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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명예훼손의 주체로 나설 수 있나?
[비나리의 초록공명] PD수첩 무죄판결과 다시 생각해보는 명예훼손죄
 
우석훈   기사입력  2010/01/21 [18:48]
광우병과 관련된 정운천 전 농림부장관의 소송은 여러가지로 중요한 사건이다. 결론적으로 장관이 정부를 대리해서 특정 방송에 대해 걸었던 소송이 무죄로 판결이 나기는 했지만, 이 소송 자체가 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명예훼손죄를 가진 나라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조항에서는 공익과 사실이라는 두 가지가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사실을 적시해도 그것이 공익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면 명예훼손죄가 성립된다. 

소설 <주홍글씨> 사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보에게 너는 빠보야... 그래도 안된다. '바보'가 사실이 아니라면, 허위사실에 해당해서 유죄이다. '바보'는 정의상, 공인이 아닐 경우가 많으므로, 이 역시 공익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유죄이다. 
 
▲ 법원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보도한 혐의로 기소된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20일, 제작진이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빠져나오며 심경을 밝히고 있다.     © CBS노컷뉴스

<주홍글씨>를 양산하지 않겠다는 법의 취지는 표현권에 상당한 제약을 가하기는 하는데, 어쨌든 그야말로 이 법은, 선수끼리...정신 위에 서 있다. 

공인이 누구냐? 이 질문에는 기준이 없다. TV에 나오면 공인이냐, 아니면 공무원이 공인이라면 5급부터냐 4급 서기관 부터냐? 기준은 없다. 이건 법원이 주관적으로 판단하게 되어있다. 

이것이 한국에서 명예훼손죄라는 법의 틀 내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크나 패러디 혹은 풍자와 같은 것은 어떻게 할 거냐? 물론 당연히 '사실'이라는 틀 내에서, 이건 허위라고 유죄가 된다. '깡패'와 '깡패 같은'이라는 두 표현은 사실상 내용이 같지만, 법원에서는 전혀 다른 두 표현으로 본다. '같은'을 붙이면, 깡패라고 하지는 않았다가 된다. 바보같은... 이 경우도 어법상 바보와 의미는 같지만, 역시 바보라고 직접 하지는 않았다는, 그런 판결을 내리는데 그야말로 미학적이나 예술적으로 생각해보면, 좀 웃기는 얘기이다. 

허슬러지의 발행인 래리 플린트가 미국 대법원까지 올라간 사건은 미국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수위 차이를 보여준다. 한국은 법률이 개입하지만, 미국의 경우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는 수정 헌법 1조가 개입한다. 

래리 플린트 사건은, 유명한 목사가 어머니와 통간을 했다고 허슬러에 광고를 낸 사건이다. 

한국 식으로 하면 이건 무조건 유죄이고, 아마 할 수만 있다면 특정범죄 가중처벌 같은 것을 했을 것이다. 법에는 '사회보편적 통념'이라는 법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지나치게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양형에 법정주의라는 것을 설정하고 있지만 말이다. 

미국 대법원의 판결 취지는, “목사는 이미 충분히 공인이고, 기독교인으로 유명한 그가 어머니와 통간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건전한 시민의시민의 의식으로 충분히 알 수 있고, 이것은 풍자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공인에 대한 풍자, 조소 같은 것들을 막는다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위축시키게 된다는 것이, 내가 이해하는 래리 플린트 사건 판결의 취지이다. 

미국의 수정헌법 1호와 래리 플린트 사건의 판례는, "누구는 바보다"라는 표현은, 권장사항은 아니지만 법이 나서서 막을 사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 궁극적으로 한국도 명예훼손죄는 폐지하고, 다른 방식으로 주홍글씨 사건을 막는 방식으로 가게는 될 것이다. 다른 나라가 그렇게 가는 중이고, 또 그게 맞을 것 같은데.

이명박 정부를 지탱하는 조항 두 개가 집시법의 야간집회금지 규정과 명예훼손죄이니. 당분간 다른 논의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을 것 같다. 

PD수첩 사건의 또 다른 문제점은, '공인'이라는 잣대 외에 '정부'라는 틀이 또 하나 등장했다는 점에 있다. 과연 '정부'라는 주체가 법인격을 가지고 있는 개인, 즉 '공인'과 같은 틀에서 다루어질 수 있느냐?

정부를 상대로 소를 낼 수는 있지만, 만약에 정부가 소를 낸다면 그 주체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정부가 명예훼손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

이명박 정부는. 장관이 하면 된다는 간단한 기술적 해법을 내렸다. 그래서 정운천 전 장관이 소를 제기한 것이다. 

따져보면 이것도 좀 이상하기는 하다. 정운천 개인의 명예와 정부의 명예가 막 뒤죽박죽이 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자연인과 정부라는 특수한 주체, 그 두 가지가 온통 뒤범벅이 되는 일이 벌어진다. 
 
▲ 지난해 <PD수첩> 수사와 관련, 검찰은 MBC본사 압수수색 등을 시도해 언론시민단체로 부터 강도높은 비판을 받았다.     ©CBS노컷뉴스

'똥장군'이라는 표현이 있다. 실제로 남한에서 북한에 갔던 인사 중에서 이 표현을 쓴 사람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북한에서 장군님 미화를 너무 하니까 부아가 뒤틀려서, "우리 동네에서는 똥장군이 최고던데..."라는 말을 했다. 정말로 이 사람은 북한에 억류되어 못오게 될 뻔 했었다. 김정일과 똥장군을 비교했으니 말이다. 

재밌는 표현으로 장관 누군가를 똥장군이라고 하는 것과 정부를 똥장군이라고 하는 것 사이의 차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살인정부"라고 했다고 치자. 박정희 이후 어느 정부에서도 집회 때 사망하지 않은 적이 없고, 그렇다면 한국의 모든 정부는 살인정부가 맞기는 하다. 노무현 때에도 적지않게 죽었고, 지금처럼 철거를 강행한다면 이번 정부에서는 아마 정권이 끝나기 전까지 몇몇 사람이 더 죽기는 할 것이다. 

이 표현이 문제가 될 것인가? 그리고 그걸 명예훼손죄라는 항목으로 다룰 것인가?

이번 법원 판결의 주요 쟁점 중의 하나는, PD수첩이 제시한 문제가 허위인가 아닌가라는 문제와는 별도로 국가가 명예훼손의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관련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국가라는, 이 모든 것들을 관장하는 최상위의 주체라는 점에서, 늘 견제받고 비판받는 거이 당연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정부는 국가의 주요 기능이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국가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삼권분립을 통해서 정부 즉 행정부를 제어하고 견제하도록 되어있고, 이런 것들에대한 궁극적 견제자는 바로 국민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정부가 명예훼손죄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정부에 대한 견제를 위축시킨다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 환영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한 번은 명예훼손죄를 지금 이대로의 상태로 그냥 가지고 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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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1/21 [18: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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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똥장군 2010/01/22 [02:54] 수정 | 삭제
  • 과연 훼손당할 명예가 눈꼽만큼이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정부 고위관료 등은 명예훼손 소송 걸 자격박탈을 해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