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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촛불 손해배상 청구할 자격이 없다
[하재근 칼럼] 경찰의 촛불집회 손해배상청구, 국가예산이나 낭비말아야
 
하재근   기사입력  2008/08/01 [09:58]
서울경찰청이 31일 촛불집회로 인한 경찰 피해액 3억3천여만 원을 배상하라며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등 집회 주최 측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고 한다.

어이없다. 정말 황당하다. 경찰은 총 피해액 11억2천여만 원 중 3억 원 가량에 대해서만 우선 소송을 제기하고, 나머지 돈에 대해선 향후 소송 진행과정에서 청구금액을 늘려나갈 방침이라고 한다.

경찰은 범법자를 잡으라고 있는 기구다. 또, 국민에 대한 국가의 물리력이기도 하다. 범법자를 잡는 과정에서, 국민과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과정에서 ‘자원소모’는 당연한 것이다. 그 자원소모를 일컬어 ‘손해’라고 하면 경찰의 손해배상 대상이 아닌 사람이 누군가?

이런 논리대로라면 경찰과 물리적으로 충돌한 범죄자는 모두 다 경찰에게 손해를 입힌 셈이다. 그럼 그때마다 경찰이 손해배상청구를 하게 되는가? 음주운전을 한 사람에겐 밤새 음주운전단속하느라 지친 경찰의 피해를 보상하라고 하고, 수배범에겐 전국 검문경찰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하나?

민간인 갑과 을이 싸웠을 땐 손해배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맞다. 그러나 국가의 공권력은 공공의 안전과 이익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 그러라고 국민이 월급과 장비를 지원해주는 것이다. 범법자를 공권력이 잡았을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벌을 하거나 벌금을 물리게 된다. 이때 공권력이 별도로 손해배상청구를 한다면 국민을 상대로 ‘앵벌이’하는 것 아닌가? 경찰이 국가의 공권력이 아니라 사적인 폭력주체처럼 굴고 있다.

경찰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은 데모를 안 하는 것이다. 또, 설사 데모를 하더라도 극히 소규모로 있는 듯 없는 듯 집회를 치른다면 손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다.

경찰 손해가 무서워 국민이 데모를 못 한다면 민주국가가 아닌 경찰국가가 된다. 데모를 하더라도 존재감이 없는 데모는 국민의 여망이 덜 실린 것이다. 국민의 요구가 몇 만 명, 몇 십만 명의 단위로 분출될 때는 반드시 공공질서를 무너뜨리고 경찰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다.
 
▲  경찰은 31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 대해 3억원이 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 대자보

손해배상 논리에 따르면, 우리 경찰은 국민의 여망이 덜 실린 쓸쓸한 집회를 선호하고, 국민의 요구가 분출하는 집회를 자신들의 ‘손해’라 인식하고 있다. 즉, 우리 경찰은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손해’라고 여기는 셈이 된다. 또, 경찰의 손해가 전혀 없는 데모 없는 나라, 즉 경찰국가를 꿈꾸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 공권력의 일탈이다. 공권력은 민주주의에 봉사하라고 국민이 만든 조직이지 국가로부터 독립해 자기들 이익을 추구하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 이젠 집회도 돈 주고 해야 하나 -

공화국에서 집회는 정치행위다. 정치행위에 대한 가치평가는 공론장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정치행위가 법을 어겼다면 그땐 법에 의해 처벌하면 된다. 정치행위의 정당성과 법조문이 충돌할 때가 있는데, 그 경우엔 민주공화국의 헌법정신에 비추어 토론과 국민의 여론 수렴을 통해 해결해나간다.

정치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손해배상 대상이 안 되는 정치행위는 무엇인가? 정치적 의사결정으로 누군가는 이익을, 누군가는 피해를 보게 마련이다. 피해를 본 사람들이 그때마다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이 나라 정치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이때 공권력까지 나서서 손해배상 바람을 선도한다면 아예 정치가 실종될 것이다. 결국 돈 없는 사람은 국가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손해배상청구 안 당할 궁리만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말살을 의미한다.

경찰이 손해를 아무리 많이 봤어도, 경찰 월급은 국민이 지급하며 경찰의 파손된 장비도 국가예산으로 보충된다. 경찰의 손해는 결국 국민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촛불집회가 우리 세금으로 산 전경버스의 파손을 감수하고라도 했어야 할 정치행위인지 아닌지는 공론장에서 판단할 문제지 손해배상소송 따위로 재단할 사안이 아니다.

경찰의 이익은 어떤 경우에도 민주주의보다 우위에 설 수 없으며, 무엇이 경찰에게 이익이고 무엇이 손해인지도 공론장에서 정치적으로 판단할 사안이다. 정치적으로 전경버스 몇 대가 부서지더라도 집회를 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이 내려질 수도 있다.

경찰에 손해를 끼치는 국민의 정치적 행위가 손해배상청구의 대상이 된다면, 4.19나 오월 광주 등 민주화 항쟁, 87년 유월 항쟁은 경찰에게 도대체 얼마를 배상해야 하나?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경찰에게 돈을 지불해야만 살 수 있는 권리인가?

다시 강조한다. 경찰은 자기들 돈으로 운영되는 사조직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권력이다. 손해를 봐도 국민이 본다. 이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경찰이 손해배상청구를 하기 시작하면 마음 놓고 집회할 수 있는 사람은 부자들뿐일 것이다.

돈이 최고라는 황금만능주의, 이익지상주의에 공권력까지 부화뇌동하는 것이 황당하다. 현재 상인영업피해 등 대책위를 상대로 진행 중인 손해배상소송 규모가 40억 원에 달한다. 독재 시절에도 이렇진 않았다. 이명박의 나라에선 집회도 돈 주고 사야만 하는 상품인가?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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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8/01 [09:5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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