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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원 짜리 우산꽂이
[김영호 칼럼] G-2 중국의 문화예술을 모르고 중국을 넘을 수 없어
 
김영호   기사입력  2010/03/09 [13:42]

지난 2월 영국사회는 벼락부자 탄생으로 후끈 달았다. 서남부 지방에 사는 평범한 노부부가 반세기전에 선물로 받아 골방 우산꽂이로 쓰던 중국 항아리가 살고 있는 집값보다 훨씬 비싼 보물단지로 빛을 봤기 때문이다. 이 집에 들른 골동품 감정사가 구석진 곳에 놓인 이 항아리의 진가를 발견했다. 270여년전 중국 청대 건륭연간에 만들어진 진품(珍品)으로서 감정가가 거금 50만 파운드(원화 9억원 상당)나 된다고 말이다. 그것도 TV 연속극 ‘러브조이’의 스토리와 너무나 흡사하여 더 큰 화제였다. 국내에서도 일부 언론매체에 의해 보도되어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언론보도가 단편적이고 비전문적이어서 여러 매체의 보도를 종합해 보아야 윤곽이 드러난다. 이 항아리는 중국 청대 건륭제(乾隆帝 1735-1796)의 재위기간에 제작되었다. 바닥에 청화로 쓴 전서체(篆書體)의 대청건륭년제(大淸乾隆年製)라는 관지(款識)가 그것을 말한다. 매체에 따라서 1740년 또는 1740년 전후라고 보도했는데 이것만으로는 구체적인 제작연도를 알 수 없다. 다만 기형, 문양 따위를 보고 재위 초기에 만들어진 기물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 영국에서 발견된 270여년전 중국 청대 건륭연간에 만들어진 진품(珍品)으로서 감정가가 거금 50만 파운드에 이른 우산꽂이     © 데일리메일 보도화면 캡춰
건륭제의 재위기간은 60년이 넘는다. 이 시기는 도자기술의 급속한 발달에 따라 청화백자의 전성기를 마감하고 다채자기의 융성기를 열었다. 문양도 초기에는 산수화와 인물화가 많이 등장하나 후기로 갈수록 대칭적 형상화가 주류를 이뤘다. 이 항아리에는 산수화가 그려져 있다. 감정가들은 그의 조부인 강희제(康熙帝)의 남순도(南巡圖)를 그린 왕휘(王翬 1632~1717)의 화풍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또 기형이 청대에는 흔하지 않은 초롱 모양의 등롱병(燈籠甁)이다. 이런 점들을 미뤄 건륭제 초기의 작품이란 유추가 가능하다. 

이 항아리를 언뜻 보면 청화백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입자위에 산화동으로 그린 빨간 꽃무늬가 있다. 청화와 함께 홍화를 유약 밑에 그린 청화유리홍(靑花釉裡紅)이다. 이 병의 이름을 붙이면 청화유리홍산수화도등롱병(靑花釉裡紅山水畵圖燈籠甁)이다. 보도사진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시구를 쓴 암화(暗畵)가 있다고 한다. 암화란 예리한 칼로 투명한 유약을 살짝 벗겨내서 그린 그림이나 시구를 뜻한다. 암화를 그린 도자기는 흔하지 않으며 전깃불에 비춰야 겨우 보인다. 이 시구는 산수화를 읊은 내용일 것이다. 

보도사진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산수화의 최고봉 부분에 ‘보물’(precious thing)란 뜻의 건륭제의 글씨가 있다고 한다. 그 이유로 건륭제가 쓰던 기물이라는 보도가 있는 모양이다. 아마 건륭어람지보(乾隆御覽之寶)라는 낙관을 찍고 살짝 굽지 않았나 싶다. 이 또한 도자기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건륭제는 예술에 조예가 깊어 송대, 명대의 유명한 미술품을 감상하고 이런 낙관을 많이 찍은 것으로 유명하다. 암화나 어람도 값을 크게 올리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당영(唐英 Tang Ying 1682-1757)의 작품이란 보도가 나온 모양이다. 이것은 옳은 감정이 아니다. 탕잉은 서화에 능한 관료 출신 학자로서 건륭의 부친인 옹정제(雍正帝)부터 관요를 감독하는 독도사(督陶使)를 지낸 인물이다. 그가 편찬한 도야도설(陶冶圖說)은 도자기술을 집대성한 대작이다. 그의 작품이라면 응당 당영(唐英) 또는 그의 자인 준공(俊公)란 관지가 있다.

출처에 관한 추측성 보도도 무성하다. 크리미어 전쟁에서 헌신적인 간호활동으로 백의의 천사로 불리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소유였을 것이란 따위가 그것이다. 그녀의 집안이 문제의 노부부의 거처와 가까운 햄프셔의 엠블리 궁정에서 살았다는 점에서 이런 추측이 나오는 것같다. 18세기 유럽에서는 귀족 사이에 부의 상징으로 중국 도자기 수집이 대유행이었다. 저택에 중국방(China room)을 꾸미고 도자기를 진열할 정도였다.

2월 11일 경매에서는 전화로 응찰한 중국인에게 낙찰됐다. 수수료와 부가가치세를 더하면 매입가가 76만5,000파운드(원화 13억원)이다. 중국의 경제력을 실감케 하는 한 단면이다. 영국은 중국의 문화예술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높다. 한국에서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이 G-2로 부상한 현실에서 한국은 이웃나라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일제강점 36년, 냉전체제 50년의 탓이 크지만 관광-어학열풍만으로는 중국을 잘 알 수 없다. 중국의 문화예술을 모르고 중국을 알 수 없으니 중국을 넘을 수 없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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