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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공약 짝퉁인 이인제의 한심한 교육공약
[교육정책 분석] 이명박과 이인제의 교육공약, 사교육비를 줄일 수 없다
 
홍헌호   기사입력  2007/10/30 [09:33]
10월 29일 민주당 이인제 후보의 교육공약 발표를 끝으로 17대 대선 유력주자 5인의 교육공약의 윤곽이 대충 드러났다.
 
그 중 이인제 후보의 교육공약을 보니 이 분이 아직도 갈피를 못 잡는 것 같다. 이 분이 방향 감각이 없다 보니 대충 이명박과 정동영의 교육공약을 절반씩 원용해서 절충안을 내놓고 반편적(半偏的)인 이명박과 정동영 교육공약을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이인제 후보에게 정중하게 충고 드리건대 국민들을 우습게 보지 마시라. 이인제 후보는 두 후보의 공약을 절반씩 그대 품안에 안았을 뿐, 결코 두 후보의 공약을 단호하게 거부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더 고약한 것이 이 분이 형식적으로는 이명박, 정동영 두 후보의 공약을 절반씩 절충한 것 같은데 내용을 들여다 보면 이명박 후보의 내용을 80% 정도 더 강하게 받아 들였다는 점이다.
 
<오마이뉴스> 10월 29일자에 따르면 이인제 후보는 “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 국제고, 영재고 등을 현재 57개에서(약 2만8000명) 100개(약 5만 명)로 확대”하고 “논술고사를 폐지하고, 내신반영 비율을 완전 자율화하며, 수능시험을 수준별로 보통시험과 특별시험으로 이원화하여 수험생과 대학이 이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시험을 보고, 또 신입생을 선발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이 중에서 내가 동의하는 공약은 “논술고사 폐지” 하나 뿐이다. 우리나라 인문학계의 대표적인 석학 이어령 교수도 강하게 비판했지만 논술고사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크다.
 
자유로운 상상력은 자유로운 형식과 별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문학의 태두 고(故) 김현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작품이란 내용+형식이 아니라, 내용형식이다. 문학은 그럴듯한 내용에다가 그럴듯한 형식의 옷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침전된 내용이라는 형식을 갖고 있을 따름이다.”(김현,<한국문학의 위상(1977)>에서)
 
현재 우리나라 논술고사는 각종 언론보도에서 자주 거론되다시피 채점자들의 개인적인 주관 차이에 따라 평가 결과가 크게 차이 나고, 또 학생들로 하여금 독창적인 상상력 발휘를 하게 하기보다 채점자의 눈치를 살피게 하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유발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논술고사는 지나치게 많은 사교육 부담을 추가시킨다는 약점도 함께 지닌다.
 
불가피하게 굳이 학생들을 평가하고자 한다면 나는 오히려 학생들의 독서량을 평가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21세기가 네트워크형 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학생들의 지적역량은 넓은 독서를 통해 내부에 침전되는 것이다. 논술고사는 충분히 뜸들일 필요가 있는 학생들의 지적능력을 설익은 상태에서 억지로 끄집어내어 평가하고자 하는 과욕의 산물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독서는 즐거움일 수 있지만 논술고사는 고통이다. 그리고 즐겁지 않는 공부와 교육은 바람직한 공부와 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
 
독서량을 측정하는 것은 학생들이 그 책을 읽었느냐만 측정할 수 있을 정도면 될 것이다. 학생들이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를 머리 아프게 측정하려 하는 것은 학생들을 줄 세우고 싶어하는 천박한 성인들의 욕심이지 교육적인 처사는 결코 아니다.
 
교육받는 학생들은 즐거워야 한다. 교육이 고문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학생들이 과도하게 고통받는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더구나 선진국의 즐거운 교육과 한국의 고문하는 교육의 성과 차이가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후자를 택하고자 하는 대한민국 성인들의 어리석음과 광기는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인제 후보의 공약의 핵심인  “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 국제고, 영재고 등을 현재 57개에서(약 2만8000명) 100개(약 5만 명)로 확대”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이인제 후보는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은데 특목고 등의 확대가 사교육비 절감에 도움이 된다는 이명박 후보와 보수언론의 정신나간 소리보다는 더 양심적으로 보이지만 사교육비 부담 추가 폭발을 감수하며 저런 공약을 실천해서 어느 정도 교육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정말 의문이다.
 
초중고 학업 성취도 세계 1~2위, 대학 교육경쟁력 세계 최상위의 핀란드를 보자. 이 나라가 이명박식, 이인제식의 교육을 추구하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대학 전액 무상교육과 대학평준화라는 조건 속에서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고통과 학생들의 입시과열 고통 없이도 교육경쟁력 세계 최고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나라 핀란드. 이런 나라야말로 진정한 “교육강국” 아니겠는가.
 
서울대 한숭희 교수팀의 스웨덴 관련 연구보고서와 매일경제신문 기자의 핀란드 장기체류 보고서에 의하면 북유럽이 이렇게 교육강국을 이룬 데에는 그 나름대로 비결이 있다고 한다.
 
북유럽은 겨울이 매우 길다. 더구나 겨울해가 매우 짧다.그리고 기후 조건은 연중 내내 악조건이다. 이런 악조건들은 이들 국민들에게 “아주 많은 독서시간”과 “기후 악조건 돌파를 위한 협동과 연대의 필요의식”을 안겨 주었다.
 
이들은 사회적 연대의식이 아주 강해서 어렸을 때부터 학생들을 줄 세우는 교육 풍토가 아니라 “함께 협동하여 뭔가를 만들어 가도록 도와주는 교육 풍토”에서 자라게 한다고 한다.
 
교육학 교과서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듯이 이들은 진정한 교육, 즉 “억지로 밀고 끌고 머리에 강제로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즐겁게 자신을 풍성한 지식과 감성의 세계로 키워가도록 도와주는 교육”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는 어떤가.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이들의 방향과 거꾸로 가자고 난리법석들을 피우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전국 고등학교는 공식 집계로 2114교. 이 중 57개교의 특목고와 특목고 유사학교들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교육 열풍의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이 문제를 푸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존 특목고 등을 평준화 일반고로 전환하여 고교서열화를 막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57개 특목고 등을 특성화고로 전환하되 나머지 2057개 고교도 모두다 이들과 동일한 조건으로 전환하여 고교서열화를 무화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푼답시고 이명박 후보처럼 특목고 등을 300개로 늘리면 고교서열화는 3:97에서 14:86으로 그 대상이 확대될 뿐이고 이인제 후보 공약대로 한다면 그 대상이 5:95로 확대되는 것 뿐이다.
 
이 문제의 핵심 관건은 이런 조치들이 이명박 후보와 보수언론 주장처럼 사교육비를 절감시킬 것이냐 하는 것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조치들은 사교육비를 추가로 폭발시킬 뿐이지 결코 그것을 절감시키지는 못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가 무엇이냐. 고교 서열화 3 : 97의 상태에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상위 10% 이내에 드는 학생들이 주로 특목고 등등에 입학하기 위한 사교육 열풍에 휩싸이지만, 그것이 5 : 95로 확대되면 상위 15%학생이 이 대열에 뛰어 들고 한나라당 주장처럼 이를 14 : 86으로 확대하면 상위 30~50% 초중학 학생들이 여기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당과 이인제 후보에게 충고하건대 절충을 균형이라고 우기지 마시라. 국민들은 이 후보 공약이 균형인지 절충인지 훤히 다 들여다 보고 있다. 줏대 없는 절충, 방향감각 없는 절충은 결코 국민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내가 단언하건대 민주당의 지지율이 낮은 이유는 당에 분명한 색깔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중심당도 보시라. 무슨 색깔이 있나. 이들은 정당의 고유 색깔이 없으면서도 무책임하게 지역주의에 기대는데 지역주의에 기대는 것은 “정당다운 정당”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정당다운 정당은 신념체계로 승부”하는 것이다. 즉 국가의 개혁방향에 대한 신념체계로 승부하는 것이 정당이지, 정당의 신념체계, 미래비젼, 방향감각이 불투명한 정당, 그래서 지역주의에나 기대는 정당,이런 정당은 결코 정당다운 정당이 아니며 아울러 이런 정당들은 국민들을 감동시킬 수도 없고 지지율을 높일 수도 없다.
 
이인제 후보는 “OO도 대통령”이라는 발언을 하고도 별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런 정치의식을 유지하는 한 이인제 후보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다시 반복하지만 “정당다운 정당”은 지역주의와 같은 미끼나 떡고물이 아니라 국익과 공공선에 봉사하고 “국가 개혁방향에 대한 신념체계”로 승부하는 것이다. 미끼나 떡고물에 의지하는 단체는 이익단체는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진정한 정당이 될 수는 없다.
* 필자는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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