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독재자들은 올림픽 등 국제행사를 장밋빛 희망으로 포장하여 통치기반을 강화하려 했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베를린 올림픽을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축제로 포장하여 독재를 정당화했다. 한국에서는 전두환 정권이 88올림픽을 선전하며 장기집권을 꾀하다가 무산됐다. 전두환 정권은 올림픽을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들 대회만 잘 치르면 하루아침에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것처럼 포장했다. 정권홍보 수단으로 전락한 제도권 언론매체를 활용한 ‘선진 질서’ 확립 캠페인도 단골메뉴였다. 민주화를 요구하며 올림픽 개최를 반대한 국민은 ‘민족 반역자’로 취급됐다. 그러나 전두환은 올림픽 개막전에 시민의 힘에 무릎을 꿇었다. ‘올림픽’만 치르면 선진국에 들어설 것이라는 믿음도 ‘내림픽’으로 막을 내렸다.
전두환 정권의 올림픽은 이명박 정부 들어 ‘G-20 정상회의’로 진화했다. 지난 해 이명박 대통령은 G-20 서울 정상회의를 유치한 뒤 귀국길 비행기 안에서 만세를 불렀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올림픽 유치가 결정됐을 당시의 전두환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G-20 서울 정상회의를 통해 집권 후반기 레임덕을 방지할 수 있는 통치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됐다는 환호성이 만세 소리에 숨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G-20 정상회의’가 무엇인가. 2008년 세계경제를 일시에 ‘충격과 공포’에 빠트린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의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당시 미국 부시대통령이 고안해낸 돌파구였다. 미국은 G-7에 러시아가 추가된 G-8만으로는 세계경제의 혼란을 수습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새로운 개도국들을 추가한 G-20 정상회의를 제안했다.
G-20 정상회의의 슬로건은 ‘세계 경제의 지속 가능한 균형성장’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혼란에 빠진 미국경제의 위기비용을 개도국에 분담시키기 위한 전략의 하나였다. 미국이 처해 있는 경제위기를 G-8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새로운 신흥국가들을 참여시킨 것에 불과하다. 서방 선진국들이 자신들만으론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어렵게 되자 개도국들을 참여시킨 것이다. 부자들의 계모임이 삐끗해지자 계돈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몇몇 말 잘 듣는 졸부들을 끼워준 셈이다. 졸부들은 부자들의 모임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황송해서 자신의 돈을 그들에게 바치는 형국이 돼 버린 것이다.
G-20 정상회의는 워싱턴 첫 회의에서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확대 정책’, ‘국제금융기구의 재원 분담’ 등을 합의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후 런던과 피츠버그를 거쳐 올해 6월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4차례의 정상회의를 가졌다. 회의가 진전되면서 각국의 이해관계가 대립하기 시작하여 토론토 회의에서는 ‘각국이 알아서 한다’는 이상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5차 회의에서 어떤 합의를 이끌어낼 지 의심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이 G-20에 포함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선진국에 진입한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G-20 정상회의 유치 직후 이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한국 개최는 우리나라가 세계외교의 중심에 서서 선진국에 진입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선전은 요즘 매일 언론매체를 도배하고 있다.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신흥국 중 첫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된 것은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리하기에 가장 유효하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G-20 정상회의 유치에 따른 경제효과도 믿을 것이 못된다. 재벌의 대리인인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하고 언론매체가 대대적으로 선전해준 ‘21조 5,576~24조 6,395억 원에 이를 것’이란 경제효과는 뻥튀기에 불과할 뿐이다. 부산에서 열린 APEC과 인천의 아시안게임도 수 조원에서 수십조원의 경제효과가 날 것이라고 예측됐지만, 국제행사를 자주 치렀던 부산과 인천은 가장 악성적인 재무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언론매체를 동원해 G-20정상회의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앵무새처럼 읊어댄다. 게다가 정상회의 성공을 위한 ‘경비’와 ‘보안’에 열을 올린다. TV에서는 경찰 특공대의 테러진압 훈련을 자세히 보여준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검문검색도 계획돼 있다. 회의가 열리는 곳에는 ‘명박산성’을 쌓아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고막손상이 우려되는 ‘음향대포’와 최루액, 고무탄까지 사용하겠다고 한다. 일반 국민에게는 선진질서를 내세우며 G-20 정상회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선진질서’를 강요한다.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국민의 군기를 잡겠다는 심산인가. 인권 따위는 부질없는 사치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인권단체들은 “2005년 APEC 정상회담 등 여러 국제회의에서도 무리없이 행사를 치렀는데, 특별법까지 만들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계엄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제 한국에서는 G-20 정상회의에 반대하면 ‘민족 반역자’로 취급받을 지도 모른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반세계화 시위대’도 한국 경찰이나 이명박 정부에게는 ‘테러리스트’로 취급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왜 G-20 정상회의에 대항하는 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부자나라의 권력자들이 모여 권력자와 부자와 은행을 위한 대책을 논의하는 행사’에 들러리를 서면서 그들의 하수인 역할을 자초하려는 것일까. 그러나 반 세계화 시위대의 함성을 음향대포로 가려질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G-20 정상회의가 끝나면 국격이 높아지고 선진국이 될 것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거짓말도 들통날 것임에 틀림없다. 재벌기업 사장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부자가 될 거라는 믿음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 국민은 지난 2년 반 동안 충분히 체감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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