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가 지난 9일 혁명의 아이콘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가 죽은 지 4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고 AFP통신이 전했군요. 에르네스토는 쿠바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죠? 아니 남미 전체에서도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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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아이콘\'으로 남은 체 게바라의 모습 © 인터넷 이미지 |
쿠바의 수도 하바나에서 동쪽으로 3백킬로미터 떨어진 산타 클라라에서 게바라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는데,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대통령 직무대행이 주도했다는 군요. 게바라의 가족과 쿠바의 고위 공직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게바라의 동상이 서있는 혁명광장에서 열렸습니다.
산타 클라라 혁명광장에서...피델 카스트로(81)는 이날 옛 혁명 동지 게바라에게 바치는 편지(라울 카스트로가 대독)에서 “에르네스토는 너무 일찍 시들어버린 꽃”이라고 회상하면서 “40년 전인 10월 8일 곁을 떠나간 아주 특별한 전사에게 머리 숙여 존경과 찬사를 보냅니다”고 썼답니다.
이 곳 혁명광장은 게바라와 카스트로에게 특별한 곳이죠. 42년 전인 1965년 10월 3일에도 카스트로는 같은 곳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마이크를 잡았죠. 콩고 게릴라전에 참여하기 위해 달랑 편지 한 장 써놓고 떠나버린 친구 게바라의 작별의 편지를 읽었답니다.
산타 클라라는 아르헨티나 태생의 게바라가 1958년 쿠바혁명을 위해 전투를 치렀던 도시이죠.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살해된 뒤 훗날 유골을 가져와 묻은 곳이기도 하고요.
이날 기념식에는 게바라의 아르헨티나 부인인 알레이다 마치(71)가 게바라와의 사이에서 얻은 네 명의 자녀인 알레이다, 카밀로, 셀리아, 에르네스토를 이끌고 참여했답니다. 게바라의 첫 번째 부인(페루 태생 혁명가)과 딸은 모두 사망했죠.
▲ 지구촌인 마음속에 살아 혁명정신을 이끌고 있는 체 게바라. | |
부인과 4자녀 추도식 참여게바라가 카스트로 형제를 만난 건 1955년 멕시코. 당시 쿠바의 독재자인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하려고 뜻을 합쳤죠. 게릴라 전을 벌이기 4년. 1959년 1월 마침내 게바라와 카스트로 형제는 혁명을 성공시켰습니다.
게바라 사망 기념식은 남미 전역에서 열렸다는군요. 게바라와 카스트로를 열렬히 존경하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1997년 게바라의 유해가 처음 발견된 바에그란데의 남동쪽 시골마을에서 추모행사를 거행했답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게바라가 55년 전 방문한 적이 있던 서부 도시 피코 델 아귈라에서 추도식을 가졌고요.
브라질 상원은 10월 23일 게바라 추모 특별회기를 가진답니다. 게바라가 생전에 방문한 적이 있던 과테말라, 멕시코, 니카라과에서도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게바라의 출생국인 아르헨티나도 특별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네요. 내년 6월 게바라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거대한 행사를요.
▲ 52년 게바라가 의학도 시절 남미를 여행하며 불평등을 뼈저리게 느꼈던 '모터사이클 투어'.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한 장면. | |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에서 태어났죠. 청년시절인 1952년부터 1년간 그 유명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영화 제목이기도 함)를 남기며 남미 전역을 여행했답니다. 체는 당시 경제적 불평등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결국 멕시코에서 카스트로를 만나 혁명가의 길로 들어섰답니다.
‘체의 신화’는 지구촌인 마음에 살아...게바라는 라틴 아메리카의 불공정한 사회질서를 타파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맨 처음 쿠바혁명에 참여했죠.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뒤 그는 게릴라부대원을 이끌고 아프리카 콩고 혁명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1966년 볼리비아 혁명에 참여했고요.
▲ 체가 볼리비아 혁명을 지도하다 붙들려 처형당한 바엔그란데에 세워진 그의 동상. | |
파라과이의 한 연구원인 마틴 알마다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게바라의 볼리비아 입국을 파악한 건 파라과이 비밀 정보부대. AFP가 알마다와 자료를 확인한 결과, “체는 볼리비아와 국경지대에 있는 브라질의 코룸바시에서 오스카 페레이라라는 가명을 쓰고 볼리비아로 잠입했다”고 기록돼 있었다는 군요.
게바라는 볼리비아에서 11개월간 작은 혁명부대를 이끌었고 혁명을 전파하려고 노력했죠. 하지만 주민들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 건강이 악화된 게바라는 1967년 10월 8일 라이게라 마을에서 볼리비아 정부군과 2명의 미국 CIA요원(쿠바계 미국인)에게 붙들렸고 이튿날 39살의 나이로 처형됐죠. 그는 죽어서 ‘혁명의 전설’인 ‘체의 신화’를 완성한 것입니다. 체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