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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정치권은 유권자의 '보이지 않는 발'을 명심해야
 
손혁재   기사입력  2003/08/19 [10:45]

"신당이 되기는 되는 겁니까?", "신당이 뜨면 내년 선거에서 가능성이 있습니까?" 최근 만난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주로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일 것이다.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파(민주당 신주류 등 이른바 개혁신당을 추진하는 세력이겠지)가 원내 제1당이 되기는 바라는데 신당이 지지부진한 것처럼 보이자 답답해서 묻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신당 추진 세력에 속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지금 같은 신당추진방식에 적극적으로 찬동하는 것도 아닌 내가 무슨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으랴. "글쎄요..." 말끝을 흐리면 으레 되돌아오는 한 마디. "정치평론가가 그런 것도 몰라요?" 나한테 정답을 기대하는 것도 다소 부담이 되고 실제로 잘 모르겠다. 하기는 신당 추진세력들도 잘 모를 텐데 제3자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민주당의 진로를 예측하는 것은 숨은 그림 찾기 수준이 아니다.  아마도 만 조각 짜리 퍼즐 맞추기 수준이다. 퍼즐이 맞춰진다면 어떤그림이 나올 것인가     ©대자보
민주당의 진로를 예측하는 것은 '숨은 그림 찾기' 수준이 아니다. 아마도 '만 조각 짜리 퍼즐 맞추기' 수준일 것이다. 민주당의 신당 창당 논의가 어제오늘 나온 것이 아닌데 아직도 그 모양새가 거의 갖춰져 있지 않다. 전당대회가 열리는 것인지 아닌지, 통합신당으로 가는 것인지 아닌지, 노무현 대통령이 관계하는지 아닌지, 한나라당 탈당파 의원들이 함께 하는 것인지 아닌지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이다. 더더구나 내년 선거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 정치가 '이념의 정치'가 아니라 '상황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이념의 정치란 이념에 의해서 움직여 가는 정치를 말한다. 각 정당이나 정파가 특정한 이념을 기준으로 모이고, 또 그 이념에 근거한 정책과 공약을 내세워 국민의 지지를 끌어들이는 정치가 바로 이념의 정치이다. 상황의 정치란 그때그때 벌어지는 상황에 끌려가는 정치를 말한다.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을 때 그 상황에 대해 각 정당이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정치가 움직여 가는 정치가 바로 상황의 정치이다. 지역주의 정당의 성격이 강한 우리 정치는 상황의 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념이라는 말이 사회주의 사상을 가리키고, 또 보수 기득권층이 부정적인 의미로 써왔기 때문에 이념의 정치가 수상쩍게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쉽게 비유하자면 이념의 정치는 생각 있는 정치이고 상황의 정치는 생각 없는 정치인 것이다.

예컨대 신당 창당이 말만 요란했을 뿐 표류하고 있는 것은 뚜렷한 이념을 내걸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신당 창당의 명분이 아니라 그 명분이 과연 올바른 생각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 정치의 고질병을 해결하기 위해서 희생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추진했다면 신당 창당에 힘이 붙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내년 총선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추진하다보니 마치 노무현 지지파 대 노무현 반대파간의 당내 권력다툼인 것처럼 돼버릴 수밖에 없었다.  

17대 총선이 이제 여덟 달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신당은 창당될 것이다. 그러나 그 신당이 어떤 모습을 띨지, 통합신당이 될지 개혁신당이 될지 또는 통합민주당이 될지,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내년 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거둘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년 선거가 한나라당에게 유리한 것도 아니다. 한나라당이 당 개혁을 이루고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했지만 당 대표 선출과정에서 잡음이 있었고, 또 새로운 지도부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과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가 떨어져도 한나라당의 지지가 올라가지 않는 사실을 한나라당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한 '뜻밖의 결과'가 내년 선거에서도 나오지 않을까 짚어볼 수 있을 뿐이다. 사실 '뜻밖의 결과'라는 말은 그릇된 표현이다. 결과가 뜻밖인 것이 아니라 언론, 정당 관계자 또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틀렸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선거 결과는 '유권자의 선택'의 반영일 뿐이다. 표로 나타나는 유권자의 선택이 바로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작용하도록 각 정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돈이나 지역감정, 색깔론, 흑색선전 등이 판치는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발(invisible foot)'도 있다. '보이지 않는 발'이란 말을 처음 쓴 이는 프랑스의 경제학자 랑그로와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움직이지만 '보이지 않는 발'이 시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을 시장 밖으로 차낸다는 것이다. 2000년 4.13 총선 때 나타났던 낙선운동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보이지 않는 발'의 작용이 아니었을까. 지금처럼 정치가 제 구실을 못하면 '보이지 않는 발'에 의해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정치가 제발 깨달았으면 좋겠다. / 본지고문

* 필자는 성공회대 교수이며,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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