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더나은 세상으로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일밤>에 홍준표 출연? 노골적 정치홍보 나서나
[하재근 칼럼] 집권여당 지도자라니, 빗나간 '프린스 만들기' 중단해야
 
하재근   기사입력  2009/05/04 [10:18]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화끈하게 망한’ <대망>을 황급히 퇴출시키고 준비한 새 코너 <퀴즈프린스>의 첫 출연자가 발표됐다. 바로 현재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홍준표 의원이라고 한다.  

<대망>의 출연진인 김용만, 탁재훈, 김구라, 이혁재, 신정환과 신동엽이 홍 대표와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이 홍 대표에 대한 문제를 맞히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흐름이 홍 대표를 중심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홍 대표 ‘프린스’ 만들어주기인가?  

새 코너 첫 회에 집권여당 지도자라니. 이것이 시청자를 위한 것인가, 홍 대표를 위한 것인가? 시청자를 위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이런 구도를 바랬던 시청자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시청자의 비난을 받은 <대망>을 이례적으로 조기에 내리고 새롭게 기획한 코너의 첫 회가 이런 식이라니. 이번에도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려고 하는 건가, 짜증을 주려고 하는 건가?  

귀가 있으면 알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의 쟁점엔 방송장악, 여론통제 등이 있으며, 코드에 안 맞는 연예인을 솎아낸다는 의혹도 상당하다. 이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그것이 첨예한 쟁점이라는 것만은 객관적으로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능계의 메인 시간대를 차지하고 있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같은 상징적 프로그램이 새 코너 첫 회 출연자로 집권여당 인사를 내세운다는 것은, 명백히 권력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80년대에 ‘땡전뉴스’가 있었다면 21세기엔 ‘땡집권당예능’을 봐야 하는 건가?  

- 지금이 웃음 줄 땐가? -  

제작진은 "요즘처럼 어두운 소식만 들려오는 때에 정치인으로서 웃음을 주시고자 하는 마음에 섭외요청을 허락하셨다"며 "정치 이야기는 나오지 않을 거다. 주로 홍 대표가 살아온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할 것"이라 했다고 한다.  

지금 국민이 정치인에게 바라는 건 정치를 잘 하는 것이다. 어두운 소식이 안 들리도록 국가운영을 잘 하는 게 먼저다. 위의 말처럼 지금이 ‘어두운 소식만 들려오는 때’라면 명백히 정치인, 특히 집권세력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처지로 자숙해야 하는 입장에서, 무슨 웃음을 주나? 이런 파탄의 시국에 말장난이나 잘 하면 그게 정치인의 할 도리인가? 
 
내가 한나라당을 반대해서 이런 논리를 펴는 게 아니다. 난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 상황 좋다며 당당하게 나오는 것을 비난했다. 이미 그 당시부터 민생파탄 국면이었는데 국정 책임자가 어떻게 국민 앞에서 고개를 든단 말인가? 무한히 송구해야 할 상황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민생파탄은 물론 총체적 난국이다. 게다가 최근에 들려온다는 그 ‘어두운 소식‘이라는 것도, 상당수는 집권세력의 무리한 통치로부터 비롯됐다고 아주 많은 국민들이 주장한다. 이런 판국에 무슨 예능에서 웃음을 준다는 건가? 
 
정치 이야기는 안 한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정치인이 정치 이야기를 해야만 정치인가? 이미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 정치는 정책이 아닌 이미지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이런 첨예한 시국에 집권세력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노골적인 정치행위다. 
 
- 일밤, 어디까지 망가지려고 이러나 -  

이런 일에 멍석이나 펴주라고 국민들이 그동안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사랑했었단 말인가? 한국에서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 그 이상의 대접을 받았었다. 이건 시청률과는 별개의 문제다.  

‘양심냉장고’가 상징하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의미는 단지 웃기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여타 예능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중후한 존재감을 부여했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존중받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프로그램이 왜 이렇게 추락하나. 당장 비난을 들을 것은 당연한 일이고, 프로그램 이미지도 훼손될 것이 뻔한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집권여당을 위해 한 몸 바치는 논개라도 될 작정인가?  

현재 시점에서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공익성은 둘째 치고, 깔끔하게 웃기기라도 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집권여당 원내대표가 첫 타자? 악수도 너무 악수다.  

그렇지 않아도 <퀴즈프린스>가 끌어모은 MC들의 지지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다. 식상한 것도 있고, 비호감의 문제도 있다. 여기에 집권여당 원내대표가 붙으면 그 MC들의 호감도는 더 하락할 것이다. 프로그램 욕먹고, MC들 앞길 가로막고, 시청자 짜증나게 하고, 무엇을 얻으려 이러나?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빗나간 ‘프린스 만들기’ 중단해야 한다.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9/05/04 [10:18]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