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경의대안만들기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탄핵도 두려워않는 대한민국 5%, 땅 50%차지
[주장] 토지과점은 한국경제 심장위협, 지대조세제로 토지과점 잠재워야
 
이태경   기사입력  2004/03/29 [16:30]

정치 권하는 사회

야당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정신이 온통 정치에 쏠려있다. 헌법재판소의 심리와 결정이 남아 있고 4. 15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인지라 정치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바야흐로 '정치 권하는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야당의 탄핵소추안 발의와 의결로 시작되어 4. 15총선으로 작은 매듭을 짓게 될 탄핵정국은 어떤 유산을 한국사회에 남길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하자면, 몰라보게 성장한 시민사회의 존재와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광장의 경험 등을 토대로 한 참여민주주의의 진전 그리고 지역주의의 부분적 해체 등이 아닐까 싶다. 한 마디로 해서 87년 6월 항쟁 이후 진행되어 온 절차적 민주주의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고, 주권재민과 참여를 근간(根幹)으로 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도 많은 향상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과점(寡占)

그러나 '탄핵정국'이라는 메가톤급 의제에 가려 다른 중요한 사회적 의제들이 그다지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보도된 문화일보 기사 가운데 너무나 중요한 사회적 함의(含意)를 가진 기사가 눈길을 끈다.

5%가구가 사유지 절반 독점

우리나라의 사유지는 절반이상(공시지가기준)을 상위 5%의 가구가 독점하고 있는 반면, 3가구 중 1가구는 땅이 단 1평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대학교 경제연구소가 23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제출한‘부동산 관련 조세정책의 경제적 효과와 정책 방향’이라는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3년의 종합토지세 납부자료를 분석한 결과 상위 5% 가구가 전체 개인 소유 토지 가운데 금액 기준으로 50.6%, 면적기준으로는 37.0%를 각각 보유한 것으로 추산됐다.
보고서는 “현재의 토지 소유구조가 그때와 획기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만큼 이 자료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혔다.

한국사회의 토지가 과점(寡占) 상태임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 보니 가히 참혹한 수준이다. 단 5%의 가구가 금액 기준으로 사유지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고 30%가 넘는 가구는 단 1평의 토지도 소유하고 있지 못한 것이 지난 93년 자료를 기준으로 하여 작성된 것이라면 최근 들어서 토지 과점 현상이 더 심화되었으리라고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토지과점이 심화되는 현상이 사회에 미치는 폐해는 무엇인가? 번거롭지만 간단한 경제학 공부(?)를 하기로 하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부동산-경제학적으로는 토지라는 표현이 적확하므로 앞으로는 '토지'라 한다-은 자본, 노동과 더불어 생산의 주요한 요소이다.

또한 부동산-토지-은 인공의 산물이 아니고 한정된 재화라는 점에서 다른 재화와는 그 성질을 달리 한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토지·자본·노동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노동이며, 인간이 노동을 토지의 자원에 투입함으로써 모든 재화와 용역이 산출되고 가공된다 할 것이다. 이처럼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가치(value)를 생산하는 데 있어서 가장 커다란 기여와 역할을 하는 것은 노동인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생산의 결과물들이 노동자·자본가·토지소유자-지주-에게 분배될 때 노동자는 가치분배에서 철저히 소외된다. 오히려 생산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토지소유자가 단지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생산의 결과물들을 지대의 형식으로 끊임없이 수취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토지는 인공의 산물이 아닐 뿐만 아니라 토지가치의 상승은 사회적 인프라의 집중 및 부의 증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토지소유자가 생산에 기여하는 바는 전혀 없다.

생산의 결과물들을 분배하는 피라미드를 머릿속에 그려보자! 그 피라미드의 맨윗자리를 토지소유자가 차지한 채 최우선으로 지대(地代)를 수취하며, 피라미드의 중간에 자본가가 위치하여 토지소유자가 수취하고 남은 생산의 결과물 중 일부를 이자의 형태로 차지하고,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자리한 노동자가 토지소유자와 자본가가 수취하고 남은 생산의 결과물을 임금의 형태로 분배받는 것이다. 즉 먹이사슬의 정점에 토지소유자가, 그 아래에 자본가가 그리고 가장 아래에 노동자가 자리하는 형국이다.

인구가 증가하고 기술이 발달하는 등의 이유로 지가가 상승하면 자연히 토지소유자들에게 지급될 지대는 투기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필연적으로 노동자와 자본가들의 몫을 줄인다. 더욱이 토지투기가 만연하면 노동과 자본의 몫은 더욱 줄어들며 근로의욕과 투자의욕이 꺾이는 등 국민경제에 미치는 폐해가 심각하게 된다.

내집마련의 어려움도, 격렬한 노사갈등도, 높은 실업률도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지대(地代)를 토지소유자들이 전유하는데서 기인하는 것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토지과점이 심화됨에 따른 부작용을 요약하자면 첫째, 빈부격차의 확대, 둘째, 사회구성원 다수의 주거문제 악화, 셋째, 물가상승, 넷째, 비생산적 투자-토지 투기 등-의 증가 등으로 전부 국민경제의 성장 및 경제정의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토지과점의 폐해가 여실히 나타나고 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이다. 국토개발연구원이 1995년 1월 현재 공시지가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지가총액은 GNP(1994년)의 5.4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가 기준으로 미국의 지가총액은 GNP의 0.6배, 영국이 2배 정도이고 땅값이 높기로 유명한 일본의 경우 공시지가 기준으로 1988년에 4.8배로 정점이었고, 그 후 거품이 붕괴되어 현재 3.5배 수준임을 감안할 때 한국의 지가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높은 지가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는 도처에 있다. 높은 지가와 지가앙등에 따른 자본이득은 1987년 한해에만 34조 8,000억원에 달했고, 이것은 그해 GNP의 36%, 봉급생활자 보수 총액의 85%, 제조업 총생산의 45%에 달하는 규모이다. 지가가 27.5%나 폭등한 1988년에는 땅값상승으로 인한 자본이득이 68조원으로 봉급자 급여 총액의 1.35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1989년에는 1979년 이래 최고수준인 30.5%나 치솟아 그에 따른 토지자본이득은 85조원으로 GNP의 71%, 제조업 국내총생산액의 두 배가 넘는다. 경실련의 추계에 의하면 1988년 10월부터 1989년 7월까지 9개월 동안 실제 땅값 상승을 통한 자본이득(미실현분 포함)이 무려 250조원에 달하였다.

토지과점의 상태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극소수인 대토지소유자들-한국사회에서 대토지소유자들은 자본가의 다른 이름이다-이 부당하게 수취하고 있는 부가 얼마이며, 그 폐해가 얼마나 극심한지를 설명하기에는 지면이 모자랄 지경이다. 위에 열거한 통계가 실감나지 않는다면 당신 주위에 있는 부자들을 떠올려 보라! 아마 열에 아홉은 땅부자, 아파트 부자, 상가 부자들일 것이다. 한마디로 토지과점은 극소수의 대토지 소유자들만을 행복하게 만들고 나머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절망의 재생산 기계이고, 한국경제의 심장을 위협하는 비수와도 같다.

효율적 경제정의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패다.

그렇다면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처럼 질주에 질주를 거듭하고 있는 토지과점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은 없는 것일까? 지대조세제의 실질적이고 점진적인 도입이 그 대안이 아닐까 싶다. 실수요자를 제외한 사람들이 토지를 소유하려고 하는 근본원인은 지가의 상승과 지대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특정 지역의 지가가 폭등하는 것은 장래 실현될 기대이익 때문이다. 예외없이 지가가 높은 지역은 지대 역시 매우 높다. 강남이나 명동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대조세제는 토지-지대조세제에서 말하는 토지는 인간의 노동이 투여된 토지개량물이나 건물 등은 제외한다-에서 발생하는 지대를 국가가 조세로 환수하여 국가재정의 근간으로 삼는 것을 중핵으로 하는 조세체계임을 감안할 때 지대조세제의 실질적이고 점진적인 시행이야말로 토지과점과 부동산 투기를 잠재울 수 있는 묘방임이 분명하다.

2001년 전국의 부가가치세 수입은 약 26조원이고, 지대총액은 약 50조원으로 추정된다. 즉 지대에 대한 징수만 제대로 하더라도 부가가치세를 완전히 면제하고도 남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거래세인 취득세와 등록세(세수)는 연간 13조원이고 보유세인 종합토지세와 재산세는 2조5000억원에 불과한 현실을 보더라도 지대조세제의 도입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광화문을 밝혔던 촛불은 꺼졌고 시민들도 집으로 돌아갔다. 낙관하기는 이르지만 탄핵정국과 4.15총선을 거치면서 한국의 참여 민주주의는 많은 발전을 이룰 것이고 지역주의와 냉전의식도 상당부분 해체될 것이다. 그러나 지역대결구도가 완화된다고 해서, 정당구조와 운영이 민주적이고 자발적으로 바뀐다고 해서, 헌법과 법률에 의한 법치가 구현된다고 해서, 지방분권이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는 없는 것이다.

효율적인 경제정의야말로 참여민주주의를 자라게 하는 거름이다. 그리고 효율적인 경제정의의 실마리는 지대조세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쪼록 참여정부가 지대조세제의 실질적 구현을 통해 효율적 경제정의를 회복하고 참여민주주의도 발전시키기를 간절히 바란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4/03/29 [16:3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