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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회와 선진국민연대, MB정권의 종말
정책 차이 없이 충성경쟁뿐인 비선조직들, MB 시대의 비극
 
우석훈   기사입력  2010/07/13 [02:18]
'영포회'(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영일·포항' 출신의 공직자 모임) 얘기가 한참일 때 공교롭게도 포항을 방문하고 영일만에도 들려볼 기회가 있었다.

이 지역 공무원들의 모임이 영포회라고 하지만, 그거야 권력을 탐하는 몇 사람의 일들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이야 그냥 척박하게 하루하루 박봉에 시달리면서 살아가는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어젯밤 늦게 누군가에게 메일을 하나 받았는데, 영포회에 대한 얘기가 담겨 있었다.

한때는 등을 맞대고 지내던, 거의 피를 나눈 맹방과도 같은 사람이었는데 인생의 굴곡을 몇 번 겪더니 한나라당 쪽에서 대선을 몇 번 치루었드랬다. 그래봐야 장관 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에는 끈 떨어진 인생이 되어서 언제 시간 되면 소주나 한 잔 하면서 굴곡진 삶에 대한 위로주라도 한 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양반도 영포회란다. 아, 그렇구나...

문득 떠오른 생각이 존 웨인이 만든 1968년의 <그린베레>라는 영화였다. 헐리우드 영화들은 대개 정치적 색깔이 아주 짙으면서도 미국 정치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정치적이며 또한 극우파를 대표하는 영화로 나는 <그린베레>를 꼽는다.

이 영화는 월남전이라는 상황에서 미국인의 애국관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개탄한 존 웨인이 백악관에게 직접 편지를 쓰고, 자신의 돈도 일부 투입해서 정부와 개별 자본을 들여서 만든 영화이다. 요즘 보면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나' 싶게 너무 뻔한 전개지만, 어쨌든 영화의 정치적 의미에서 그리고 극우파라는 시각에서 영화사에 한 줄 남게 된 영화인 셈이다.

좌파는 분열로 망하고 우패는 부패로 망한다고 하지만, 우파 내에도 언제나 분열은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우파의 분열이 강경파와 온건파, 속칭 매파와 비둘기파로 불리는 구분이다.

어떤 사안이나 정책을 놓고 강경파와 온건파는 우파 내에서도 존재하기 마련인데, 이 분열이 생각보다 심각하고 때때로는 치명적인 권력 다툼으로 가기도 한다. 부시가 매파를 대변한다면, 메케인은 최소한 클린턴보다도 더 온건한 측면이 있을 정도로 또 다른 흐름을 대변했다. 부시파와 메케인파의 싸움 역시 그냥 해보는 장난은 아니었다.

영포회는 공무원 내에서는 비선의 문제이다.

비선 조직의 문제는 공무원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특히 인사철이 다가오면 이런 비선 라인들이 온갖 난리를 치곤 한다. 노무현 정권 때에도 부산파니 등등 아주 골치 아팠지만, 양상만으로만 보면 명박 시대에 확실히 비선들이 중요하게 작동한 것 같기는 하다. 민주당은 요즘은 좀 다르나? 무슨 xx고니 yy고니, 불과 1주일 전까지도 그러구들 있는 걸 내 눈으로 본 적이 있다.

비선은 정의롭지는 않지만, 아무리 잘 정돈된 조직에도 비선이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듯하다. 검사 조직에 대해서 약간의 조직론 연구를 해볼려고 했더니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 용어들이 공안감사라는 용어들이다.

명박 집권 3년차를 맞아 드디어 내부의 알력이 밖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하면서 영포회니 '선진국민연대'(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외곽 지원조직으로 대선 이후 주요 인사들이 정·관계 요직에 대거 진출하면서 각종 인사 개입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조직)니, 그런 비선 라인들의 이름들이 툭툭툭.

물론 조직이 효율적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비선 라인들이 가능하면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더라도 제어 가능한 수준 혹은 지나치게 나서지 않는 정도인 것이 좋은데 명박 정부의 비효율성에는 그런 비선이 강화된 것도 좀 있는 것 같다.

현대그룹에는 비선이 없었나?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몽구파, 몽헌파 그 정도였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경복고와 서울고 그게 실체의 진실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문을 아직도 갖는다. 나는 평준화 이후에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이런 것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지만, 나를 사실상 현대그룹의 환경관리 담당으로 밀어넣은 사람들이 주로 경복고 출신들이었기 때문에 내 의지와 현실과는 아무 상관없이 경복고파로 분류되고 있었다. 그래서 본의가 아니게 서울고 사람들하고 척지는 일이 벌어졌었다.

정부에 들어간 다음에는 반대 양상이 벌어졌다. 나를 승진시키고 권한을 준 사람들이 서울고 출신들이 많아서 이번에는 역시 내 의지와 현실과는 상관없이 서울고파로 분류되기도 했었다.

영남과 호남의 대립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수인데, 명박 정부에서도 이게 완화된 정황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부산상고를 둘러싼 얘기들 만큼이나 또 전라도의 특정 고등학교를 둘러싼 얘기들 역시 호화찬란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렇게 기존의 질서가 꽉 짜여진 상황에서 영포회 같은 게 등장하는 것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고 또 그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런 조직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여튼 영포회와 선진국민연대, 이게 지금 한국 권력의 핵심층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비선조직의 이름인 것 같다.

또 찾아보면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 그를 보좌하던 서울시청 출신들도 어디선가는 뭘 하고 있을 것이고, 그런 식으로 별 희한한 비선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방송장악과 종합편성채널을 주도하던 그룹, 영화계를 장악하려던 그룹 뭐 그런 것들까지 치면 손가락, 발가락이 부족할 정도겠지만...

권력은 나누어지는 게 아니라서 아무리 민주주의라고 얘기하고 아무리 선진화라고 포장해도 그 내부에서 분화되고 분할되는 것은 필연이다.

점점 더 점입가경으로 들어가는 영포회와 선진연대 사이의 갈등을 보면서 그러나 그들은 존 웨인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이들이 비둘기파와 매파 사이의 관계로 이해되기 위해서는 정책에 대한 차별성 혹은 유연성 같은 것들이 기준으로 작용할 텐데, 두 군데 다 충성경쟁 외에 정책 운용상의 양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4대강을 예로 들어보자. 명박의 의지는 '무조건 임기 내에' 요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강경파는 더 빨리 정도가 될 것이고, 온건파는 하는 건 하더라도 보의 숫자를 줄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속도 조절이라도 좀 하자 이렇게 될 것 같은데, 영포회든 선진연대든 사실 그냥 '임기 내' 같은 입장인 것 아닌가?

하여간 명박 시대가 클라이막스로 향해 가는 것 같다. 영포회든, 선진연대든 결국은 권력의 한 다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클라이막스가 이제 종말로 가는 것 같다.

종말에 대해서 아쉬움을 느낄 것은 없지만, 그래도 한때는 한국이라는 이 거대한 시스템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주물럭했던 사람들인데 정책의 온건과 강경 그런 걸로 경쟁하거나 정책 운용의 방식에서 차이점을 드러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게 명박 시대의 비극 아닐까?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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