 노동강제가 되기 때문에, 파업금지가 금지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파업과 파업중 일어나는 행동 등에 대한 평가를 다르게 할 수 있습니다. 폭력행위가 발생한다고 해서, 그 파업이 불법화되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지요.

폭력행위는 어떤 법질서에서도 허용되지 않습니다(저항권이나 시민불복종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화가 나도 사용자나 그 간부들에게 폭력 행사를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사용자가 구사대를 동원하면 그 구사대를 통한 폭력행위를 처벌해야지, 사수대로 맞짱 뜨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이러면 근대형법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란 함무라비 시대로 돌아갑니다. 근대법이 범죄를 법치국가원리로 예방하고 교화하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타인의 불법이 나의 불법을 정당화시키지 않는다, 법원리는 몇가지 아주 근소한 예(저항권이나 시민불복종)을 제외하고는 법치주의원리입니다. 아무리 노조라고 해도 이 법치주의 원리로부터 특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사대에 의해 폭력이 행사되면, 그 구사대 폭력을 처벌해야 하는 것일 뿐입니다.

노조의 단결자유가 일반적 결사의 자유처럼 인권에 속한다면, 사용자의 공장에 대한 소유권 또한 인권에 속하는 사항입니다. 누가 한현님 집에 쳐들어가 한현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현님 집에 엉덩이 붙이고 집에서 나갈 생각을 안하면 한현님은 어떻하실 겁니까? 저는 이런 경우 '가택침입죄'로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원칙적으로, 노조는 사용자의 의사에 반해서 사용자의 집인 공장에 체류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에서도 말했듯이, 파업이란 일 안하는 것이란 부작위인 점에서, 공장체류가 파업의 개념요소도 아닙니다. 모두 노조 깃발 하에 야유회를 가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사용자에 대한 압박은 일을 중지했다는 것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계가 안돌아 간다는 사실 하나로 말입니다. 따라서 사용자가 내 집(공장)에서 나가달라 하면 나가야지요. 한현님 집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보고 나가달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별로 조직된 우리나라 노조실태가 자기 회사나 공장을 점거 혹은 체류하고자 하게 합니다. 이 문제는 노조에서 알아서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방법은 산별로 조직하는 것이지요. 산별노조가 되어서 파업이 일어나면, 보라매 공원 등에서 조합원이 모여 시위하고 지도부는 노총회관에서 산별사용자단체와 협상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회사나 공장을 점거하고 말고하는 불법 시비가 애초 생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산별노조화하면 풀릴 일을, 기업별로 남아서 계속해서 직장점거가 불법이네 아니네, 공권력이 투입되네 마네 하는 것, 한마디로 후진적인 것입니다.

한현님의 노동법 이해는 한마디로 천박합니다. 이런 천박한 수준을 가지고 있으면서, 타인들을 무식하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기 한량없습니다. 계몽을 도대체 누가 받아야 하는지 애매하기까지 합니다. 미계몽된 사람이 계몽을 외치는 이 역설이 참으로 웃기기도 합니다.

논증이나 논리란 것도 모르고, 전문지식도 그냥 신문 쪼가리에 나는 겉핥기식 수준이면서도, 남을 계몽하겠다니? 자기들 수준이나 돌아 보고 반성하고 공부하고 높이시길 바랍니다. 그런 다음, 다시 똑똑한 논리와 쌈박한 전문지식으로 다시 돌아 오십시요. 그때가서 계몽사업을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 본문은 독자기고입니다. 본문에 대한 반론을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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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1/13 [15:5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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