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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논객 고종석이 동인문학상 후보?
조선일보 2004 동인문학상 후보에 고종석씨 작품선정 논란
 
황진태   기사입력  2003/12/18 [15:22]

모처럼 조선닷컴에 가보니 조선일보가 올해 동인문학상을 뽑는다는 기사가 올려졌다. 나는 동인문학상의 심사위원이 ‘종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프랑스의 ‘공쿠르’를 따라 하는 것처럼 보여서 무지 웃었다. 그 공쿠르의 형식만 모방(imitatio)하면 동인문학상이 공쿠르 문학상이 되는 줄(mimesis) 착각하는 심사위원 중에 원로 문인이신 박완서 씨도 있다. 소설가 황석영 씨가 동인문학상을 거부했던 것을 이해 못하는 박완서는 2년 전 ‘상처받지 않을 문학의 권리’를 내세우면서 조선일보가 키워 준 이문열이 불러일으킨 홍위병 논란을 빌미로 발생한 네티즌 주도로 거행된 이문열 작품의 장례식을 비난했었다.

▲조선일보 기사, 2004 동인문학상 심사 개막   ©조선일보
여기서 잠깐 ‘아흐리만’을 생각해보자. 그는 고등학교 재학시절 조선일보가 후원한 논술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고서도 ‘단지 조선일보라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어떻게 ‘원로문인’이신 박완서는 고등학생보다도 조선일보의 문제성을 모르는 걸까. 2년 후 지금, 좌파매체에서 활동 중인 아흐리만의 위치와 2년이 지나더라도 변함없이 ‘종신’ 심사위원인 박완서의 위치에서 그는 아무래도 아직도 조선일보의 문제점을 모르는 거 같다.

이미 <창작과 비평>의 조선일보와의 밀월관계 등에서 조선일보와 문학계 커넥션과 관련된 여럿 비판 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런 종류의 글을 쓰는 이유(이런 비판은 비평기계인 문학평론가 이명원 씨가 전문이 아니던가.)는 조선닷컴에 실린 기사제목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2004 동인문학상’ 심사 개막 고종석, 김영하씨 작품 새해 첫 후보작에”

한국일보 논설위원 고종석 씨의 작품이 후보작이 되었다니. 고종석이 <인물과 사상> 편집위원을 하기 전에도 스스로를 ‘강준만 패거리의 일원’으로 인정하며 그가 해온 안티조선 활동을 조선일보가 안다면 어떻게 동인문학상 후보에 그를 올려놓을 수 있는지 코미디다. 최장집 왜곡보도사건으로 조선일보 이한우 논설위원이 <인물과 사상>에 대해서 소송에서 승소하고서는 가시적으로도 <조선일보>와 <인물과 사상>이 앙숙임이 드러난 상태에서 이렇게 태연하게 <인물과 사상> 편집위원이자 안티조선 논객을 자신들의 현실과는 결여된 공중부양하는 문학상에다가 올리려 하다니. 나는 이러한 후안무치가 고종석의 명예훼손으로 생각돼서 이한우 논설위원마냥 조선일보를 고소할까 보다.

▲엘리아의 제야 /고종석 저     ©문학과 지성사
특히나 정과리의 경우 고종석과 <문학과 지성사>를 통해서 안면이 텄다고 하나 고 씨의 소설 ‘엘리아의 제야’에 대해서 어줍짢게 “자기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과 점검이 두드러졌다” “자기에 대한 비판이 오히려 자기 위안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께름칙했다”는 평에 나는 결코 동의 할 수 없다. 조선일보의 널리 알려진 정과리가 ‘엘리아의 제야’에 나오는 ‘파두’를 제대로 읽어보았는가. 조중동에 대한 고종석의 현실비판을 소설형식을 빌어서 친구와의 논쟁으로 승화시킨 고 씨의 글을 통해서 나는 <서얼단상> 이후 계속 관철되고 있는 고종석의 자아의 “끊임없는 불안과 점검”을 확인할 수 있었지 결코 정과리 말대로 자신의 점검이 “자기 위안”으로 작용하지 않았으며, 그 치열한 고민에 동화가 됐을지언정 “께름칙”하지 않았다. 정과리가 정 께름칙하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평소 자신의 조선일보 상종에 대해서 께름칙함을 모르고 있다가 고종석의 소설이 비로서 정과리, 자신을 비추어 주는 ‘거울’로써 조선일보와 상종하는 자신의 께름칙함을 보게 된 것임으로 오히려 고마워 해야 할 것이다.

고종석의 소설에 대해서 역시 박완서도 다음과 같이 평을 남겼다. “무엇을 말했나를 따지기 이전에 글이 그냥 좋았다.” 차라리 박완서는 여전히 ‘상처받지 않을 문학의 권리’를 주장하며 조선일보의 문제의식이 없어서 “그냥 좋았다”라고 말한다. 최소한 가식만큼은 느껴지지 않으니 역시 정과리보다 ‘원로’임이 묻어난다.

기자가 장담하건데 고종석이 동인문학상을 수상 받을 이유는 0%다. 조선일보는 머리가 나쁜 건가. 나는 조선일보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보다는 수상을 거부했다는 소식을 더 먼저, 더 많이 접했다. 차라리 이럴 바에야 안티조선과는 상관없는 사람을 골라서 후보작을 골라라. 이래서야 어디 동인문학상이 ‘공쿠르’문학상의 발끝이라도 도달하겠는가. 아무렴 신문값도 600원으로 인상했는데 설마 상금 주기가 아까워서 고종석 같은 인물을 ‘일부러’ 고른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박완서 같은 ‘원로문인’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공중부양의 대가로 거듭나셔서 절대 현실로 귀환하실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조선일보를 추진력을 미끼로 문학계의 샛별들마저 박완서의 공중부양을 어쭙잖게 따라 배울 위험이 있어서 기자에게 어린시절 비판적 글쓰기란 ‘양철북’을 치게 해주신 ‘귄터 그라스’의 문학과 현실참여의 주옥같은 말씀으로 마무리 짓겠다.

“독일 문학계의 젊은 세대들은 계몽주의에 내재한 전통, 즉, ‘아가리를 열고’ 참여하는 전통을 이어가려는 의사도 흥미도 거의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홍세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에서 재인용.)

한국 문학의 샛별들부터라도 제발 ‘아가리를 열기’ 바란다. 공중부양은 서커스에서 하는 것이다./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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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2/18 [15:2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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