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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오적’에 빗댄 ‘잃어버린 10년’
[김주언의 뉴스레이다] 끝없는 이 대통령 측근비리, 지금 도둑시합 벌이나
 
김주언   기사입력  2011/06/27 [17:59]
“하루는 다섯 놈이 모여/십년 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날이 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이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 근을 걸어놓고/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자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시합을 벌이는데…”

시인 김지하는 박정희 정권의 부패상을 ‘오적’이란 담시를 통해 이렇게 풍자했다. 1970년 5월 ‘사상계’에 발표됐으니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것은 ‘10년 전 이맘때’인 5.16쿠데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김지하는 이 담시에서 “치자즉도자(治者卽盜者)요 공약즉공약(公約卽空約)이니/우매(遇昧)국민 그리 알고 저리 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 골프 좀 쳐야겄다”고 비꼬았다.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고 했던가. 박정희를 오마쥬하며 보수회귀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집권 말기에 들어서면서 사회 도처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지적처럼 “정권 말기라고 해도 이렇게 부패한 건 처음”이라고 해야 할까. 이 대통령의 측근 비리는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김지하 시인의 풍자대로 ‘도둑시합’을 벌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이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구속된 뒤를 이어 배건기 청와대 감찰팀장, 최영 강원랜드 사장, 장수만 방위사업청장이 구속되거나 사직했다. 최근 불거진 저축은행 불법비리에는 수많은 측근들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대선당시 MB캠프의 핵심이었던 은진수 전 감사위원을 비롯해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 김해수 전 비서관,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등이 그들이다. 수순대로 라면 ‘측근비리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아마도 ‘특검’에서는 그동안 그들이 닦아온 ‘일취월장 묘기’의 전시장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과정부터 ‘잃어버린 10년’을 내세웠다. 당시만 해도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제야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진보 집권 10년 동안 잃어버렸던 권력을 되찾아 치부(致富)할 있게 됐다는 회심의 미소일 것이다. 그들만의 사전엔 ‘권력=부’라는 등식이 쓰여 있을지도 모른다. 김지하식 표현대로 ‘치자즉도자(治者卽盜者)’이니까, 다른 말이 필요없을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의 ‘반값 등록금’ 공약(公約)도 공약(空約)으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그런지 더 이상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언론들은 이명박 정부도 역대 정부처럼 ‘4년차 증후군’에 빠졌다고 분석한다. 집권초기에는 강력하게 개혁을 추진하다가 집권 4년차에 들어서는 집권당과 청와대의 갈등, 대통령의 측근 및 친인척 비리가 불거지면서 레임덕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모두 비슷한 전철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비리사건은 규모나 사회적 파장으로 보아 역대 대통령들과 궤를 달리 한다. 특히 그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해온 진보집권 시기에 비해서는 질적으로 다르다.

김대중 대통령의 레임덕을 몰고 온 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는 벤처기업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권력형 비리이다. 물론 여기에 김 대통령의 아들들이 개입해 권력형 비리고 비화했고 DJ의 레임덕을 가속화시켰다. 노무현 정부의 집권말기에 불거진 러시아 유전개발과 행담도 개발을 둘러싼 스캔들은 태산명동서일필로 끝났다. 노 대통령의 죽음을 몰고 온 박연차 게이트는 ‘먼지 털기’ 식 수사로 무리수였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평가이다. 물론 노 대통령의 친형이 다른 사건으로 구속되기는 했지만, 별다른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대통령 집권말기에 터지기 시작한 비리는 연루된 인물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엮어져 나오는 데다 비리관련 금액도 천문학적인 숫자에 이른다. 국민의 뇌리에서 사라졌던 독재정권 시절 비리의 대명사인 ‘물방울 다이아’까지 등장했다. 게다가 건설현장의 함바집에서 경제의 혈맥이랄 수 있는 금융기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악취가 풍긴다. 저축은행 비리에서 보듯이 서민의 고혈을 빨아 먹은 흔적도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은진수 위원 외에도 더 많은 권력자들이 연루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의 수사와 앞으로 열릴 국회 청문회를 지켜볼 일이다.

권력층의 비리는 일반 공무원들의 부패를 불러온다. 고위층의 도덕적 해이는 곧바로 공직사회의 도덕적 불감증으로 연결된다. 유흥비 등을 업자에게 대납시킨 공무원도 적발됐다. 이 대통령의 지적처럼 “온통 나라 전체가 비리 투성이”이다. 이 대통령은 “공직자들이 3김시대 행태를 이어온다”고 말했지만, 이는 전형적인 ‘네 탓’일 뿐이다. 공직자 비리가 4년 전에 비해 5배나 증가했다는 통계수치가 이를 잘 말해준다. 고위 권력자의 ‘잃어버린 10년’ 심리가 일반 공직사회에도 침투했다고나 할까.

담시 ‘오적’의 포도대장은 이렇게 부르짖는다. “만장하옵시고 존경하옵는 도둑님들!/도둑은 도둑의 죄가 아니요, 도둑을 만든 이 사회의 죄입네다/여러 도둑님들께옵선 도둑이 아니라 이 사회에 충실한 일꾼이니/부디 소신(所信)껏 그 길에 매진, 용진, 전진, 약진하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또 바라옵니다.” 이 대통령의 측근 비리를 수사하는 검찰의 자조(自嘲)가 아니길 기원한다.

 
언론광장 감사, <시민사회신문>(http://www.ingopress.com)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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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6/27 [17:5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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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천환 2011/06/28 [11:07] 수정 | 삭제

  • 재벌권력은 정치권력의 통제하에

    정치권력은 시민의 통제하에 놓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