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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기자들이 그토록 서럽게 울던날
[현장] 시사저널 '장례식' 치르고 결별선언...울음바다 "다시 데리러올께"
 
이석주   기사입력  2007/06/26 [14:22]
"사랑한다. 시사저널… 조금만 기다려 곧 데리러 올게"
 
<시사저널> 소속 22명의 기자 전원이 결국 회사와 이별을 선언했다. 노조가 "더이상 사측과의 교섭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 26일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며 지난 1년 간 벌여온 사측과의 날선 공방을 마무리 지은 것.
 
이로써 지난해 6월 '삼성기사 삭제'로 촉발된 <시사저널> 사태는 사태 발발 1년여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거대자본에 맞선 기자들의 독립언론 정신이 사측에 의해 무참히 꺾였다는 점에서 한국 언론사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다. 

▲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 청양빌딩 시사저널 앞에서 열린 시사저널 노조 결별 기자회견에서 서명숙 전 편집장과 이숙이 기자(노조 부위원장)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07 이슈아이 박항구
"매체 복귀 위한 우리의 미련한 사랑은 결국 무위로 돌아가"
 
<시사저널> 노조는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결별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해결을 위해 곡기를 끊는 '끝장투쟁'까지 벌였으나, 사측의 태도가 변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 하에 매체와의 인연을 끊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이제 노조는 시사저널과 이별을 고하지만,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믿음 만은 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파업 기자들은 독립 언론의 꽃을 피우기 위해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시사저널> 노조에 따르면, 지난 25일 오전 노조는 기자 전원이 참석한 전체총회를 통해 '파업 철회 후 매체 복귀'에 대해 조합원의 의사를 타진했다. 이에 22명 중 18명이 반대입장을 견줘 안건이 부결됐던 것.
 
따라서 지난 1월 부터 6개월 간 파업을 진행 중인 기자 전원이 이날 부로 사측에 사표를 제출하고, 회사에 복귀하지 않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노조의 이같은 판단은 지난 4월 사측과의 교섭이 사실상 와해된 상황에서 지난 한 주를 사태해결을 위한 '끝장투쟁'의 기간으로 정했지만, 이기간 동안 사측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더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 청양빌딩 시사저널 앞에서 시사저널 노조 결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07 이슈아이 박항구
이들은 '시사저널 기자들의 마지막 편지'를 통해 "우리는 지난 1년간 언론사 경영진의 폭거를 지켜보면서도 '매체의 정신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미련한 사랑은 무위로 돌아갔음을 고백한다"고 밝혔다.
 
이어 기자들은 "1년 동안의 모질었던 싸움을 정리하려니 너무나도 마음이 아픈게 사실"이라며 "독자 여러분께 시사저널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죄송스런 마음이다. 여러분께 한없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뿐"이라고 매체를 떠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 청양빌딩 시사저널 앞에서 열린 시사저널 노조 결별 기자회견에서 조합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07 이슈아이 박항구
정희상 노조 위원장 역시 "지난 1년 간 22명의 기자들은 편집권을 수호하기 위해 참으로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며 "우리의 투쟁은 이미 명분상으로 승리한 싸움이다. 보다 현실적 방안을 위해 회사와의 결별을 선언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끝장투쟁'을 선언하고 단식투쟁에 돌입했던 정 위원장은 이날 기력이 떨어진 탓에 현장 발언 대신 미리 준비해온 고별사를 읽어나갔다. 또한 그는 매체를 떠난다는 아쉬움에 울먹이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정 위원장은 "마지막 교섭과정에서 '질서를 잡아야 겠다'는 금창태 사장의 말을 듣는 순간, 5공 시절 '국법질서확립' 이라는 치안본부의 문구가 오버랩 됐다"며 "시사저널 정신은 거대자본에 당당히 맞선 22명 모든 기자들의 몫"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 청양빌딩 시사저널 앞에서 열린 시사저널 노조 결별 기자회견에서 정희상 위원장이 고별사를 하고 있다.     ©2007 이슈아이 박항구
회견 내내 북받치는 감정에 눈물 흘려…"이젠 여기도 끝이구나"
 
이날 노조 소속 22명의 기자 전원은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내내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눈시울을 적시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던 것.
 
애초 안은주 기자가 '독자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낭독하기로 예정됐었지만, 흐르는 눈물과 떨리는 목소리 때문에 낭독이 불가능해지자 결국 문정우 전 편집장이 안 기자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다.
 
이숙이 기자는 "이렇게 많은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보이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며 "지난 1년 간 편집권 수호를 위해 사측과 싸움을 벌여왔지만, 결국 매체를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게돼 너무나도 슬프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편 노조 소속 기자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시사저널 사옥 5층에 올라가 장례의식을 진행했다. "이제 시사저널의 정신은 죽었다"는 의미로 '시사저널 편집국' 현판에 국화 꽃을 놓았던 것. 여기에는 22명의 기자 전원이 참여했다.
 
지난1월 기자들이 파업을 단행한 이후 직장폐쇄된 사무실 안을 처다보던 이숙이 기자는 "이젠 더이상 (편집국 사무실을) 보지 못하겠구나"라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또한 고재열 기자는 '직장폐쇄'를 알리는 공고문에 직접 '사랑한다. 시사저널, 조금만 기다려 곧 돌아올게'라고 적어 매체를 떠라는 아쉬움을 달랬다.
 
▲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 청양빌딩 시사저널 앞에서 열린 시사저널 노조 결별 기자회견에서 조합원들이 시사저널 편집국 명패 앞에 국화꽃을 올려놓고 있다  ©2007 이슈아이 박항구
▲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 청양빌딩 시사저널 앞에서 열린 시사저널 노조 결별 기자회견에서 조합원들이 시사저널 편집국 명패 앞에서 국화꽃을 올려  조의를 표하고 있다.   ©2007 이슈아이 박항구
▲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 청양빌딩 시사저널 앞에서 열린 시사저널 노조 결별 기자회견에서 고별식을 하던 이숙이 기자가 시사저널 편집국 명패를  만지고 있다   ©2007 이슈아이 박항구
 
▲ 한 조합원이 폐쇄된 편집국 출입문에 붙어있는 직장폐쇄 안내문에 "사랑한다 시사저널, 조금만 기다려. 곧 데리러 올께" 라고 쓰고 있다.  ©2007 이슈아이 박항구
▲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 청양빌딩 시사저널 앞에서 열린 시사저널 노조 결별 기자회견에서 한 조합원이 폐쇄된 편집국 출입문에 국화꽃을 붙이고 았다  ©2007 이슈아이 박항구
"새매체, 탐사보도 중심의 심층 저널리즘 추구할 것"
 
결국 이날 노조는 <시사저널>과 결별을 선언했지만, 향후 기자들은 새로운 매체창간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미 사측과의 교섭이 와해된 이후 이러한 '설'은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이날 기자들이 회사측에 사표를 제출함에 따라 사실상 공식화 된 것.
 
<시사저널> 장영희 기자는 회견이 끝난 후 <이슈아이>를 통해 "곧 시사저널의 정신과 논조를 유지한 새로운 시사주간지를 창간할 예정"이라며 "여기에는 22명의 기자 모두가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 기자는 "시사저널 창간 당시에도 그랬지만, '정론직필'이라는 기본원칙을 지키고 깊이있는 탐사보도를 통해 심층 저널리즘을 추구할 계획"이라며 "현재까지는 잠정적 결론을 내린 상태지만 내주 매체 창간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밝히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22명의 기자들은 오는 7월2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시사저널 기자들을 현장으로 보내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새로운 매체의 창간계획을 알리는 공식 기자회견을 가질 계획이다.
 
한편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이날 개인명의의 성명을 내고 "비록 시사저널은 삼성의 금력 앞에 쓰러졌지만, 기자들의 '독립 언론 정신'만은 살아남아 새로운 매체로 아름답게 부활하리라 믿는다"며 "기필코 '펜은 돈과 권력보다 강하다'는 진리를 입증할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 기자회견내 안타까워 울먹이던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이 끝난뒤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밝은 표정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07 이슈아이 박항구
* 비판과 대안, 새로운 상상력 <이슈아이> (www.issuei.com) / 대자보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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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6/26 [14:2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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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율전 2007/06/27 [11:49] 수정 | 삭제
  • 오늘 17년 읽어오던 시사저널에 이별을 고했습니다.
    마음 한 곳이 허전하고 진한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믿습니다.
    22분의 힘으로 곧 과거의 시사저널에 버금가는 새로운 책을 만들어 낼 것을.
    쉽지않은 길이겠지만 독자들이 항상 함께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힘 내십시오.
  • 지지자 2007/06/26 [16:59] 수정 | 삭제
  • 현실은 참담하지만,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희망의 구체적인 징표입니다.
    너무 애쓰셨습니다. 힘내세요. 많은 이들이 마음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 호연지기 2007/06/26 [15:33] 수정 | 삭제
  • 절로 눈물이 납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봉건 지주의 논리가 그대로 부활한
    강시 좀비의 나라 대한민국의 아픔이 너무나 절절합니다.

    우리는 그대들이 처음 들려 준 워신텅컨세서스 보고서에 찬물 뒤집어 쓰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대로 어느새 남한의 자본은 시대를 뒤로돌려 봉건 영주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본의 앞마당은 민주도 민심도 그 무엇도 현행 법도 정치도 그 무엇도 차단당한 완전한 봉건 영주의 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성문을 지키는 용역 사제깡패와 그들을 방조하는 공권력의 모습에서 자본의 천국 노동의 지옥을 보았습니다. 공단이나 언론이나 어찌 이리 자본의 모습은 동일한 지요.

    하지만 저들의 행패가 저들의 진시에 대한 모독이 아무리 커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다면 겨울지나 봄오듯 우리는 사필귀정할 것입니다.

    모두들 이제 눈물을 닦는 손에 다시 펜을 들고 자본과 권력보다 강한 펜의 옹골찬 발걸음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건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