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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의 철학, 김훈과 이해찬의 닮은 점
[비나리의 초록공명] 속물도 철학과 예술성이 필요, 그렇지 않다면 저질
 
우석훈   기사입력  2007/06/18 [02:50]
속물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사실 우리 말에서 속물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는 아주 나쁘지는 않다. 불어로는 laique라는 표현이 이런 말과 비슷한데, 이 단어도 전혀 나쁜 의미를 가진 단어는 아니다. divine, 즉 신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라이끄'라고 쓰면 약간은 계몽주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뉘앙스와 시장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societe divine이라고 하면 신의 사회, 즉 중세를 의미한다. 반면에 societe laique라고 하면 속류 사회라는 뜻이지만, 르네상스 이후에 신 위에 세우지 않은 새로운 사회 즉 공화국을 의미하기도 하고, 가끔은 시장 사회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악질, 저질과 같은 단어들과 비교하면 속물은 그런 질 나쁜 종류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단어는 아니다. 스스로 속물이라는 말을 밉지 않게 사용하던 사람으로 황인용이 기억이 난다. 라디오에서 시나 에세이 같은 것을 읽어주면서 쑥스럽게 "저는 속물이라서 부끄럽기만 하다"와 같은 말을 종종 사용했다. 황인용은 내가 기억하는 아주 고상하게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이다. 비슷한 정도의 유명세를 가지고 있었던 이종환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점이 더욱 명확해진다.
 
황인용 정도의 인생을 가질 수 있을까? 그건 자신없다. 그는 아주 인기있었던 아나운서였고, 나중에 인기있는 DJ가 되었고, 결국에는 오디오 테스트 CD의 해설도 황인용 목소리로 녹음이 되었다. 
 
▲무력한 개인의 합리화는 한 개인만 흠집을 내는 것이 아니라 힘에 대한 자발적 동의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을 그려낸 김훈의 칼의 노래     ©생각의나무, 2001
이런 형태의 속물이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내가 보기에는 김훈이다. 그는 돈을 좋아하고, 게으름도 좋아하고, 식구를 먹여살려야 한다는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임무에는 충실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전형적인 속물이지만, 추하거나 추잡한 느낌은 아니다. 파리에서 살던 시절에 시사저널에서 가장 재밌게 읽던 글이 김훈의 글이었다. 참 열심히 읽었었다.

 
이문열은 속물이라기 보다는 이데올로그이다. 그리고 비지니스형 이데올로그에 가깝다. 공병호, 이문열, 이런 사람들은 한 줄에 세워놓아도 이상하지 않은데, 이런 사람들을 속물이라고 불러주기에는 우리나라에서 속물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가 아깝다.
 
내 친구 중에는 자신을 속물이라고 부르기를 아주 옛날부터 즐겨했던 친구가 있다. 서강대 경제학과를 나왔고, 학교 교지사에 있었고, 지리산을 뒤지고 다니면서 빨치산 얘기들을 취재하던 시절을 가장 행복한 시절로 기억한다. 한 때 홍사덕과 같이 정치를 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새 삼성의 주임이 되고 과장이 되었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이다. 그 친구는 스스로를 속물이라고 말하는 것을 즐겨했다. 김훈의 느낌이 그 친구와 비슷하다.
 
공기업 사장들 중에는 가끔 이런 전형적인 속물들이 있다. 물론 드물게는 아주 악질들도 있지만, 요즘처럼 검증이 강화된 상태에서 사장이 되는 사람들 중에는 속물 유형이 종종 있다. 미워하거나 비난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의 세계에서 묵묵히 살아간다.
 
속물은 저질 혹은 악질과의 위험한 선을 타는 사람이다. 주어진 기회를 잡겠다고 생각하면 매우 위험한 부패나 범죄에 연루되게 된다. 아슬아슬하게 속물의 삶을 살기 위해서도 많은 양심의 갈등과 자기에 대한 사색이 필요하다.

개똥철학은 속물이라는 단어와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이다. 개똥철학이라도 있어야 속물이라도 되는 거지, 돈이 최고다라는 하나의 가치관만을 가지고 살면 사회라는 곳이 저질이나 악질로 추락하기 딱 좋은 곳이다.
 
예전에 나를 아주 괴롭히면서도 아껴주었던 공무원 과장이 한 명 있었다. 공무원 중에서 나의 첫 번째 상사였던 사람이다. 처음 만나는 날 'cascade tax'라는 것을 놓고 싸웠다. 탄소세와 관련된 논의인데, 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아직도 유일하게 탄소세가 부가가치와 비슷한 케스케이드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하여간 내가 연세대학교 출신이라고 "그러니까 네가 공부를 못하지"라는 말을 30분이 넘게 들었다. 나중에는 "내가 네 자리 만들어준 사람이야" 혹은 "이런 일 하라고 내가 널 뽑은게 아니야"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잘못하면 멱살잡이까지 갈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였었는데, 못들은 척 하고 있던 사무관과 서기관들이 나중에 그 일을 회상하면서 소주 한 잔씩 사줬다. 그 양반이 서울대를 나오고 전형적으로 속물임을 강조했던 사람인데, 처음 만나자마자 그렇게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잘 지냈다. 지금도 미워하는 감정은 나에게 조금도 없다. 나중에 뇌물을 받아 신문에 이름이 나오면서 옷을 벗었다. 지금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몇 사람은 그를 저질로 기억하지만, 내 기억에는 속물 정도이고, 생각해보면 열정과 지혜를 갖추었던 좋은 선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간단한 로비에 너무 쉽게 무너졌다. 속물 정도로 버티기 위해서라도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
 
김훈이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접대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하다. 그는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속물도 속물 나름대로 지켜야 할 선이 있고, 찾아야 할 철학이 있다. 새만금을 안타까와 하고, 경부운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의 생태적 이성은 김훈도 가지고 있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지만, 김훈과 이해찬은 약간은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다. 김훈이 조금 더 갈무리해서 마음을 숨기는 법을 알고, 이해찬은 그런 표현법을 모른다는 차이만 제외하면 내 눈에는 두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미소가 같고, 웃을 때 눈 매무새가 같다. 차이점은 김훈은 기관장을 안해서 정면으로 웃기 보다는 웃음을 감추고 속으로 웃고, 이해찬은 기관장을 많이 해서 그런지 파안대소를 거리낌없이 한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지, 느낌은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다.
 
노무현이나 이명박을 놓고 비교해보면, 김훈과 이해찬이 얼마나 비슷한 유형의 사람인지 금방 드러나게 된다.
 
속물은 칭찬은 아니지만, 속물의 삶에도 나름대로의 철학과 예술성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속물임을 가장한 저질에 불과하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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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6/18 [02:5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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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2007/06/19 [00:54] 수정 | 삭제
  • 기본적인 자리매김은 옳은 듯하지만 너무 치우친 글들이 종종 보이네요.
    나중에 자기 글들을 다 모아놓고 다시 보면 부끄럽지 않을까 합니다.
    가끔씩은 전지 전능한 무오류의 자리에서 남을 비판하는 것도 같구요.

    특히 이번 글은 도대체 논지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김훈과 이해찬은 전혀 다르게 보이는 사람이지만 다 나쁜 놈이란 점에서는 똑같다는 이야기인가요?

    저는 우파나 좌파(김훈이나 이해찬이 우파인지 좌파는 잘 모르겠지만)를 떠나 두 사람 만큼 자기 생각에 솔직한 사람도 드물고 또한 여러 사람들이 두 사람 만큼이라도 솔직해질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당위로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겠지만 현실로 우리가 예수님일 수는 없잖아요?

  • 새날 2007/06/18 [07:09] 수정 | 삭제
  • 위선도 그런 위선이 없는 인간...
    스스로 너무 잘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 하느라 계속 딴 얘기를 늘어놓는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