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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신ㆍ구주류, 네 멋대로 해라!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정치는 혹독한 심판을 받을 것
 
손혁재   기사입력  2003/09/02 [19:10]

▲신당추진 문제 놓고 격돌하는 민주당     ©YTN
신당 창당을 둘러싼 민주당 신주류와 구주류 간의 싸움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전당대회 개최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주 열렸던 민주당 당무회의는 회의가 아니라 한편의 '코믹 활극'이었다. 쌍X이니 개XX니 하는 육두문자와 고성이 오가고 삿대질에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험악한 분위기가 12시간이나 지속됐다. 이 와중에 어느 당직자는 정대철 대표에게 무릎을 꿇고 호소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9월 4일 목요일로 회의는 다시 미뤄졌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도 결론이 제대로 내려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회의를 다시 열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히려 회의를 거듭할수록 신주류와 구주류 간의 앙금만 더 깊어질 뿐이다. 신주류와 구주류 사이에 극적인 대타협이 이뤄지지 않는 한 민주당의 운명은 몰락의 길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민주당 의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민주당 내분을 지켜보는 국민이 민망할 정도의 추태들을 벌이면서도 정작 당사자들은 국민의 따가운 눈초리를 알고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무시하고 있는 것인가. 또 하나 궁금한 것은 정말 속된 표현으로 '피 터지게' 싸우고 있으면서도 왜 싸우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서로 상대에게 기분 나쁘다는 것이 아닐까.

신주류의 입장은 이해가 간다. 국민참여경선을 통해서 기껏 노무현 후보를 뽑아놓고는 후보를 도와 선거운동을 열심히 하지는 못할망정 후보에게 그만두라고 흔들어댔던 구주류가 보기 싫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후보단일화가 이뤄진 뒤에는 구주류도 노무현 후보 당선되라고 선거운동을 했을 것이 아닌가. 아니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가만히만 있었으면 그건 한나라당 탈당파들보다는 나은 것이 아닌가.

한나라당 탈당파 의원들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고, 그들이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적어도 탈당파 의원들은 작년 대선 때에는 이회창 후보 당선운동을 했다. 다시 말하면 노무현 후보를 낙선시키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탈당파들과는 함께 할 생각이 있으면서 구주류와 함께 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구주류가 반발할 것이 뻔하지 않은가. 더구나 구주류는 오랫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고생을 했던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오늘의 민주당, 그리고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가 탄생시킨 국민의 정부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다가 노무현 시대가 열리면서 힘의 상실감에 시달릴 구주류에게 느닷없이 '나가 있어!' 이러면 순순히 나가겠는가.

16대 대선에서 국민이 새로운 정치를 얼마나 열망하고 있는지 확인되었다.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나갈 주체세력은 바로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민주당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역정당, 사당정당 등 한국정당의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으며, 김대중 정부의 부패와 실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자기 개혁부터 하고 난 뒤에야 정치개혁을 힘차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신주류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 "지역분열구도와 낡은 정치의 틀을 깨기 위해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제안"한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때만 해도 정당 개혁이 발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국민의 정치개혁 기대가 크고, 민주당의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김대중 대통령이 물러났으며, 민주당 안에서 동교동계의 정치적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므로 환골탈태한 민주당이 노무현 정부의 정치개혁을 강력하게 뒷받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신당 추진은 8개월이 넘도록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오히려 민주당의 내분이 격화되면서 여당이 여당의 구실을 못하는 상황이다. 최근의 상황만 보더라도 화물연대 파업문제, 6자회담 문제, 주5일근무제를 둘러싼 노·사·정의 갈등 등에 대해 민주당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당무회의 관련 뉴스보도     ©YTN
왜 이렇게 상황이 악화됐을까. 신당 추진이 특정 인사를 '찍어내기 위한 것'으로 비쳐지면서 김대중 이후의 민주당 당권을 둘러싼 권력다툼으로 바뀐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많은 국민,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신당 창당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렸다.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백지상태에서 국민의 의사를 받들어 결연한 자세로 새로운 길을 가겠다"던 신주류의 다짐은 공수표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은 무엇일까.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사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민주당의 법통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구주류는 민주당에 남아서 민주당을 지키면 된다. 구주류와 함께 정치할 수 없다면서 새로운 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주류는 구주류가 지키는 민주당을 포기하고 나가서 새로운 당을 만들면 된다. 민주당이 쪼개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중도파는 신주류와 구주류의 화해를 모색하면 되지 않는가. / 본지고문

* 필자는 성공회대 교수이며,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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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9/02 [19:1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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