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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해야 할 일을 개인에게 떠넘기지 말기
[류상태의 종교산책] 교인들에게 무거운 의무를 지우는 목사를 조심하십시오
 
류상태   기사입력  2014/08/09 [11:26]

1. 이야기 하나


농장을 지키는 개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잘 훈련된 셰퍼드였지요. 어느 날 주인이 여행을 떠나며 개에게 당부했습니다. "내 양들을 잘 돌보아다오."


주인은 빵 열두 덩이를 하루치 음식으로 정해주었습니다. 열 마리의 양에게는 각 한 덩이씩, 덩치가 크고 운동량이 많기에 개의 몫으로는 두 덩이를 주었습니다. 이윽고 주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개를 쓰다듬어주었습니다. "네가 있어 안심이 되는구나."


주인이 떠나자, 개는 양들이 서로 싸우지 않도록, 그리고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내도록 훈련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 다음날 아침에 흰 밀가루를 잔뜩 뒤집어쓰고 두꺼운 천으로 전신을 가린 채 양들이 잘 다니는 길목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도와주세요. 며칠째 아무 것도 못 먹었어요. 배고파 죽겠어요."


양들은 자기 빵에서 조금씩 떼어 노숙양에게 주었습니다. 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양들이 모아준 빵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물론 자신의 몫으로 할당된 두 덩이의 빵도 먹어치웠지요.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개는 어제와 똑같이 변장을 하고 엎드려 양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양들이 다가오자 개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도와주세요. 배가 고파 죽겠어요."

양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습니다. 사실 자기 몫의 빵 한 덩이는 충분한 양이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양들은 그날도 자기 몫에서 조금씩 떼어내어 불쌍한 노숙양을 도와주었습니다.


또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노숙양은 거기에 그대로 엎드려 있었습니다. 어떤 양은 그를 외면했습니다. 어떤 양은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할 수 없이 자기 빵에서 일부를 떼어내 그에게 건넸습니다. 그렇게 노숙양은 날이 갈수록 점점 외면을 받게 되었습니다.


개는 화가 났습니다. 이럴 수가 있는가? 동료의 고통을 이렇게 외면하다니... 개는 양들의 양심을 일깨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장 연설을 하려면 배가 많이 고플 테니 충분히 먹어두어야겠다고 생각한 개는 양들이 모아준 얼마 안되는 빵과 자기 몫의 빵 두 덩이를 맛있게 먹어치웠습니다.


드디어 개가 양들을 소집했습니다. 양들이 모두 모였지만 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들의 양심을 늘 불편하게 했던 노숙양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노숙양은 두꺼운 천을 벗어던지더니 천천히 일어나 몸을 떨어 하얀 밀가루를 모두 털어냈습니다.


깜짝 놀라는 양들을 둘러보며 앞으로 나선 개가 천천히 입을 열어 훈계하기 시작했습니다. "너희들은 배고파 굶주리는 동료를 외면했다. 주인님이 너희들의 이런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지 생각해 보았느냐?"


양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흐느껴 우는 양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을 꾸몄느냐고 따지는 양도 있었습니다. 개는 분노해서 이렇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너희의 양심을 일깨우기 위해 그랬다는 걸 모른단 말이냐?"


2. 이야기 둘


저는 최근에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랍니다. '교인수 1만명의 미국 대형교회 목사가 노숙인이 된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된 글의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예레미아 스티펙이라는 목사는 어느 일요일 오전 자신이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는 한 교회 근처에서 노숙자로 변신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하지만 교인 중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온 사람은 불과 세 명에 불과했다.


스티펙 목사는 교회로 향하는 교인들에게 음식을 사려고 하니 잔돈 좀 달라고 했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예배시간이 되어 교회에 들어간 스티펙 목사는 맨 앞자리에 앉았지만 예배위원들의 저지를 받고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맨 뒷자리에 겨우 착석하게 된다.


이윽고 새로운 목사가 부임했다는 광고시간, 맨 뒷자리의 스티펙 목사는 노숙인 차림 그대로 강단에 올라갔고 교인들은 경악스러워했다. 그는 곧장 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40절까지를 읽어 내려갔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스티펙 목사는 이날 오전 자신이 겪었던 일을 말하면서, "오늘 아침 교인들이 모이는 것을 봤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었다. 세상에는 교인들이 많다. 하지만 제자는 부족하다. 여러분은 언제 예수의 제자가 될 것입니까?" 라는 말을 남겼다.


3. 공동체의 몫과 개인의 몫


위의 글을 읽고, 과연 "교인수 일만 명의 대형교회 목사" 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동으로 설교하는 목사님이셨네요. 교인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을까요? 아울러 얼마나 무거운 숙제를 안게 되었을까요?


이런 일을 반복해서 겪게 되면, 양심의 가책이 이성의 판단을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양심을 일깨운(?) 대상에게는 극도의 존경심을 갖게 되고,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맹목적으로 따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새롭지 않습니다. 교회가 오랫동안 해 온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한국의 대형교회에서도 똑같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 봅시다. 어느 목사님이 이렇게 변장을 하고 우리에게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양심이 무디어서 그런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지만 한국의 많은 선량한 교우님들은 매우 불편해하실 것 같습니다.)


어쩌다 노숙인과 마주칠 때, 전철 안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분을 만날 때, 우리는 불편합니다. 그들의 손을 잡아주지 못해 미안하고, 그들이 내민 작은 그릇에 동전을 놓아줄 때보다 외면할 때가 더 많아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인이 이런 일을 맡아서 하기에는 너무 벅차고 부담스럽기에, 나라와 지방자치단체에 대신 해달라고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닌가요? 물론 그들이 수고하는 대가로 우리가 내는 세금의 일부로 그들이 월급 받는 것을 기꺼이 허락해주고 있지요.


하지만 나라가 국방과 치안, 외교 등 거창하고 중요한 일에 매진하느라 세밀한 곳까지 돌보기에는 너무 바쁘고 돈도 손도 모자란다기에(사실 변명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러면 교회에서 이런 일을 대신 해달라고 헌금을 내는 것이 아니던가요? 그리고 그들(목사를 비롯한 유급 직원들)이 우리 대신 수고하기에, 우리가 내는 헌금의 일부가 그들에게 월급으로 지출되는 것도 기꺼이 허락하는 것이구요.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왜,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을 개인에게 하라고 강요하나요? 언제 예수의 제자가 될 거냐구요? 그렇게 묻는 목사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요? 혹 그들을 위해 목사관이나 당회장실을 내어드렸나요? 예수님이신 그들을 대접해드리기 위해 교회 안에 있는 큰 방 몇 개쯤 내놓으셨는지요? 그런 실천 없이 설교만 했다면 당신은 분명 사기꾼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무거운 짐을 개인에게, 특히 삶에 지친 소시민에게는 지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차 없이 비판한 대상은 힘없는 소시민에게 온갖 종교적 규례와 의무를 들이대며 괴롭힌 종교조직이었고 그 지도자들이었습니다.


한국 교회 목사님들께, 특히 보수정통이라고 자부하시는 목사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삶에 지친 교우님들에게 과다한 의무를 지우지 마십시오. 그들에게 감당키 어려운 숙제를 내주지 마십시오. 그냥 그분들을 위로만 해주십시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은 소시민에게 과다한 짐을 지우시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들과 먹고 마시며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셨습니다. 이런 저런 부족함은 많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딸이며 아들이라고 인정해 주시고 안아주셨습니다. 그것으로 족했습니다. 다른 생각, 다른 문화, 다른 종교를 가진 이웃들에게 내 종교만 옳다고, 이리 와야만 구원받는다고 강요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발 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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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8/09 [11:2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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