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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서한
[류상태의 예수를 찾아]‘개인 이명박’과 ‘대통령 이명박’ 혼동말기를
 
류상태   기사입력  2008/03/06 [16:35]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축하드립니다. 대통령께서는 투표자의 절반에 이르는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어 수많은 의혹을 극복하시고(?) 순조롭게 정권을 이양 받으셨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대통령께서 얻은 표에는 침체된 경제를 살려 안정되고 평화로운 나라를 이루어 달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스스로 그럴 능력이 있고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러 실례를 통해 보여주셨듯이 대통령께서 발휘하신 능력은 늘 상위계층을 위한 실적이고 능력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경제 CEO로서 한 과거의 일이며, 대통령으로서의 이명박은 다를 거라는 국민들의 기대에 잘 부응해주셔서, 성장의 열매를 부유한 소수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들이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서민들에게 더욱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안정되고 평화로운 나라를 이루는 일은 경제문제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회 제반 분야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국민들이 경제 외적인 분야에서도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대통령께서 과연 그 일을 제대로 감당할 능력이 있는 분인지 의심하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그런 국민의 한 사람이며, 지난 20여 년 동안 개신교 목사로 일해 온 종교인으로서 대통령께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공직자는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대통령의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 어쩌면 우리 사회의 안녕과 결속을 크게 해칠 지도 모른다는 깊은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당연하기에 대통령께서 기독교인임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직에 있는 분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채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함부로 드러내거나 정책에 반영하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가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염려하는 이유는, 대통령께서 서울시장으로 재직하실 때,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발언은 기독교인들의 집회에서 나온 것이었고,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발언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소망교회 장로 이명박이 아니라 서울시장 이명박의 발언이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큰 문제는, 그 발언이 단지 한순간의 실수로 돌출된 것이 아니라 보수 개신교인이라면 일반적으로 갖게 되는 교리적 진정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기독교는 유일신을 믿는 신념체계이기에, 대부분의 보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이 전 우주만물을 통치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적인 전통에서 살아온 정치인들 중에는, 자신들이 믿는 독특한 교리와 신념을 쉽게 일반화시키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보수 기독교의 세계관을 일반화하여 세계를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도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절대선인 기독교의 신과 그 가치를 중심으로 세계를 통합하려는 유혹을 늘 받고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잘 쓰는 표현대로, 자신의 신념과는 다른 국가들을 손쉽게 ‘악의 축’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그런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공직자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현실정치에 반영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 미국의 대통령처럼, 정치인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현실정치에 반영하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공직자가 반드시 피해야 할 위험한 유혹입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종교간 문화간 갈등을 일으켜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이런 유혹을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이유는,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가 역사와 현실에 대한 참여를 기본으로 하는 ‘참여종교’의 성격을 갖기 때문입니다. 불교와 도교 등 동양종교들이 깊은 영성과 초월성으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것처럼, 기독교는 현실의 모순과 불의를 용납하지 않고 하늘의 뜻을 땅 위에 구현하려는 현실개혁적인 종교로 존경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종교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이론적인 논제에 매달리지는 않겠습니다. 정교분리 원칙은 기본적으로 ‘정교 역할 분리’를 말하는 것이지 정치와 종교가 전혀 상통함이 없이 악과 모순이 판을 치는 현실을 보고도 종교인은 눈을 감아야 한다는 무책임을 말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종교인의 정치참여가 허용될 수 있는 선은, 보편가치에 의거한 간접참여에 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를 해롭게 하고, 사회를 파괴하는 악한 의도에 저항하는 민중신학이 바로 그런 현실 참여의 방향을 선명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진정 기독교의 힘이며 매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이런 ‘참여 정신’은 ‘예수 정신’에 따른 인류애적인 참여이지, 기독교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교리에 따른 참여가 아니었습니다. 과거 군사 독재시절, 진보 기독교인들이 기꺼이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전례는, 기독교의 진정한 참여 정신과 행동은 ‘보편가치에 의한 참여’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최근엔 보수 기독교인들이 교리적인 시각에 사로잡힌 채 현실참여 정신의 논리를 내세우며 현실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종교인이 개인으로서 정치에 참여한다면 개인의 문제로 존중해야 하겠지만, 공직에 나서는 동안에는 사적 영역으로서의 종교적 신념과는 분명히 분리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공직을 이용하여 구현하려는 시도는 사회통합에 큰 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 이명박’과 ‘대통령 이명박’을 혼동하지 말아주십시오

이명박 대통령님! 우리나라는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대표적인 다종교 사회입니다. 세계종교인 유교와 불교, 기독교가 거의 비등한 세력으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종교(宗敎)’라는 말을 순 우리말로 풀면 ‘으뜸 가르침’이라는 뜻이 됩니다. 세계적인 ‘으뜸 가르침’들이 우리나라에 함께 있으므로 우리 사회가 한층 더 성숙하고 아름다워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건 이상일 뿐이고, 불행하게도 인류 역사는 종교 간의 공존이 그 어떤 사상이나 이념의 공존보다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둘 이상의 종교가 비등한 세력으로 함께 있는 국가나 사회일수록 더 큰 혼란에 빠져든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러 종교가 공존하면서도 그 흔한 종교전쟁 한번 겪지 않고 견뎌온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합니다. 이 아름다운 전통을 잘 유지하여 행여 종교문제로 인한 갈등이 증폭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날 종교문제는 환경문제와 더불어, 지구마을에서 인류가 풀어가야 할 중요한 숙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누구든 종교로 인해서 행복할 수 있다면, 또한 그것이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루어진다면, 어떤 종교든 어떤 신념이든 존중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특정 종교를 선택할 자유, 그 종교로 인해 행복할 자유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개인 이명박’과 ‘대통령 이명박’을 혼동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깊이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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