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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선거를 너무 쉽게 봤어요
[정문순 칼럼] 진보당 후보 심판하자고 한 진보신당 후보 지지의 어려움
 
정문순   기사입력  2012/04/19 [01:37]
이주민 지원단체에 도우미로 들락거리다 보니 관념으로서의 이주민 존재와, 피와 살갗을 가진 개별 존재가 다르게 비칠 때가 있습니다. 자격도 안되면서 어떻게든 한국에 눌러앉으려고 하거나, 한국인들을 죄다 나쁜 놈으로 치부하거나, 돈에 목숨을 거는 모습을 볼 때는 구질구질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번 선거도 저한테는 관념과 구체적 현실의 괴리를 절감하게 해주었습니다. 

전체 선거판을 평가할 능력은 저한테 없지만, 창원 성산구 선거구로 좁혀 말하면 진보신당 김창근 후보는 캐스팅 보드 역할을 해냈다고 봅니다. 자신은 못되더라도 1등(새누리당)과 2등(통합진보당)의 순위는 만들어 준 셈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진보신당의 욕심 때문에 ‘진보정치 1번지’ 창원을  빼앗겼다는 말이 들립니다. 진보신당은 남이 잘 되도록 도움은 되지 못하면서 못되게 하는 데만 능한 존재로 낙인찍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양보와 배려는 힘센 자가 약한 자한테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요구가 아닙니다. 김 후보가 얻은 득표율 7.12%도 결코 무시해도 좋을 수치가 아닙니다. 설령 아무리 수치가 작아도 머릿수가 적다는 이유로 이념과 노선의 차이를 접으라고 요구할 권리는 누구한테도 없습니다. 어설픈 봉합으로 나중에 말썽이 되기보다는 처음부터 따로 있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진보신당은 선거 내내 지역 시민단체들의 지원도 못받고 외톨이였습니다. 해결사를 자처한 ‘경남의 힘’은 최종 후보 단일화도 되지 않았는데 덥석 통합진보당 손석형 후보의 손을 들어줬지요. 창원이 진보신당 때문에 빼앗긴 거라고 한다면 거제는 어떻습니까? 거제의 김한주 진보신당 후보도 선거 막판까지 혼자였지요. 창원의 분열을 빌미로 그쪽 통합진보당은 경선에서 이긴 진보신당 후보를 제대로 돕지 않았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진보신당의 존재 때문인지 갈수록 오른쪽으로 간다는 느낌입니다. 진보통합당은 북한의 핵 실험과 세습체제에 대해 애매모호하거나 편드는 듯한 태도도 그렇고, 이념적으로는 순수한 좌파가 아닌 좌우가 뒤섞인 정당에 가깝습니다. 국민참여당을 흡수한 뒤로는 더 오른쪽을 향하는 것 같습니다. 옛 창원 지역구 통합진보당 후보들의 통합시청사 사수 삼보일배도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몰라도 그러면 안되는 거였지요. (창원, 마산, 진해의 통합으로 탄생한 통합창원시는 시청사 소재지 결정을 두고 세 지역 시의원들이 격하게 대립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김창근 후보를 편들고 싶지는 않네요. 김 후보측이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도의원을 중도사퇴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 손 후보는 당신들의 주장대로 흠결이 많은 후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지지가 고스란히 옮아가야 한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오는지요? 상대방의 흠결에 근거하여 반사효과를 노리는 것을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이 자격이 안된다고 해서 그와 각축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곧 참진보라는 근거를 말해 준다면 좋겠습니다. 정책과 노선의 차이 때문에 화합하지 못했다면 얼마든지 이해합니다. 그러나 김 후보는 그저 손석형이라는 사람이 싫다는 것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심판 대상이 새누리당인지 특정인인지 헷갈리더군요. 

진보신당의 대의는 지지하지만, 경남의 진보신당에게는 좀 더 실력을 키우라고 나오라고 말하고 싶네요. 당신들은 선거를 너무 쉽게 봤어요. 이제는 없어진 당의 일원으로서 권고하노니, 특정인 낙선이 정의의 실현인 줄 아는 그대들은 선거를 흙탕물로 만든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선거를 새누리당 심판이 아닌 개인 심판으로 몰고 간 어리석음을 비웃습니다. 

꿋꿋한 자존심을 지키고 당당하게 패배를 택한 진보신당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전체 진보신당은 그럴지 몰라도 경남은 아닙니다. 원칙도 없고 유연성은 더 없고 흠집 내기로 일관한 경남 진보신당은 아닙니다. 정당을 가릴 것 없이 경남의 진보 정치는 그대로 노동운동의 연장선상이고 선거에서도 연고와 인맥에 의존한 득표 활동이 지배했습니다. 새누리당을 욕할 것 없습니다. 어쩌면 선거판에 그대로 옮겨온 뿌리 깊은 운동 세력들의 다툼에 이용당한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부디 앞으로는 머리로서의 대의가 아닌 가슴으로도 동의를 느낄 수 있는 존재로 다가오시기를.

* 이글은 경남도민일보 4월 17일 게재한 글을 조금 손본 것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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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4/19 [01:3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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