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나선형 이론 묵은 한해가 가고 무자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해 가장 큰 일이 있었다면 18대 대통령 선거였을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삼성 비자금 사건과 이명박 당선자의 BBK 진실공방도 어느덧 흘러간 옛 노래가 되었고 언론에서도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연말연시 연휴를 맞아 가족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여 식사도 하며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큰 주제는 역시 TV에 그 빤빤한 얼굴을 내미는 이명박 당선자에 관한 것이었다. 친구들과 모여 소주잔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화 중 느낀 것은 가족뿐만이 아닌 주변 모든 사람들이 마치 거대한 최면에 걸린 듯 하였다. 언론에서는 그것을 이명박 신드롬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토록 한 방향으로 이끌었을까. 경제대통령이 나왔으니 앞으로 경제가 좋아지고 서민들도 살기 좋아지려니 하는 막연한 기대심리가 작용해서일까. 필자는 여기서 심리학에 나오는 침묵의 나선형 이론을 한번 떠올려 보았다. 요약을 해보면 사회에서 사람들은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공동체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의견과 행위를 정정함으로써 결국 다수의 방향으로 여론의 흐름이 흘러가게 된다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잘못된 방향이라도 따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리 현재 참여정부의 공과 실에 대해서나 민노당에서 주장하는 ‘무상교육 무상의료’에 대한 필요성을 이야기 해보았자 이미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말은 맞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하다는 반론만 무성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 허탈함과 함께 침묵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지금 세상은 너무 살벌해서 재미가 없다. 있지도 않았던 일을 억지로 꾸며서 멀쩡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기도 하고 때론 가당치도 않은 인사를 영웅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런 황당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서민들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재벌2세들이 과연 서민들을 위한 경제정책에 얼마나 협력해 줄 것인지 의문일 뿐이다. 부유하게 자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회 구조적인 모순은 무시하고 가난은 게으르고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세상은 가진 자들이 더욱 더 많이 가지려고 아귀다툼하며 아우성이다. 정치는 그렇게 부추기고 있고 경제는 양극화의 악순환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무능력자로 낙인을 찍어 버린다. 같은 서민 계층에서도 1등 국민과 2등 국민으로 나누어지는 현상을 이미 목격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주변에서 ‘사회 구조적인 모순’이라는 표현은 써서는 안 될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것은 무능력자들이 사회 불만계층이 악의적으로 지어낸 선동적인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경제가 회복되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여전히 높은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나날이 늘어만 가는 비정규직의 대책은 과연 있는 것인가. 이명박 당선자는 벌써부터 차기 정부 명칭을 ‘이명박 정부’로 정한다는 시건방을 떨고 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같은 슬로건이 아니고 ‘이명박 정부’라니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짓인가. 이명박 당선자는 과연 국민들을 어떻게 알기에 그런 말장난을 하려는 것일까. 국민 알기를 개똥으로 아는 것인가. 옛날 선조대왕이 즐겨 썼다는 표현이 있다. TV 사극에서도 자주 등장하던 용어다. 그것은 바로 ‘짐의 나라’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표현인가. ‘짐의 나라’와 ‘이명박 정부’가 무엇이 다를까. 이것이야말로 오만과 시건방의 극치를 달린다고 표현해도 결코 과하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이것을 꼬집는 이가 없었다. 벌써부터 누리꾼들이 침묵하기 시작한 것일까. 희망에 찬 새해부터 다산 정약용 선생의 어록에 나오는 ‘안동답답(安東沓沓)’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침묵의 나선형 이론처럼 언론과 주변에서 나팔 부는 대로 남 따라하고 자신의 주장은 침묵해버리는 것과 안동답답이와 뭐가 다를까. 아마 경상도 사람들의 기질을 그대로 표한 것이 바로 ‘안동답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가는 올라가고 공무원과 회사원들 잡도리하는 정책을 펼쳐 보이는데 화투로 표현하면 이것이 바로 ‘폭탄’인 것이다. 그래도 최면에 걸린 서민들은 “우리 대통령, 경제 대통령”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와중에 재벌 총수들은 이명박 당선자와 함께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다. 여기서 더 허리끈 졸라매면 서민들 배터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자칭 경제대통령은 ‘마른수건 다시 짜기’같은 기업경영정책으로 승부하려는데. 한번 물어보자. 대한민국이 대통령 한 사람의 나라인 ‘짐의 나라’이던가. ‘이명박 정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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