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했다는 신지호씨 우선 님들이 그렇게 고대하던 소망을 이루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5년 동안 열심히 해 보십시오.그리고 성공하십시오. 님들이 성공해서 서민들이 님들에게 재집권을 허용할 만큼 님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망이 높아진다면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므로 진보진영에 아쉬움이 없을 것이고 님들이 실패한다면 정권은 진보진영 쪽에 넘어올 테이니 그 또한 진보진영에 아쉬움이 없을 것입니다. 진보진영도 5년 동안 와신상담, 절치부심 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명박 후보가 5년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이냐에 대해서보다 진보진영의 정당들이 어떻게 내부혁신을 제대로 해 나갈 것이냐에 대하여 더 관심이 많습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대충 예측을 할 수 있는데 후자에 대해서는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들 정당들이 신지호씨 주문대로 ‘우향우 성향’을 더욱더 강화해 나간다면 십중팔구 망하게 될 것입니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대중들은 ‘얼치기 진보’,‘얼치기 보수’,‘제대로 된 진보’,‘제대로 된 보수’ 중에서 ‘제대로 된 진보’를 가장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대중들의 심층 심리 속에는 보수적인 지향성보다 진보적인 지향성이 더 강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대중들은 한나라당은 물론 대통합민주신당도 지금보다 더 진보적이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중의 심층적인 내심(內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중들은 지난 10년간 ‘얼치기 진보’ 때문에 매우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우왕좌왕하는 ‘얼치기 진보’에 실망한 대중들은 그래도 뭔가 내부혁신을 모색하려 하는 보수진영에 정권을 한 번 맡겨 보자고 판단한 것이지요. 그러나 너무 자만하지는 마십시오. 누구나 다 인정하듯이 ‘얼치기 진보’에 대한 실망이 커서 대중들이 님들에게 정권을 한 번 맡겨 보려고 하는 것이지 님들이 매우 잘할 것 같아서 님들에게 정권을 맡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오마이뉴스> 20일자 인터뷰 기사에 실린 님의 주장에 대하여 몇 가지 반론적 코멘트를 하겠습니다. “지난 20년간 세계적인 흐름과 한국의 흐름은 역방향이었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세계적 차원에서 탈냉전이 진행됐다. 그것은 사회주의의 소멸이자 자유주의 질서의 전지구적 확산이었다. 쉽게 말하면 세계적 흐름은 우향우를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시기 한국은 민주화의 진입기였다. 세계적 흐름은 오른쪽으로 가고 있는데, 한국은 왼쪽으로 가고 있었다. 한마디로 세계는 우향우, 한국은 좌향좌했다.”-신지호님의 말. 님과 같은 정치학자들은 1987년을 매우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그런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못합니다. 경제학자들에게는 1993년이 1987년보다 훨씬 더 의미가 클 것입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고 나온 것이 무엇입니까. ‘세계화’,‘국제화’.‘규제완화’,‘작은 정부론’ 등등이지요. 김영삼 정부는 명실공히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신자유주의 시대’를 대내외적으로 선포한 정부입니다. 님들은 김영삼 정부가 크게 실패한 정부이기 때문에 그가 ‘대한민국의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라는 것을 애써 외면하려 하시겠지만 외면한다고 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김영삼 정부 이후 한국정부는 명백히 우파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복지예산 조금 늘었다고 좌경화라 부르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신자유주의 논리는 철저히 대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면서 그 부작용은 세금으로 치유하겠다는 구상을 핵심으로 합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FTA' 논리를 보세요. 명백히 신자유주의 강화 논리입니다. 그래서 님들도 이 사안에서만큼은 노무현 정부를 지지하고 있고 말입니다. 어느 누구도 “한미FTA 논리”가 세금으로 부작용을 치유한다 하여 이를 좌파적인 정책이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의 여러 가지 부작용을 세금으로 치유하려 했다 하더라도 이들을 좌파정부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선진화 1기 정부'다. 관치의 시대가 끝나고 민치의 시대, 민간자율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산업화 시기에는 경제성장을 위해 국가가 개입했다. 민주화 시기에는 복지와 균형발전을 위한 관치가 있었다.”-신지호님의 말. 님의 주장과 달리 우리나라에 관치의 시대를 끝내고 민치의 시대를 연 사람은 이명박이 아니고 김영삼입니다. 김영삼 정부는 왜 IMF를 겪었을까요?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높기 때문에? 그럼 1990년대에 왜 기업들 부채비율이 갑자기 높아졌을까요? 1990년대 북유럽 거품붕괴를 피해간 덴마크와 역시 1990년대 중반 중남미 외환 위기를 피해간 칠레를 예를 들며 설명해 드리죠.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바람은 1980년대부터 불어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조치가 바로 각국의 금융규제완화 조치였지요.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로 국제적인 오일머니가 넘치면서 부동하는 대규모 금융자본이 형성되는데 이들이 자신들의 수익창출에 걸림돌이 되는 각국의 금융규제조치를 철폐하도록 이데올로기적 선전과 대규모 로비를 강화한 결과이지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1980년대 이후 선진국 후진국을 막론하고 금융규제 완화를 시행한 나라 대부분이 “거품상승->거품붕괴->금융위기”라는 것을 겪게 됩니다. 미국도 마찬가지고 유럽도 마찬가지고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중 가장 충격이 컸던 지역이 북유럽과 일본인데 북유럽 중 덴마크는 무분별한 금융규제완화를 시행하지 않고 버팁니다. 그래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의 부동산 거품이 1980년대 후반 100포인트에서 400포인트로 올랐다가 1990년대에 다시 100포인트로 주저 앉는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을 때 덴마크만 이를 피해 가게 됩니다. 칠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1990년대 중반 중남미 거의 모든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겪을 때 칠레는 이를 피해가게 되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이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1990년대 초반 무분별한 규제완화에 나설 때 칠레는 토빈세와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며 유입되는 외자를 통제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김영삼 정부는 어떻게 했을까요.? 중남미식으로 한 것입니다. 금융감독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규제 완화부터 해 놓고 ‘작은 정부론.’‘시장중심주의’를 외치며 금융기관 감독에 손을 놓다 보니 금융기관들이 국내외 금리차를 노리며 위험한 투자를 자행한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가 터지자마자 가장 우선적으로 금융감독 기관에 대한 통합과 금융감독원 위상 강화에 박차를 가한 것이고 말입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공통점이 관치다. 고교평준화는 박정희 대통령이, 본고사 폐지는 전두환 대통령이 했다. 하지만 이명박 시대에는 관치에서 민치로 대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신지호님의 말 박정희, 전두환은 관치 중심의 통치를 했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정책은 관치라는 꼬리표를 달고 없어져야 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김영삼 정부가 님들과 같은 오류에 빠져서 국가를 부도직전 상태에까지 몰고 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관치와 민치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조율해 나갈 것인가. 신지호씨는 “국가 거버넌스(governance)의 대전환”이야기를 하셨는데 근래 들어 선진국의 국가 거버넌스 변화 양태는 신지호씨 구상처럼 관치에서 민치로 바로 직행하는 형태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관과 민이 상호 견제하며 협조하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신지호씨 구상처럼 국가 거버넌스가 관치에서 민치로 바로 직행하면 청와대보다도 삼성의 전략기획실이 우리나라 권력의 명실상부한 중심이 될 것입니다. 유럽 등 선진국의 이런 국가 거버넌스 변화를 선도했던 하나의 사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968년 무렵 유럽의 대학생들은 대학의 대중화에 발맞추어 정부가 대학에 대한 국가재정지원을 대폭 확대하되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대학에 대한 국가의 감독을 최소화하고 자치를 폭넓게 보장하라고 요구합니다. 이 이율배반적인 요구에 대하여 유럽 각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이들은 대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하되 대학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사회적 명망이 있으면서도 전문적 능력을 지닌 공익형 이사(개방형 이사)의 대학행정 참여를 대폭 확대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와같은 관치와 민치의 중간영역 확대 경향은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취하는 일반적인 추세로서 OECD의 공기업 지배구조 개혁 권고안도 이러한 내용을 주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금 16개 광역교육청 산하에 162개의 지역(기초)교육청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볼 때 이 162개 교육청은 일선학교 행정지도 등 불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자유주의 개혁에서는 이 162개 교육청을 폐지한다. 필요한 경우 구청의 학습지원센터로 전환한다. 또 교장의 경영책임제로 (기존 교육청의 업무를) 일선학교로 분산시키면 예산이 절약될 것 아닌가. 그 절약된 예산으로 서민용 민사고를 50-100개 설립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계층이동을 활성화할 수 있다.”-신지호님의 말. 님의 말대로 지역교육청이 불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면 폐지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절약된 예산으로 서민용 민사고를 50-100개 설립한다거나 이를 통해 계층이동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신지호씨의 주장에는 전혀 동의하지 못합니다. 계층이동을 활성화한다? 그것이 신지호씨의 목표입니까.? 가난한 집안의 학생도 능력이 있으면 명문고에 갈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신지호씨 목표인 것 같은데 그 구상으로 사교육 문제가 해결됩니까? 사교육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학부모로 하여금 사교육을 받게 하고자 하는 유인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녀들을 명문대에 보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하겠다는 학부모들의 목표의식’이지요. 그렇다면 명문대가 사라지고 대학이 평준화되며, 간판이 아니라 단지 실력만으로 좋은 직장을 갖게 되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사교육 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에서 보듯이 사교육 문제는 거의 대부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보다도 더 정도가 심하게 대학을 서열화하고 고교를 서열화하고 중학을 서열화하고 초등학교를 서열화하면 어떻게 될까요? 고교 사교육 열풍, 중학 사교육 열풍, 초교 사교육 열풍, 유치원생 사교육열풍은 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줄곧 초중고생 학업성취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핀란드에서는 어떻게 교육을 하고 있을까. 핀란드인들은 유치원생 때부터 병아리 감별하듯 유아들을 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공동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공부하게 함으로써 “협동과 연대와 신뢰와 양보”의 중요성을 일상생활에서 체득하게 한다고 합니다. 유아기 때부터 ‘남을 눌러야 자기가 산다’ 혹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야수성을 체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친구와 협동하고 신뢰하고 연대하지 않으면 나도 생존할 수 없다’는 공동체 의식을 체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유럽에서는 ‘엘리트’ 어쩌고 저쩌고 하는 사람들은 경멸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야만인”이라 이거지요. 물론 이런 식의 교육방식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우리가 함부로 벤치마킹하면 안되겠지요. 그러나 핀란드인들의 이런 교육방식은 대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초중고 학업 성취도에서 세계 최고수준을 보이고 있고, 대학개혁도 OECD 등에 의하여 대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핀란드인들은 어려서부터 협동과 타협과 연대의식이 몸에 배여 있기 때문에 노조조직율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너 죽고 나 살자’라는 과도한 노사분규도 없습니다. 또 이들은 협동과 연대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생들도 기꺼이 자발적으로 세무 신고를 할 정도로 투명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세부담율이 높다 보니 고소득층들도 매우 검소하며 고소득층이 검소하다 보니 사회적 위화감도 없다고 합니다. 과시적 소비에 눈에 벌겋게 달아 올라 있는 우리나라 부유층들과 많이 다르지요. ‘내가 친구와 협동하고 신뢰하고 연대하지 않으면 나도 생존할 수 없다’는 공동체 의식을 체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아기 때부터 ‘남을 눌러야 내가 산다’ 혹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야수성을 체득시키려는 님들의 교육정책. 이에 대한 저의 비판과 대안들에 대하여 제가 <오마이뉴스>에 한두 차례 올렸기 때문에 지면 관계상 여기에서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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