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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걸재판 감상기, 법앞에 만민은 평등한가?
김홍걸과 찬드라 구마리 구릉에 대한 사법부의 차별대우ba.info/css
 
이승훈   기사입력  2002/11/14 [21:19]
법 앞에 만민은 평등하다. 그러나 한국의 법 앞에서는 만민이 평등하지 않다. 힘 있고 가진 자에게는 너그러우며,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인색하고 가혹한 것이 우리 한국의 사법 현실이다.

최근 이같은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었다. 대통령아들 김홍걸, 동남아산업연수생노동자 네팔여성 찬드라 구마리 구릉. 같은 한국 땅에 있으면서도 한국이라는 특수한 사회분위기 때문에 대척의 사회적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이들 두 사람에 대한 사법의 잣대들은 너무나 상이했다.

{IMAGE1_LEFT}지난 11월 11일, 36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대통령 아들 김홍걸씨에 대해서 재판부(서울지법 형사 합의 23부, 재판장 김용헌 부장판사)가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및 추징금 2억원을 선고했다.

김홍걸씨가 저지른 죄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죄이다. 이 알선수재죄라는 범죄는  쉽게 말해서, 공무원은 아니지만 소위 빽이라는 것이 있어서 공무원에게 연줄을 댈 수 있다는 것을 빌미로 뇌물을 받아 챙기는 범죄이다.    

빽과 연줄이 위력을 갖는 아주 후진적인 국가에서의 아주 후진적인 인간들이,  권력에 기생하면서 사회를 좀먹고 있는 사회 기생충들이 작란한 것이 바로 알선수재죄인 것이다.

뇌물학에서 말하는 2대 해악인 공무의 무상성과 공무절차의 투명성을 해치는, 권력에 기생한다는 점에서 뇌물관련 범죄중에서 가장 악질이며 파렴치하다고 할 수 있는 알선수재죄를 저지름으로서 사회적으로 심각한 해악을 끼친 자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풀어주었다는 것은 선량한 국민의 법감정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뇌물을 36억원이나 받아먹었으면서도 추징금이 2억 밖에 되지 않는다니, 36억의 절반도 채 못되는 15억의 추징금을 구형한 검찰의 태도도 우습지만, 아무리 돈없고 빽없고 연줄없으면 인간답게 살 수 없다는 대한민국이라고 하지만 이 같은 판결은 해도 너무 한 것 아닌가?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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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벌레임을 고백하면서 ‘모든 처벌을 달게 받겠다'는 말 대신에 낮 뜨겁게도 ‘선처를 부탁한다’는 말을 한 김홍걸씨.  그는 선처를 부탁한다는 말을 함으로써 인간이 아니라 벌레임을 공표한 것이며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이며 백성들의 영원한 조롱거리가 되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그래서 그 '벌레'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다만, 대통령의 아들이라면 누구보다 더 모범을 보여야할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 파렴치하고 사회적으로 극악한 일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매우 엄한 처벌이 내려져야하는 것이 타당할 것인데 엉뚱하게도 관대한 재판을 내린 우리 사법부는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 사법부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김홍걸 재판과 함께 지난 11월  5일에 있었던 동남아산업연수노동자 네팔여성 찬드라씨에 대한 재판을 같이 놓고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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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3년 찬드라씨는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음식값 시비로 행려병자로 오인되어서 6년 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감금당했다. 숙소를 나올 때 옷을 갈아입으면서 음식값을 가지고 나오는 것을 깜빡 잊었던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음식점 주인이 한국말을 잘 못하는 그녀를 경찰에 신고해버렸고 경찰은 그녀가 외국인산업연수생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원에 넣어버렸다. 그 찬드라씨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었다.

{IMAGE2_RIGHT}극우적 인종주의와 배금주의가 만연한 우리 한국사회에서 찬드라씨는 멸시받고 천대받는 사람들 중 가장 멸시받고 천대받을 만한 조건을 갖추었다. 첫째, 피부색이 거무죽죽하게 짙은 색깔로서 '살색'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둘째, 못사는 나라의 못사는 국민이다. 셋째, 외국인이주노동자로서 천하디 천하며 우습지도 않은 공장일을 한다. 넷째, 여성이며 거기에다가 나이도 많다. 한국에서라면 마땅히 멸시받고 천대받아야할 사람인 것이다.

찬드라씨가 제기한 국가상대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우리 한국의 재판부(서울지법 민사합의13부 재판장 김희태 부장판사)는 이 같은 사실을 잘 고려하고 매우 합당한 판결을 내렸다. 엉뚱한 사람을 정신병자로 몰아놓고 6년 4개월 동안이나 감금해놓고 그 피해에 대한 배상금으로 2천8백만원이라는 국가배상을 인정했던 것이다.

6년 4개월 동안 일하지 못해서 월급을 받지 못한 손해와 영문을 모르며 정신병동에 갖혀 6년 넘게 자유를 잃어버려야했던 그 시간들, 그 정신적인 고통에 대해서 찬드라씨는 멸시받고 천대받아 마땅한 사람이므로 2천8백만원이라는 배상은 찬드라씨에게는 분에 넘치는 성은이라고 할 수 있다.

벌레 김홍걸만큼의 지위는 아니라도 찬드라씨와 똑같은 일을 하는 보통의 한국사람이라면 2억 8천만원의 배상금도 모자랄 판의 사건에서 2천8백만원을 배상해주었으니 재판부는 국가재정을 아주 많이 절약했다. 참으로 애국애족적인 행위를 한 것이다.

이 일은 우리 정부가 찬드라씨에게 사죄하면서 충분한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에 그치지 않고 우리 정부는 네팔정부에게 공식적으로 사과까지 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네팔정부에게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이 사건으로 재판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혀를 찰 노릇이다.  이주노동자에게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례라는 의의를 달기에는 그 재판의 내용이 너무나 부끄럽다.

힘 있고 가진 자에게는 너그러우며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인색하고 가혹한 한국의 사법현실을 새삼 확인하는 사건들이다. 우리 사법부와 판사들의 양심에 대해 인간적으로 회의가 생긴다. 그네들의 객관화된 직업적 양심이란 근성강한 속물정신일 뿐인가?  /  논설위원

자유... 백수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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