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의언론시평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봄을 잃은 농촌은 통곡한다
[김영호 칼럼] 4대강 사업 한다며 재배면적 줄여, 농업대책은 있는가
 
김영호   기사입력  2010/05/09 [07:54]

1980년 여름. 신군부가 국권을 찬탈하던 그 해 여름은 추웠다. 하늘도 울었던지 해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날이 많았다. 한기마저 서려 꽃이 망울을 터트리지도 못한 채 시들기도 했다. 벼마저 이삭이 패지 않아 대흉년이 들었다. 민심이 흉흉해지자 신군부가 다급했다. 해외에서 고리채를 어렵사리 빌려 이 나라 저 나라에 사정해서 값을 몇 배를 더 쳐주고 쌀을 사와야 했다. 멀리 스페인까지 가서 말이다. 흉년이 들면 쌀은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2010년 봄. 지난 겨울 춥기도 무척 추웠지만 눈이 많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폭삭, 폭삭 주저앉았다. 1월 4일 서울에 100년만의 폭설이 내릴 만큼 많이 내렸다. 세상이 거꾸로 간다더니 계절도 닮은 모양이다. 봄이 왔건만 계절을 잊었는지 겨울이 다시 찾아온 느낌이었다. 4월 들어서도 추위가 가지 않더니 28일에는 서울 낮 기온이 103년만에 가장 낮았다. 산간지방에는 철지난 함박눈이 내리기도 했다.

3월 한 달과 4월 20일까지 일조시간이 예년평균에 비해 73%나 적은 247.1시간에 그쳤다. 40년만에 가장 적은 기록이란다. 이 기간 비온 날도 40년만에 가장 많아 19.6일이나 된다. 이삼일에 걸러서 비가 온 셈이다. 추운데 비는 잣고 해가 안 나니 꽃이 피는 둥 마는 둥 했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이 차례로 피어 봄을 알리는데 올해는 거의 한꺼번에 피고 꽃과 잎이 함께 나오기도 했다. 이상한 날씨였다.

농사는 절반은 농민이 짓고 절반은 하늘이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도 날씨가 좋아야 맞는 소리인가 보다. 굿은 날씨가 농사를 망치면 농민이 아무리 애를 써도 모두 허사이다. 겨울에는 폭설, 한파가 겹치더니 봄에는 일조시간 부족, 강우일수 증가, 이상저온 현상으로 농작물이 반타작도 어려운 실정이다. 설해, 동해, 냉해, 습해, 수해를 입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데 병충해마저 극성을 부린다. 살리려고 기름을 땠지만 난방비만 날린 꼴이다.

▲ 국민은행앞에서 농성하던 팔당 유기농보존투쟁 농민의 연대 발언     ©대자보
4월이 지나도록 일기불순, 이상기후가 이어져 전국 곳곳에서 보리, 밀 재배를 포기하는 농가가 늘어났다. 생육부진으로 키가 자라지 않아 사료로도 쓸 수 없으니 트럭터로 아예 밭을 갈아엎어 버린다. 더 기다려봤자 인건비도 건지지 못한다는 하소연이다. 노지작물만이 피해가 큰 것이 아니다. 시설원예나 과실작물도 마찬가지다. 제주도의 조생양파부터 경기도의 복숭아까지 피해가 극심하다.

과수는 때 아닌 눈으로 꽃망울이 얼어붙는 바람에 반이나 열매를 맺을까 말까하다. 얼어 죽은 나무도 적지 않아 내년에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경기도와 강원도 복숭아는 꽃눈이 거의 죽어 얼마나 수확할지 모를 일이다. 국내 최대 배 주산지인 나주와 영암지역은 꽃잎과 암술이 거의 까맣게 말라 버렸다. 고창지역의 복분자도 사정은 비슷하다. 개화가 늦어져 사과도 피해가 클 것 같다. 벌도 추위 탓에 벌통이 텅텅 빌만큼 개체수가 줄어 수정마저 어렵단다.

겨울 내내 비닐하우스에서 눈보라와 비바람을 막아 키워낸 시설작물도 절반을 건지기 어렵단다. 수박, 참외, 오이, 토마토, 고추, 양파, 마늘, 파, 상추, 배추, 무, 등등이 말이다. 3월 한파에 4월 저온으로 얼거나 병충해로 썩고 아니면 생육부진으로 버려야 할 판이다. 수박이 주먹크기도 되지 않아 해마다 열던 창원 수박축제가 취소될 정도이다. 밀양 딸기축제도 마찬가지다.

도시에서는 김치가 금치라고 야단이다. 채소류 값이 너무 올라 사먹기 어렵다고 말이다. 지난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뛰었지만 5월에는 더 오를 것이란 소식이다. 대중식당들은 밑반찬 값이 올라서 팔아도 남는 게 없다며 자칫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라고 아우성이다. 중국도 이상기후로 농사를 망쳤다니 채소류를 얼마나 싸게 수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값이 올라도 농민의 냉가슴을 달랠 길은 없다. 난방비는 많이 들었지만 생산량이 크게 줄어 빚만 늘게 생겼으니 말이다.

5월 들어 날씨가 좋아져도 앞으로 채소류를 싸게 먹기는 글렀다. 4대강 사업을 한다며 하천 둔치를 온통 갈아엎으니 말이다. 이 때문에 시설채소 재배면적이 20% 가량 줄어든다. 쌀값은 떨어지나 대책을 마련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아 쌀농사도 헛탕 칠라 걱정이 태산이다. 하늘도 무심한지 구제역마저 덮쳤다. 봄을 잃은 농촌은 통곡한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0/05/09 [07:54]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