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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의 세월, 살아 돌아오는 박종철열사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17주년의 단상
 
손봉석   기사입력  2004/01/15 [15:47]

1987년 1월 15일 오전 10시 무렵, 한 검찰간부의 방에서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에게 한 검사가 "경찰들 큰일냈어"라는 말을 던졌고  뭔가 사건이 일어났다고 판단한 신 기자는 "그러게 말입니다. 요새 경찰들 너무 기세등등했어요" 라고 말을 받아 넘겼다고 한다.

▲고 박종철씨를 추모하는 학생들     ©부산지역 6월 항쟁 사진집
검사는 신 기자도 이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판단하고 "시끄럽게 됐어…. 어떻게 조사를 했기에 사람이 죽는 거야, 남영동에서 말야"라고 답했다.

당시 '남영동' 은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을 뜻했고 당시 석간이던 중앙일보 사회면에는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 란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다.

조사받던 학생이 책상을 "탁"하고 치니 그 자리에서 "억"하고 죽었다는 당국의 해명은 오히려 국민들을 공분하게 했다.

올림픽을 유치한 후 신흥공업국의 이미지를 구축하던 한국에서 벌어진 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학생에 대한 고문치사 사건은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타전됐고 한국은 고문을 일삼는 독재국가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곧 이어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정부의 공식발표를 뒤집는 동아일보의 보도가 이어졌다.

사망한 대학생의 사체를 부검한 결과 복부팽만 증세를 보였고 조사실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는 사실은 물론,  관련자들이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사전에 모의했다는 것까지 알려졌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은 그렇게 시작이 됐고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지난 14일은 당시 고문으로 살해당한 박종철군의 17주기 기념식이 가족과 친지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15일은 박 군의 사망이 특종이나 특보가 아닌 사회면에 짧은 기사로 처음 보도가 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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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1/15 [15:4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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