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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으로 편입되는 날
[김영호 칼럼] 대립보단 대화를 통해 화해 찾는 용기야말로 참다운 지혜
 
김영호   기사입력  2010/05/28 [17:19]

6월 25일이면 한국전쟁 발발 60돌을 맞는다. 그런데 천안함 사태가 해빙 조짐을 보이던 남북관계를 60년전으로 회귀시키고 말았다. 1989년을 기점으로 일순에 공산주의가 붕괴되었다. 하지만 한반도 북녘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며 폐쇄의 빗장을 풀 줄 몰랐다. 분단의 철책을 방풍림 삼아 바깥세상에서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을 거부해 온 것이다. 그래도 남녘의 햇볕정책이 봄바람처럼 불더니 녹을 줄 모르던 얼음장에도 금이 가는 듯했다. 그런데 천안함 사태가 삭풍을 일으켜 남북관계를 더 꽁꽁 언 결빙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한국전쟁이후 최대의 위기를 예고하는 상황이다.

김대중-노무현 10년간의 햇볕정책은 이른바 보수세력한테서 좌빨이라고 심한 시달림을 받아왔다. 퍼주기 논란을 빚는 햇볕정책의 뿌리는 10년을 더 거슬려 올라간다. 노태우는 밀사를 통한 물밑접촉으로 남북화해를 꾸준히 추구했다. 북방경제를 추진하는 한편 30억달러를 고리로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를 제주도로 불렀던 것도 그 까닭이다. 그 때 준 경협차관은 아직도 다 못 받고 있다. 햇볕정책은 김영삼이 먼저 시동을 걸었다. 무상지원을 안 된다는 미국 식량메이저의 제동을 뿌리치고 북한에 식량지원의 길을 텄던 것이다. 

만성적인 식량난과 핍박한 외환사정은 김대중-김정일, 노무현-김정일의 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금강산과 개성공단의 문이 열리고 경제협력의 폭이 넓어졌지만 북한은 핵개발을 중단하려는 의사를 비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 부시정부의 대북강경노선과 보조를 같이 하면서 화해의 물결은 냉각되기 시작했다. 남북이 험한 말을 주고받더니 공식-비공식 대화의 창구가 모두 단절되어 버렸다. 이 정부의 대북정책기조는 한마디로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경제적 지원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긴장을 고조시켜 왔다. 이 판에 한 발의 총성이 금강산의 문을 닫아버렸다. 여닫기를 되풀이하던 개성공단은 직원의 장기억류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사태까지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천안함 사태의 진전에 따라 폐문도 점쳐지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연간 쌀 40만t, 비료 20만t의 지원이 중단되고 경제교류가 축소되고 있다, 여기에 화폐개혁마저 실패하여 북한의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다. 경제사정이 절박하게 돌아가자 중국한테 구원의 손을 내밀었다. 신압록강 대교를 중국자본으로 건설하기로 했다. 인근의 위화도와 황금평 지역을 자유무역지구로 개발한다며 중국기업에 50년간 임대형식으로 개발권을 넘겼다.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이 100억달러 규모의 외자를 유치해 나진·선봉지구 두만강 유역의 도로, 항만, 철도를 건설할 계획이다. 나진항 1호 부두의 10년간 사용권도 중국에 넘겼다. 중국이 동해로 진출할 길이 열린 것이다. 그동안 소비재 수출, 지하자원 개발, 사회간접자본 개발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온 중국의 입김이 더 커질 판이다.

1980년대부터 중국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내세워왔다. 56개 민족으로 이뤄진 중국은 그 구성 민족과 영토의 역사를 모두 중국사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중에서도 동북공정(東北工程)은 2002년 2월 28일 정부 승인을 얻어 국책사업으로서 추진되고 있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한국사에서 지우는 작업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사는 시간적으로는 2,000년, 공간적으로는 한강 이남에 국한되고 그 이북은 중국사에 편입된다. 북한경제의 중국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중국에서 동북4성이란 말이 자주 들린다. 북한이 붕괴되는 사태가 발생하면 동북3성인 랴오닝성(遼寧省), 지린성(吉林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 이어 북한이 동북4성으로 편입된다는 소리다. 역사공정은 바로 동북4성의 논리적-역사적 배경을 제공하는 작업이다.

4월 26일자 뉴스위크에는 ‘북쪽 잃기--남한은 북방정책이 필요하다’란 칼럼이 실렸다. 영국 리츠 대학교의 명예선임연구원으로서 40년 넘게 한반도 문제를 연구해온 에이던 포스터 카터의 글이다. 서울은 아직도 북한을 자국의 영토라고 생각하면서도 북쪽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동독의 갑작스런 붕괴에 따라 발생한 독일의 통일비용에 비해서 점진적인 재통합을 위해 굶주리는 북한 동포에게 쌀을 지원하는 햇볕정책이 훨씬 싸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서울의 근시안적인 보수세력은 햇볕정책에 대한 불만이 크다고 한다. 통일까지 20년이 걸린 독일의 동방정책(Ostpolitik)을 배우는 서울의 북방정책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햇볕정책은 하룻밤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1966년부터 서독에서는 소련 이외에 동독을 국가로 승인하는 국가와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는다는 ‘할슈타인 원칙’이 서서히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1969년 10월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는 이 외교원칙을 공식으로 포기했다. 외교적으로 동독을 고립시키면서 수출확대를 통해 동유럽에 접근하는 동방정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대동독 정책의 최우선순위를 자유, 평화, 통일이라는 가치에 두었다. 자유와 평화를 통일보다 우선시하여 동독 주민의 자유로운 생활을 더 중시했다. 서독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과 협력을 통해 동독에 접근했던 것은 그 까닭이다. 그 결과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동독 주민들이 서독을 선택했고 주변국의 묵시적 승인 아래 독일통일이 이뤄진 것이다.

중국 본토의 하문과 대만의 금문도는 1958년부터 포사격의 대결장이었지만 이제 양안 공동의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경제교류가 양안의 대화를 이끌어내더니 2008년 11월 ‘3통’(三通)이라는 통상(通商), 통항(通航), 통우(通郵)가 실현됐다. 전면적인 교류협력시대가 열린 것이다. 같은 해 12월 21일 중국이 본토에 진출한 대만기업에 대해서도 자국 중소기업과 동등한 세제-금융 우대조치를 적용키로 했다. 작년부터는 대중문화의 문호도 활짝 열렸다. 중국 가수가 대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중국 탤런트가 대만 드라마에도 출연한다. 2008년 7월 59년만에 하늘 길도 열려 직항 전세기가 오간다. 이제는 군사교류까지 논의하는 단계다. 양안에 감돌던 전운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화평이 찾아온 것이다. 

1971년 4월 10일 미국 탁구선수단이 중국을 방문했다.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석한 중국 대표단의 초청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한국전쟁 참전에 따른 양국간의 적대관계를 고려하면 세계가 놀랄 사건이었다. 핑퐁외교의 성사로 이듬해 2월 21일 미국 대통령 리차드 닉슨이 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를 대동하고 베이징으로 날아가 주석 마오쩌둥(毛澤東)를 만났다. 이어 상하이 성명이 나왔다. 양국은 국가의 이익에 합치하게 국제관계를 유지하고 아·태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 해 6월10일 미국은 대중국 무역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뒤이어 1978년 12월 대만과 국교를 단절하고 이듬해 1월1일 중국과 수교했다. 핑퐁외교는 1955년부터 1970년대 관계개선까지 무려 136차에 걸친 대사급 회담이 맺은 결실이다. 

남한의 체제우월성은 경제적 성취가 이미 입증했다. 북한과의 대화는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는 사실도 체험적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극단적인 대립이 북한경제의 중국종속화를 부르면 종국에는 한반도의 북쪽을 잃을 수 있다. 1.21 사태,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 당시와는 달리 북한경제의 중국의존도가 너무나 높아졌다. 이 시점에서는 냉정하게 거시적 안목에서 역사의식을 갖고 설득을 통해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지혜가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날 용의가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바로 여기에 대결국면을 푸는 열쇠가 있다. 천안함 사태로 긴장의 파고가 높아질수록 대화를 통해 화해를 찾는 용기야말로 참다운 지혜이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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