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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방현석, 진실과 마주치기 두려운가
[정문순 칼럼] 표절 문제에 관대한 제도권 문인들의 무책임과 기만
 
정문순   기사입력  2008/10/06 [14:15]
작가는 글을 잘 쓴다. 몇 마디 말로 추릴 수 있는 내용도 그의 손이 닿으면 얼마든지 현란한 솜씨로 분칠한 글이 태어난다. 사실 쉬운 내용을 어렵게 쓰고 멋을 부린 글일수록 속을 채울 알맹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 방현석 작가
그동안 소설로만 접해온 작가 방현석의 글을 보았다. 소설가 조경란 표절 의혹 사건에서 자신이 피해자임을 주장한 신인 소설가 주이란에게‘조언’을 하고 조경란 측과 연락을 취하는 역할을 했던 방현석은, 지금 자신의 처지를 곤혹스러움으로 정리하는 것 같다. 표절 문제에 대한 방현석이라는 작가의 인식 수준을 드러내주는 그의 글은 소설가 방현석을 새롭게 보아야 하는 독자에게도 곤혹스럽다. 
 
지금의 표절 논란을 드라마에 빗대자면 방현석은 그동안 비중 있는 조연으로서 주인공의 힘을 빼려는 역할을 해왔다. 주인공이 그의 말을 듣기만 하면 극은 끝난다. 자신이 관객에게 노출되기 전에 드라마가 끝나기를 바란 이 배우는 뜻한 대로 극이 전개되지 않자 돌연 중도에서 역할을 접기로 결심한다. 방현석의 글을 몇 마디로 추려내면 다음과 같다.
 
1. 표절 문제는 법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므로 당사자들끼리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
2. 주이란이 장차 작가로 성공하는 것이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일 수 있다.
3. 정 답답하면 나중에 독자에게 판단을 맡겨라. 
4. 그러나 주이란은 자신의 조언 1, 2, 3을 듣지 않았으므로 더 이상 그의 일에 엮이고 싶지 않다.
 
이런 건 퀴즈 문답으로 내는 게 제격일 듯하다. 방현석의 핵심 주장을 10자 내외로 요약하시오. 답: 억울하면 출세하라.
 
방현석으로서는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한 예비 작가의 앞날을 걱정해주는 마음이 컸겠지만, 문제의 핵심을 건드릴 만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람에게 해준‘조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의 조언이 별반 설득력도 효력도 없음은 주이란이 끝내 표절 의혹을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입증되었다. 방현석의 주장을 보건대 아무래도 그는 표절이 자신의 말과 달리 법으로 가려지기 힘든 사안이니까 규명을 단념하자는 것이 아니라, 법의 판단에 맡길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작가로서 방현석은 창작의 고통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뼈를 깎는 고통에서 나온 글을 누군가에게 절취 당하는 사람의 심정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표절 문제를 바라보는 방현석의 사고는,작가가 아니더라도 도둑질을 심상치 않은 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나오기 힘든 발상이다.
 
하늘의 별은 가닿을 수 없는 머나먼 곳에 있지만, 그 존재만큼은 명백하게 진실이다. 진실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러나 창공에 빛나는 별을 부인하는 사람은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진실과 맞닥뜨리기를 부인하는 사람에게 진실은 처음부터 없었던 일이 돼버린다. 표절 시비를 가릴 생각이 없는 방현석은 아무 근거 없이 주이란의 주장을 당사자들끼리 해소해야 할‘이견’이라고 단정 짓는 편파적인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글쟁이로서 용인될 수 없는 행각에 발을 담근 사람이며, 장차 문단에 머물러 있기조차 힘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은 그의 안중에 없다.
 
주이란의 주장이 맞다면 표절의 장본인이 치러야 할 대가는 막중할 것이며, 반대로 악의든 실수든 그녀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면 멀쩡한 작가를 벼랑으로 내몬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방현석이 진실 규명이 아닌 두 사람간의 대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문제라고 믿는다면, 차라리 작가들의 세계에서 도둑질은 세상의 이치와 다른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낫다.
 
방현석은 표절 시비가 한낮‘추문’으로 끝나버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지만, 표절을 추문으로 전락시키는 힘은 다른 데 있는 것 같지 않다. 이것 저것 따져보지도 않고 추문이 될 것이라고 지레 단정 짓고 파장을 봉합하려고 애쓰는 방현석 같은 겁 많은 사람들이 곧 진실 찾기를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표절논란에 휩싸인 신인작가 주이란의 '혀'(좌측)와 조경란의 '혀'(우측).     © 대자보

방현석의 글을 보고 자기 기만이라는 낱말이 떠오르는 건, 그가 누구 말이 옳고 그른지 모르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이번 표절 의혹 사건과 전혀 무관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든 물길을 틀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조경란이, 주이란이 응모했다고 주장한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본 적이 없다고 그에게 사실과 다르게 말한 것이 맞다면, 방현석은 진실의 일단을 엿본 사람으로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 분명해진 셈이 된다. 그런데도 신문사 측에 조경란의 말을 확인할 생각이 없었다고 태연히 말한다면, 그는 그 짐을 자기 손에서 놓아버린 것이다.
 
방현석은 자신이 사건의 흑백을 분명히 알게 되는 사람이 될까 두려웠던 것 같다.표절 의혹을 캐는 데 처음부터 소극적이었던 그는 진실을 알게 된 자가 감당해야 할“매력 없는 일”을 떠맡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두 눈 뜨고 진실과 마주치기 두려워하는 자들이 허다한 문단에서 글 도둑을 밝혀내는 일에 손대다 오히려 자신이 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방현석이 누구인가. 노동소설가로서 1980년대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의 위상과, 진실 앞에서 머뭇거리는 그의 현재는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소설에서 그는 언제나 약자의 편이었고, 진실과 정의의 편이었다. 방현석의 글이 누빈 곳은 80년대에는 노동 현장이었고, 90년대 이후는 한국 역사가 외면할 수 없는 베트남이었다. 어느 것도 쉽고 편안한“매력 있는”길이 아니었다.
 
그는 소설 속에서 만큼은 권력과 거짓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가 추구한 리얼리즘 정신이 동업자의 파렴치한 행위를 확인하는 데 눈 감겠다는 자세와 거리가 얼마쯤 멀거나 가까운지 가늠해본다. 삶의 숨길 수 없는 진실을 보라고 말하는 작가가 정작 자신이 속한 집단에 얽힌 진실을 밝히는 데는 무력하게 주저앉는 모습을 보는 건 허탈하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읽은 문학은 환영이었는지 모른다.
 
창작 활동이 핏자국을 찍는 고통스러운 길일지라도 패기만만하게 가고자 하는 신인작가나 작가 지망생들을 위해서라도, 아니면 십년 넘게 쌓아올린 작가적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한 중견 문인을 위해서라도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활화산 같이 타올라야 할 문제를 뜨뜻미지근하게 식혀버림으로써 표절 파문에 대해 누군가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누군가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방현석이라는 창을 통해 엿본 주류문단의 무책임과 기만에 실망할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진실은 햇빛 속에 드러나야 한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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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0/06 [14:1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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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하이에나 2008/10/13 [11:35] 수정 | 삭제
  • 한국 문단의 권력화... 정말 심각한 문제이죠. 이문열은 독자를 우습게 여기고 가르치려 드는 거만한 작가아닌가요?

    한국문단의 문제는 등단이라는 제도를 둔 것에서 부터 어긋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제시대의 문인들에게서부터 시작된 텃밭지키기, 패거리주의의 소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부터 내려온 이러한 것들이 근본적인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이렇게 답글까지 달아주고 가셔서 기분이 좋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믿고 있는 진실을 위해 묵묵히 가렵니다. 제가 믿고 있는 진실이 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이름 모를 이웃을 위한 함께 가는 길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 독자 2008/10/07 [16:10] 수정 | 삭제
  • 그렇게 들으셨다면 상당히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고단한 일상에서 냉소적 우울증이 깊어진지라 그만 격식을 못차렸군요
    정문순씨에게 보내는 갈채는 절대 조롱이 아니니 오해마시길.
    나는 다만 옳은 일을 추구하다가 끝내는 꺾이고마는
    그런 일반적세태에 대해 탄식을 한 것입니다.
    옳은 일을 추구하다 끝내는 전혀 엉뚱한 데로 흐르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목격하고서 생긴 일종의 회의감이랄까요.
    여담이지만 정문순씨 글을 우연히 읽다가 박완서를 평한 글이
    있어 그때부터 관심있게 필자의 글을 읽고 있습니다.
    박완서는 참 내가 좋아하는 작가였습니다.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않은 박완서와 조선일보 그리고
    이문렬과의 각별한 친분 이런 것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더군요.
    그 때부터 문단이라는 데를 기웃거리며 살펴보았습니다만
    복마전까지는 안가더라도 상당히 실망스러운 작태를 느꼈습니다.
    박완서개인의 훼절이라기보다는 뭔가 구조적문제점이 있더군요.
    물론 과거에 그 사람들이 그랬으니 앞으로도 신인들도 그럴 것이다라고
    일방적으로 예단하는 짓은 섣부른 짓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억지 희망을 품을 수도 없겠더군요.
    문단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전반에 미치는 회의감 무력감
    이런 것들을 댓글이라는 편한 장소에서
    그냥 중얼거려본 것에 불과한 것이니
    절대 필자를 비아냥거리는 마음은 추호도 없없음을
    윗분에게 전하고 싶군요,

    진실..좋은 것이죠.
    나는 드레퓌스사건의 에밀졸라를 존경합니다.
    그것이 아직도 내가 살아가는 참가치입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아직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욕먹어도 아주 기분좋군요.
    오해푸시기 바랍니다.
  • 문학 하이에나 2008/10/07 [12:37] 수정 | 삭제
  • 한발 물러나서 강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님같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은데요. 백주대낮에 강도를 당한 사람에게 세상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거다라는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습니까? 니가 경찰되서 검사되서 혼내줘라라는 말이 위로가 될까요? 어차피 강도는 잡기가 힘들기때문에 수사안한다고 말한다면 납득할 수 있나요? 잡기힘들더라도 수사는 해야하는거 아닌가요?

    어차피 밝혀지기 힘든 표절시비라고 하더라도 이슈화하고 공론화시키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형식적 정의라도 있어야 최소한의 경각심이라도 생길수 있겠죠. 그러한 점에서 방현석의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을 처세술이라고 표현한 님의 말도 상당히 불편합니다. 개인의 힘으로 부술 수 없는 거대한 벽이라고 포기하라는 말로 들립니다. 최소한 그 벽이 언젠가 허물어질 수 있도록 작은 균열이라도 내기 위해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님이 마지막에 말한 정문순씨에게 보내는 갈채가 조소로 들리는 뭘까요?
    꼭 '돈 안생기고 명예 안생기는 일에 용쓰고 있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 독자 2008/10/06 [16:39] 수정 | 삭제
  • 글쎄요. 세상 살다보면 진실을 밝히는 것이 더욱 부담이 되고
    진실을 밝힌 당사자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구멍에 풀칠하는 생활과
    동료작가들과의 교분이 방현석에게 더 중요한 관점이 될 수 있습니다.
    문학이 별거냐 이거지요. 밥벌이 수단이 문학이고,
    그 수단을 지탱해주는 끈은 문단이라는 패거리일테고,
    자기가 그 수단을 발판삼아 계속 풀칠해야하는데
    자기에게 진실의 폭로자라는 대단한 문학적찬양도 없을텐데
    굳이 그 패거리들에게 밉보일 심산이 있을까요.
    더욱이 그 발단이 된 작품이란게 무슨 대단한 문제작도 아닌 마당에 말이지요.
    방현석의 의도를 선의로 해석하면
    아마 방현석은 후배작가가 기성문단의 더러운 풍토에
    오히려 다칠까 봐 그를 보호하는 처세술을 조언했다고도 볼 수 있겠죠.
    어차피 글을 계속 쓴다면 길게 보고 작품으로 인정받아
    그 때 뭉떵그려 이 문제를 같이 걸으라고 말입니다.
    사실 소설에서의 표절은 법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판명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디어나 줄거리혹은 일부 문장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독자들이 표절이라고 단정할만한 확증이 없습니다.
    사실 유수한 세계문학들이 아이디어와 줄거리를
    고전과 신화 설화에서 구전소설에서 차용한 예가 무수히 많거든요.
    그래서 이 문제는 이 작품이 표절이냐 아니냐는 관점에서 벗어나
    과연 조영란이 주이란의 작품을 전혀 안보고 자신이 오리지날 구상하고
    집필했다고 한 발언의 부도덕성, 개인적인 인격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방현석은 둘 사이의 대화를 일단 시도해보라고 조언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한군문단 풍토상 이 문제는 진실이 안밝혀질 거고,
    조영란도 주이란도 글을 계속 쓰면서
    독자들은 조금 있다 망각의 늪에 빠져들 것입니다.
    주이란은 상대적 약자인지라
    진실을 밝혀지지 않더라도 주눅들지말고
    더 좋은 작품으로 독자들을 만나기 바랍니다.
    답답한 얘기지만 그것이 문단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일반의 풍토이니까요.
    그러나 그런 풍토를 단연 거부하는 용기있는 모습은
    희미한 희망의 포착이라 보기 좋군요.
    정문순씨가 그 희망의 끈을 계속 잡고 놓지 않는다면
    당연 갈채를 보낼 밖에요.
    할 수 있겟습니까.
    돈 안 생기고 명예 안생기는 일인데요.



    독자들ㅇ게 직접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