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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바람의나라> 무휼왕자 본 받아야
[하재근 칼럼] 왜 우리가 드라마보다 못한 황당한 설정을 봐야 하는가
 
하재근   기사입력  2008/11/27 [12:45]
드라마 <바람의 나라>에서 유리왕이 태자경합을 선언했다. 그는 두 명의 왕자에게 과제를 낸다. 그 과제란 나라와 백성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나라와 백성을 위한 정책이란 어떤 것일까? 극 중 악역인 태후의 동생이 그 대답을 내놓는다.  

“등 따시고 배부른 게 최고지요.”  

태후는 이렇게 반문한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뭘로 등 따시고 배부르게 만든단 말이야?”  

이런 얘기다.  

1. 백성을 위한 정책은 민생정책이다.
2. 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1번에서부터 어긋나고 있다. 백성을 등 따시고 배부르게 만들어줄 민생복지정책이 아닌 민영화, 감세, 탈규제 등 친재벌 친강남 정책이 우선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유리왕은 왕자들에게 반드시 백성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정책을 만들어오라고 한다. 그것을 만들어오면 국가의 대권을 넘겨주겠다는 것이다. 어느 국가라도 대권을 맡으려면 이런 조건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유리왕은 제정신이다. 
 
▲     © KBS

그런데 현재 한국의 대권은 백성 모두가 아닌 특정 계층의 혜택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건 제정신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대권이 엉뚱한 방향으로 폭주하고 있다.  

무휼왕자(대무신왕)은 백성에게 혜택이 돌아갈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당시 고구려는 거듭되는 전란으로 민생이 극히 피폐해져 있었다. 도성에 걸인들이 활보한다. 곡가가 뛰어(물가상승) 백성들이 고통 받고 있었다.  

무휼의 측근은 시혜성 정책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먹을 걸 줘봐야 그때뿐이므로. 그 다음에 제시되는 것이 일자리다. 고구려 민생파탄의 근원엔 경기침체에 따른 실업난이 있었다. 내수시장이 말라 업자들이 고사하고, 업자가 고사하니 일자리가 사라져 더욱 내수시장이 마르고, 와중에 식량값은 뛰어오르는 형국이었다. 
 
소득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제공된다면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게 된다. 백성에게 소득이 생기면 내수시장이 활성화되고, 그러면 업자들이 살고, 그러면 고용이 늘고, 다시 내수시장이 활성화되는 선순환이 시작된다. 
 
무휼은 토목공사를 제안한다.  

“국내성과 교역이 활발한 성을 잇는 길을 내고 더불어 압록수까지 길을 내 그 수로를 이용한다면...”  

수로 얘기까지 나왔다. 대운하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내수진작 방안으로 ‘대운하’를 거론한 바가 있고, 토목공사를 통해 경제침체를 돌파하자는 입장이기도 하다. 
 
무휼은 그 일을 통해 백성들을 고용해 임금을 지급하자고 한다. 그러나 당시 전비지출로 인해 고구려는 재정적자 상태였다. 돈이 어디서 나서? 이 대목이 중요하다. 무휼은 상권을 쥐고 있는 귀족들이 그 돈을 부담하도록 하자고 한다.  

두 가지 이야기다.  

1. 토목
2. 부자 증세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토목개발은 지주들에게 이로운 정책이다. 즉 친부자 정책이다. 본질적으로 민생정책이 아니다. 정책목표가 국민을 고용해서 이들의 소득을 늘려 내수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라면, 토목공사보다 더 좋은 길이 있다. 그러므로 토목공사는 틀렸다.  

나머지 반은 맞았다. 국민에게 돌아가는 돈을 부자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 클린턴과 오바마도 부자 증세를 주장했다. ‘제정신’이라면 경제위기시에 이렇게 나오는 것이 맞다. 부자감세로 민생파탄을 돌파하자는 현 정부가 무휼에게 통타당했다. 지만원 씨가 무휼도 빨갱이라고 개탄하게 생겼다.  

증세로 국가재정을 확충해서, 그 돈을 공공고용 확대와 중소기업 지원에 쓰면 고용은 대번에 늘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재벌 혼자서 먹여 살린다고 착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재벌은 현금을 수백 조를 쟁여놓으면서도 고용규모를 그간 줄여왔다. 국민을 고용하는 건 중소기업이다. 고용의 90% 가까이를 중소기업이 감당한다. 
 
▲ ©청와대

국민에 대한 복지·교육사업을 확충해도 고용을 아주 빨리 늘일 수 있다. 루즈벨트 시절 정말로 ‘삽질’ 위주였던 토목공사와는 달리 현재의 토목공사는 생산성이 향상돼 일자리가 그렇게 많이 늘진 않는다. 기계가 활약하니까. 반면에 복지교육서비스는 사람이 일일이 해야 하는 일이다. 고용 확대방안으로는 최적이다.  

이렇게 해서 고용을 늘리고, 국민 소득을 늘리면, 시장경기가 살아나고, 기업이 살아나고, 다시 고용이 늘어나는 선순환으로 들어간다. 무휼이 살았던 시대에는 기업이나 복지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무휼은 토목공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삽질’ 말고도 더 좋은 선택의 여지를 갖고 있는 ‘현대인’이다. 안타까운 건 현재 우리의 ‘대권’이 무휼보다도 퇴행적이라는 점이다. 왜 지금 토목공사와 함께 부자감세가 추진돼야 하나? 이건 지주와 토건자본을 위한 정책이므로 백성을 위한 민생이 아니다. 부자감세는 글자 그대로 부자민생일 뿐이다. 무휼에게조차 배워야 할 판이다.  

무휼이 만약에 ‘귀족들의 부담을 줄여줘서 백성을 살립시다’라고 나왔다면 대권은커녕 유리왕에게 야단맞고 쫓겨났을 것이다. 그런 황당한 설정은 나오지 않았다. 무휼은 주인공이므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말을 드라마상에서 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린 이런 말을 현실에서 듣고 있다. 우리를 지도하는 ‘대권’에게서. 왜 우리가 드라마보다 못한 황당한 설정 속에서 살아야 하나?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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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1/27 [12:4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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