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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역행하는 정당의 '상향식 공천'
[시론] 여론조작 차단하고 근본적인 한계보완방안 강구해야
 
김종구   기사입력  2004/03/21 [21:10]

노회한 정치권에 보내는 경고, “공천여론조사를 재검토하라?

이른바 ‘상향식 공천’이라는 것이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던 게 불과 얼마전이었다. 그러나 그같은 기대는 곧바로 실망과 환멸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민의를 수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곳곳에서 공천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아니 ‘공천잡음’이란 표현은 적절치가 않다. 곳곳에서 공천상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과거의 선입견을 갖고 이 문제를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또 시작했군”이라고 대충 넘겨서는 안된다. 오늘의 이 문제점 그 자체를 정확히, 그리고 제대로 읽어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 정치가 달라지고 국민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정치개혁도 앞당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가 상향식 공천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는 분명 좋은 일이다. 과거에는 힘있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점지(?)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하향식’이었다. 따라서 신진 인사들은 공천을 받기 위해 힘있는 당지도부나 실세 의원들을 좇아다니지 않으면 안되었다. 좇아다니다 보니? 줄을 서다 보니? 자연히 계보가 형성됐으며 그 계보에 속하지 않고는 공천받는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줄’뿐만이 아니었다. 줄을 서면서 빈손으로 갈 수가 없으니 자연히 돈이 들었다. 10억이니 20억이니 하는 ‘공천장사’란 것도 바로 이렇게 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달라졌는가?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눈에 띄게’ 돈을 싸들고 다니거나 ‘눈에 띄게’ 줄을 서는 일이 뜸해졌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또다른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다. 그것도 아주 크게, 아주 심각한 수준으로 불거지고 있다. 바로 ‘함량미달의 후보자’와 ‘무대뒤에서 장난치는 연출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른바 상향식 공천에서는 “유권자의 지지” 란 명분아래 누구든지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가 될 수 있는 길이 트였으며 그 ‘누구’ 가운데는 벼라별 사기꾼, 협잡꾼들이 다 포함돼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검증되지 않은 ‘꾼들의 천국(?)’도 머지 많았다.

요즘 지지도가 바닥세인 민주당의 경우를 한번 들여다보자. ‘민주당공천여론조사조작대책위원회’(약칭 민주당 공대위)에 따르면, 민주당 중앙당은 이번 공천여론조사에 ‘매우 깊숙이’ 개입을 했다. 아직 단정하기엔 이르지만, 만약 그랬다면 중앙당이, “중앙당은 일체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당헌당규까지 어겨가면서 이처럼 ‘깊숙이’ 개입을 한 까닭은 무엇일까? 혹시 후보선출과정에서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있는 특정인을 도와주려는 저의가 깔린 게 아니었을까? 이같은 의구심은 ‘경선여론조사’의 과정과 결과를 보면 더 강하게 제기되는 것 같다.

공정성 여부를 떠나, 막후에서 당권을 쥐고 있는 모 실세의원의 비서출신까지, 심지어는 그의 아들까지 공천을 받는 데 성공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면면이, 혹은 정치적 이력이나 능력이 대중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다. 들여다 볼수록 신통한(?) 일이다. 과연 그들은 공정한 여론조사 결과 선택된 것일까? 대답은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민주당 공대위측은 “현재 민주당에서만 30~40명의 후보들이 경선여론조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이중 10여명은 당지도부 등을 검찰에 고발하거나 법원에 공천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 공대위에 따르면 민주당은 일반 유권자 대상이 아니라 특정후보측에 의해 사전 조직된, 그것도 특정지역 출신이 주를 이루는, 당원들을 조사대상으로 삼거나, 여론조사 일자를 미리 알려주어 이에 대비케 하거나(원래는 불시에 하게 돼 있다), 특정지역을 조사대상에서 빼버리거나, 심지어는 아예 후보의 성명이나 나이까지 바꿔치기 하는 상식밖의 행태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이나 증거들을 보면 이같은 주장이 단지 패자의 ‘딴지걸기’만은 아닌 것 같다는 게 여론조사를 잘 아는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후보들이 제출한 고발장 및 소장들에 따르면, 민주당은 여론조사의 방법과 절차 등 후보자들과 사전 합의한 원칙을 일방적으로 깔아뭉개는가 하면 아예 조사결과 자체를 은폐한 채 ‘무조건 1위자’만 발표하는 이상한(?) 행태를 보여 주었다. 본인의 의사와 참여 자체를 배제한 채 일방적인 조사를 해 버리거나, 하지도 않은 조사를 했다고 하거나, 표본의 크기 등 유의미한 조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설정조차 무시해 버리는 등 하나같이 믿기지 않는 일이, 대통령을 두 번씩이나 배출했던 공당의 국회의원후보 선출과정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정말로 상식도, 염치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공대위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진작부터 그런 우려가 나돌기는 했었지만 사람들은 ‘설마’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였다는 게 이번 경선에 참여했던 다수 신인들의 공통된 느낌이다. 상향식 공천에는 크게 3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대의원 경선’으로 주로 당지도부 선출시 등에 적용된다. 둘째는 ‘전당원 경선’으로 소규모 단위에서 특정 선출직 후보를 뽑을 때 등에 적용된다. 세 번째가 바로 문제의 ‘여론조사’ 방식이다. 문제는 민주당뿐만이 아니다.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 역시 공천여론조사와 관련한 잡음이 적지 않다. 각 정당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이번 17대 국회의원 후보자의 경우 줄잡아 전체 경합지역의 절반 이상이 이같은 방식으로 후보를 뽑았다.

그러나 평가는 부정적이다. 과연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를 여론조사 방식만으로 뽑아야 하느냐(혹은 뽑는 게 온당하냐)는 근본적인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같은 의문의 한가운데에는 첫째, ‘여론조사가 갖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여론조사만으로 후보를 뽑는다면, 지명도가 현저히 높은 소수의 인물을 제외하고는 ‘사전조직의 명수’거나 ‘사전선거운동의 명수’가 후보로 뽑힐 개연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 현실에서는 그렇다.

‘우리 현실’이란 ‘후보자에 대한 사전정보가 지극히 제한된 조건’을 가리킨다. 무엇보다도 이런 조건 아래서는 여론조사 자체가 그다지 유의미하지 않다. 민의를 반영하는 지표로서의 의미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추가적인 보완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완전히 ‘로또복권’이다. '돈놓고 돈먹기'가 아니면 ‘눈가리고 아웅’식이란 얘기다. 여론조사가 안고 있는 이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갖는 정치적 유용성을 부인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나름대로 현실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치는 어차피 ‘대중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론조사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이번에 보여준 각 당의 행태는 정말이지 이 땅의 정치수준이(혹은 사회과학적 방법론의 수준이) 20세기 이전으로 퇴보한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한마디로 ‘퇴행’이고 ‘퇴영’이었다.

▲김종구 한국언론재단 미디어포럼 부회장   
여론조사가 올해 처음 도입된 경선방식인 만큼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전혀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같은 점을 말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이 땅의 공당들이 “갖지 말아야 할 의도를 갖거나, 그러한 방향으로 결과를 유도하기 위해 교묘한 방법으로 조사과정에 개입하거나 설문내용을 조작한 경우”를 비판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여론조사가 다 문제있다는 주장은 무리다. 또한 여론조사외 다른 방법으로 치러진 경선에서도 더러는 잡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잡음’이 여론조사 방식만큼이나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아니라고 한다면, 이번 공천여론조사에 문제가 있으며 이처럼 문제있는 여론조사결과를 후보공천의 유일한 자료로 활용하는 것만은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을 외면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 땅의 노회한 정치인들이여! 혹은 그들에게 부역(?)하는 실무자들이여! 당신들은 우리 사회의 평균수준보다도 한참 뒤쳐져 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당신들의 장난에 놀아날 만큼 그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당신들이 이미 했거나, 혹은 지금도 하고 있는 그 일들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나 있는 것인가?

* 필자는 한국언론재단 미디어포럼 부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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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3/21 [21:1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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