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글을 잘 쓴다. 몇 마디 말로 추릴 수 있는 내용도 그의 손이 닿으면 얼마든지 현란한 솜씨로 분칠한 글이 태어난다. 사실 쉬운 내용을 어렵게 쓰고 멋을 부린 글일수록 속을 채울 알맹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그동안 소설로만 접해온 작가 방현석의 글을 보았다. 소설가 조경란 표절 의혹 사건에서 자신이 피해자임을 주장한 신인 소설가 주이란에게‘조언’을 하고 조경란 측과 연락을 취하는 역할을 했던 방현석은, 지금 자신의 처지를 곤혹스러움으로 정리하는 것 같다. 표절 문제에 대한 방현석이라는 작가의 인식 수준을 드러내주는 그의 글은 소설가 방현석을 새롭게 보아야 하는 독자에게도 곤혹스럽다.
지금의 표절 논란을 드라마에 빗대자면 방현석은 그동안 비중 있는 조연으로서 주인공의 힘을 빼려는 역할을 해왔다. 주인공이 그의 말을 듣기만 하면 극은 끝난다. 자신이 관객에게 노출되기 전에 드라마가 끝나기를 바란 이 배우는 뜻한 대로 극이 전개되지 않자 돌연 중도에서 역할을 접기로 결심한다. 방현석의 글을 몇 마디로 추려내면 다음과 같다.
1. 표절 문제는 법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므로 당사자들끼리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
2. 주이란이 장차 작가로 성공하는 것이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일 수 있다.
3. 정 답답하면 나중에 독자에게 판단을 맡겨라.
4. 그러나 주이란은 자신의 조언 1, 2, 3을 듣지 않았으므로 더 이상 그의 일에 엮이고 싶지 않다.
이런 건 퀴즈 문답으로 내는 게 제격일 듯하다. 방현석의 핵심 주장을 10자 내외로 요약하시오. 답: 억울하면 출세하라.
방현석으로서는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한 예비 작가의 앞날을 걱정해주는 마음이 컸겠지만, 문제의 핵심을 건드릴 만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람에게 해준‘조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의 조언이 별반 설득력도 효력도 없음은 주이란이 끝내 표절 의혹을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입증되었다. 방현석의 주장을 보건대 아무래도 그는 표절이 자신의 말과 달리 법으로 가려지기 힘든 사안이니까 규명을 단념하자는 것이 아니라, 법의 판단에 맡길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작가로서 방현석은 창작의 고통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뼈를 깎는 고통에서 나온 글을 누군가에게 절취 당하는 사람의 심정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표절 문제를 바라보는 방현석의 사고는,작가가 아니더라도 도둑질을 심상치 않은 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나오기 힘든 발상이다.
하늘의 별은 가닿을 수 없는 머나먼 곳에 있지만, 그 존재만큼은 명백하게 진실이다. 진실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러나 창공에 빛나는 별을 부인하는 사람은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진실과 맞닥뜨리기를 부인하는 사람에게 진실은 처음부터 없었던 일이 돼버린다. 표절 시비를 가릴 생각이 없는 방현석은 아무 근거 없이 주이란의 주장을 당사자들끼리 해소해야 할‘이견’이라고 단정 짓는 편파적인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글쟁이로서 용인될 수 없는 행각에 발을 담근 사람이며, 장차 문단에 머물러 있기조차 힘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은 그의 안중에 없다.
주이란의 주장이 맞다면 표절의 장본인이 치러야 할 대가는 막중할 것이며, 반대로 악의든 실수든 그녀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면 멀쩡한 작가를 벼랑으로 내몬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방현석이 진실 규명이 아닌 두 사람간의 대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문제라고 믿는다면, 차라리 작가들의 세계에서 도둑질은 세상의 이치와 다른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낫다.
방현석은 표절 시비가 한낮‘추문’으로 끝나버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지만, 표절을 추문으로 전락시키는 힘은 다른 데 있는 것 같지 않다. 이것 저것 따져보지도 않고 추문이 될 것이라고 지레 단정 짓고 파장을 봉합하려고 애쓰는 방현석 같은 겁 많은 사람들이 곧 진실 찾기를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표절논란에 휩싸인 신인작가 주이란의 '혀'(좌측)와 조경란의 '혀'(우측). © 대자보 | |
방현석의 글을 보고 자기 기만이라는 낱말이 떠오르는 건, 그가 누구 말이 옳고 그른지 모르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이번 표절 의혹 사건과 전혀 무관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든 물길을 틀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조경란이, 주이란이 응모했다고 주장한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본 적이 없다고 그에게 사실과 다르게 말한 것이 맞다면, 방현석은 진실의 일단을 엿본 사람으로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 분명해진 셈이 된다. 그런데도 신문사 측에 조경란의 말을 확인할 생각이 없었다고 태연히 말한다면, 그는 그 짐을 자기 손에서 놓아버린 것이다.
방현석은 자신이 사건의 흑백을 분명히 알게 되는 사람이 될까 두려웠던 것 같다.표절 의혹을 캐는 데 처음부터 소극적이었던 그는 진실을 알게 된 자가 감당해야 할“매력 없는 일”을 떠맡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두 눈 뜨고 진실과 마주치기 두려워하는 자들이 허다한 문단에서 글 도둑을 밝혀내는 일에 손대다 오히려 자신이 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방현석이 누구인가. 노동소설가로서 1980년대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의 위상과, 진실 앞에서 머뭇거리는 그의 현재는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소설에서 그는 언제나 약자의 편이었고, 진실과 정의의 편이었다. 방현석의 글이 누빈 곳은 80년대에는 노동 현장이었고, 90년대 이후는 한국 역사가 외면할 수 없는 베트남이었다. 어느 것도 쉽고 편안한“매력 있는”길이 아니었다.
그는 소설 속에서 만큼은 권력과 거짓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가 추구한 리얼리즘 정신이 동업자의 파렴치한 행위를 확인하는 데 눈 감겠다는 자세와 거리가 얼마쯤 멀거나 가까운지 가늠해본다. 삶의 숨길 수 없는 진실을 보라고 말하는 작가가 정작 자신이 속한 집단에 얽힌 진실을 밝히는 데는 무력하게 주저앉는 모습을 보는 건 허탈하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읽은 문학은 환영이었는지 모른다.
창작 활동이 핏자국을 찍는 고통스러운 길일지라도 패기만만하게 가고자 하는 신인작가나 작가 지망생들을 위해서라도, 아니면 십년 넘게 쌓아올린 작가적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한 중견 문인을 위해서라도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활화산 같이 타올라야 할 문제를 뜨뜻미지근하게 식혀버림으로써 표절 파문에 대해 누군가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누군가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방현석이라는 창을 통해 엿본 주류문단의 무책임과 기만에 실망할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진실은 햇빛 속에 드러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