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순의 문학과 여성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진보정당 통합의 상상이 안 즐거운 이유
[정문순 칼럼] 한 쪽은 구태의연, 다른 쪽은 미숙
 
정문순   기사입력  2011/06/24 [20:12]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양쪽 지도부가 전격 통합을 천명했다. 무효가 되는 듯하더니 또다시 합당의 잰걸음을 재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두 집안이 다시 하나가 된다고 하더라도 양쪽 평당원들의 반발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특히 다른 지역은 몰라도 경남 지역은 두 정당 간에 정서적 반목이 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자기 틀에 박힌 정당 - 틀 못 갖춘 정당
 
두 정당의 통합 추진력은, 피땀 흘려 이룩한 민주주의를 열심히 말아먹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다시 집권하면 안 된다는 공포감 하나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존재가 둘의 재결합을 가능하게 해주더라도, 총선과 대선 이후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공동의 적이 눈앞에 육박하고 있을 때는 마뜩잖아도 손을 잡을 수 있지만, 한나라당 재집권 저지라는 목표를 이룬 뒤에도 사이가 다시 틀어지지 않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얻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은 그동안 진보세력의 분화가 잘 보여주었다.
 
진보세력은 돈과 이익이 아닌 가치와 이념을 위해 싸우는 집단인 만큼 보수 기득권 세력의 특기인 똘똘 뭉치는 응집력과 연대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더 많은 이익을 얻는 데 혈안이 된 집단은 자존심을 양보하는 것이 별것 아니지만, 가치관의 지향점을 최고의 지표로 삼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과 다름없는 것을 양보하기 어렵다.
 
진보신당이 민노당에서 갈라져 나온 이유는, 물론 북한의 핵개발이라는 고비에서 여실히 드러난 민노당의 태도 때문이었다. 민노당 주류는 민족을 공멸에 몰아넣을지 모를 북한의 핵개발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3대 세습 체제를 옹호하는 태도를 줄곧 고집하는 데서 보듯 완고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을 보여왔다. 민노당의 북한 핵개발 옹호가 분당을 낳더니, 세습 체제 옹호는 지금 통합을 가로막고 있다.
 
중요한 것은 북한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아닐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시대가 바뀌고 남북간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체제 대결이 사실상 끝난 시점에서도 한 번 굳어진 인식을 바꿀 줄 모르는 민노당의 완강하고 낡은 태도이다. 북한을 어떻게든 봐주려는 태도는 수십 년 전 주사파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 시절 북한의 단파방송을 열심히 들으며 운동권에서 행세했던 이들은 지금은 뉴라이트 운동의 기수가 되어 1달러 든 대북풍선을 날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북한 독재체제가 분단과 남북 대결이라는 구조적 산물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북한 스스로 남북 적대 구조에 적극적으로 편승한 결과물인 점도 분명하다. 북한이 대대로 권력을 세습하고 핵실험을 할 수밖에 없는 요인을 무조건 이해해줘야 하고 뭐든 남 탓으로 돌리면 그만일까. 그런 논리라면 남한의 역대 독재체제는 물론이고 남북대결 구도에 기대고 있는 현 정부도 이해하지 못할 게 없다. 민노당은 시대착오적이고 아집에 가까운 옹고집의 관성부터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공동목표 이룬 뒤 좋은 관계 유지할까
 
그러나 진보신당 역시 올해 9월 전후로 설정해놓은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해서도 체질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창당 이후 진보신당이 보인 행보는 북한에 대한 태도를 빼고는 민노당과 갈라설 이유를 찾지 못할 정도로 참신함이 없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와 생태계 보호를 강령으로 삼은 정당이 창원터널 무료화를 주창하여 이루어내고 창원2터널 조기 개통을 주장하는 것은 격에 어울리는 일이 아니다.   
   
창원터널 요금소가 사라지면 거기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직장을 잃어야 하고, 인간이 야생동물이 활보하던 길을 뚫어 독차지하고 자연을 갈아엎어 편리함을 얻은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친다면, 통행료 무료화는 진보정당이 할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진보신당이 정체성을 잃고 오락가락하기까지 하는 모습은 신당 딱지를 떼지 못하는 창당 초기라서 그런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
 
자신만의 틀에 박혀 있는 정당과, 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정당의 통합 논의는 미래를 풍부하게 상상하는 힘을 가로막고 있다
 
* 이 기사는 6월 23일자 <경남도민일보>에도 게재됐습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1/06/24 [20:12]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