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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인간 <캐산>, 숨은 메시지를 보다
[비나리의 초록공명] 일본 만화영화에 깃든 전쟁과 평화의 공존법칙
 
우석훈   기사입력  2007/05/18 [11:55]
1.

만화영화 신조인간 캐산은 아이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충격적인 플롯을 담고 있다. 원래 일본 애니메이션에는 에너지원에 대한 시대의 심각성 같은 것을 좀 가지고 있는데, 이건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진주만 공습까지 기원이 올라간다.
 
일본은 에너지원이 없어서 미국과 전쟁을 하면 속전속결로 가는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진주만 공습같이 무리한 작전을 짜면서 전쟁을 시작하지만 결국 원자폭탄 두 발을 본토에 맞게 되는 비극의 나라가 된다.
 
미국측에서는 이 장면을 평화로운 하와이에 가한 일본의 무자비한 공습과 결국 미국의 전략이 기똥차게 맞아서 전세를 결정적으로 역전시킨 미드웨이 해전의 두 가지로 많이 몰고 간다. 당했고, 그래서 너무 똑똑한 미국이 결국 일본을 이겼다... 아케이드 게임의 슈팅게임은 여전히 미드웨이 해전을 그 배경으로 하고 요즘도 출시된다. 레이더가 없던 시절 전투기들이 요즘 식으로 말하면 '스캐닝'을 담당했는데, 결국 일본 대함대를 찾아낸 이 전투기들이 '에너지 부족'으로 캐리어 앞에까지 왔다가 착륙하지 못하고 떨어졌다는 눈물나는 얘기들이 또 앞을 가린다. 제목도 기억하지 못하는 B급 영화에서 이 전투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이 때 떨어진 조종사들이 상어밥이 되었고, 자신은 머풀러 - 빨간 마후라! - 를 풀어서 겨우 살아왔다는 얘기를... (이 재미없던 전형적인 싸구리틱 킬러 영화를 독일에서 보았나, 프랑스에서 보았나, 그것도 기억 안난다.)
 
사운드는 당대 최고 반열에 올랐지만 영화는 끔찍한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끔찍했던 영화 <진주만>에서는 루즈베트 대통령이 소아마비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공습을 - 두리둘 작전이었나? - 결정하는 장면에서 두 다리로 일어선다.
 
한편 당했던 일본 측에서는 이 전쟁에서의 패배를 미국 식으로 이해할 수는 없을 거고... 이 슬픔이 담겨 있는 음식이 돈까스다.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군들이 먹는 스테이크를 동경하면서 전후에 구할 수 없던 쇠고기 대신 싼 돼지고기로 스테이크처럼 만들었고, 이게 우리나라에는 경양식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와서... 70년대 연애 이야기에 경양식집에서 청혼을 하고 과다지출로 한 달 동안 엽차만 마셨다는 전설 같은 얘기들이 돈까스라는 이름에는 담겨 있다.
 
그렇지만 에너지에 대한 60~70년대의 일본의 약간은 과도한 집착의 기원이 바로 이 태평양 전쟁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일본 만화의 주요 공간은 바로 이 태평양 전쟁이었고, 다시는 미드웨이 해전과 같은 패배는 하지 않으리라...
 
일본 만화 중에서 너무 극우파 색깔이 강하다고 그 예술성에도 불구하고 요즘도 사람들이 가끔 지적하는 '아톰 보이'가 이러한 태평양 판타지의 첫 길을 열었다. 원자력 시대에는 일본이 한 발이라도 더 나가야 하고, 로봇과 원자력으로 다시 세계를 제패한다...
 
이 간단해 보이는 도식은 때로는 애국주의로, 때로는 서양 세계에 대한 증오로, 그리고 가끔은 반성으로 이어진다.
 
당가도 A인지, 우주전함인지... 하여간 태평양에 빠진 태평양 전쟁 시절의 옛 캐리어 야마토호를 바다에서 건져올려 이 배를 고쳐서 우주로 나가 우주전쟁을 치룬다는 설정은 오히려 너무 진부할 정도이고, 꼭 로봇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우주 전투는 언제나 미드웨이 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가끔은 이순신의 명랑해전 전법을 동원하기도 하고, 학익진이 나오는 광경도 볼 수 있다.

이 유치찬란한 시절의 대형 로봇이 가지는 대체에너지 아니면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설정에 대한 얘기들이 이러한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원래의 TV 만화용 캐산은 이 시절에 속해 있는 영화인데, 시대의 흐름으로 보면 완전 반항아용 만화이다. 로봇이 우리편이야, 아니야? 캐산에서는 로봇군단과 싸우는 구도로, 아톰류의 만화들과는 일정 궤를 같이 하는데, 적들 로보트는 대개 미국을 상징하고, 우리편 로봇은, 당연히 대일본 제국의 청년 천재들이 만든 거고... 이런 시대 흐름에서 캐산은, 우리는 로봇 아니라, 신조인간, 즉 바이오 기술이야...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대전투신의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이 캐산이 쓰는 헬멧인데, 보통 대형로봇에서 레이저빔을 쏘는 이 V자형 장치가 - 로보트 태권 브이의 바로 그 브이 말이다 - 캐산인 헬멧에 달아 대가리에 달고 나온다. 이 캐산의 V자가 요즘 식으로 말하면 태양광 발전기인 셈인데, 캐산이 운용하는 무기체계의 에너지가 그래서 바로 태양광이다. 요즘 엔지니어들에게 이 얘기하면 웃기지 말라고 할테지만, 하여간 태양광의 헬멧에서 로봇군단을 한 방에 전멸시키는 대전투씬이 하고 싶은 말은...
 
테츠카 오사무, 당신의 극우주의는 너무 지긋지긋해... 제발 아톰을 안고 이제는 무덤으로 들어가란 말이야...
 
이 얘기를 나에게 해준 사람들은 그 이름도 당당한 네도 사람들이었고, 장소는 부다페스트의 도나우강에 띄워놓은 유람산 위에서였다. 네도(NEDO)에서 돈을 대서 부다페스트에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UN 회의를 열었는데, 그 회의에서 일본 정부는 도나우강에서 뱃놀이를 보너스로 곁들였다.
 
나와 나보다 열살쯤 많은 네도 아저씨들이랑 배에 앉에서 아톰에서 캐산까지 나오는 로봇 얘기를 하면서 그들의 에너지에 대한 판타지 얘기를 들을 수 있었으니... 몇 년 전인데, 당시에 네도 한 과에서 사용하는 기술개발 예산이 우리나라 전체보다 많았고, 이 얘기는 당시 이한동 총리한테도 내가 해줬던 얘기이다. 그 아저씨, 생각보다 기술개발 얘기에 관심이 많았었다.
 
(당시 네도의 동구 진출 사업을 이상하게 모방한 게 참여정부에서 자주개발율이라는 이상한 용어로 변질되면서 또 한 번의 덩더쿵 덩더쿵이...)
 
여담이지만, 에반게리온에서는 이런 거대 에너지 판타지를 완전히 저주한다. 에바 제로기, 에바 1호기, 이런 로봇의 프레임에 갇힌(!) 에바들이 전기코드를 등에 꼽고 날 뛰는 모습이란! 결국 열 받아서 전기코드를 뽑고 달려가기 시작하는 걸, 나만큼이나 과장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은 '폭주'라고 불렀다 (내가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에서 처음에 생각했던 폭주라는 이미지는 에반게리온에서 가지고 왔다. 신지와 노무현의 차이점은?)
 
2.

영화 <캐산>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영감쟁이들 엿먹어... 되겠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자민당 총리들, 제발 무덤으로 들어가란 말이야...
대동아공영권의 꿈이 이루어졌고, 나중에 이 대동아공영권에 의한 아시아 연합이 유럽연합도 무찌르고 드디어 일본의 세계 지배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살아남은 인류의 60%는 공해병에 시달리고, 멀리 갈 것도 없이 수상을 비롯한 이 영감쟁이들이 전부 공해병에 걸려서 오늘 낼, 오늘 낼, 골골하고 있는 것이 현 상황 아니냐?
 
그래서 이 수상을 살리기 위해서 아들이 과학자들을 동원해서 만드는 것이 신조세포 되겠다.
 
줄기세포 광고하던 사람들이 캐산에서 따온 것인지, 아니면 캐산 만든 사람이 줄기세포 광고 찌라시에서 대사를 베껴온 것인지, 하여간 신조세포와 줄기세포는 거의 같은 개념인데, 차이점은 이 신조세포는 "오리지날 인간", 즉 인간이 태초에 가지고 있던 유전자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게다가 중앙아시아에서 나왔다는... (이 점에서 지금 인간의 20%인지 30%인지가 가지고 있다는 징기스칸 유전자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대충 엄청 강한 줄기세포를 원형의 징기스칸의 후손에게서 뽑았다는 설정 정도?)
 
여기에 원작 만화의 태양열 대신에 번개, 즉 썬더 에너지와 신조 세포가 결합하면서 드디어 신조인간들이 등장한다는...
 
국제 에너지 엑스포 비슷한데 가면 여기서도 골아픈 아저씨들이 날 붙잡고 찌라시들을 나눠주는데, 내가 본 가장 황당한 파일럿 테스트까지 끝낸 기술 중의 하나가 연을 띄워서 연에다 풍력발전기를 달았던 설비이다.
 
이 사람들이 꿈으로 그리는 두 개의 에너지원이 있는데, 하나는 토네이도고 또 하나가 썬더, 즉 번개다. 대충 계산하면 태풍 두 개만 잡아도 전 인류가 필요한 에너지원이 나온다고 하거나, 대형 번개 몇 개만 잡아도...
 
이 번개를 영화 <캐산>에서는 에너지원으로 가지고 온다.
 
영화 내내, 도저히 미학적으로 참을 수가 없었던, 왜 캐산은 헬멧을 안 써? 원래 유니폼을 만들 때 헬멧도 같이 만들어줬는데,서는 급히 도망 나오느라 이 헬멧을 미처 쓸 시간이 없어서, 만화와 달리 영화에서는 캐산이 맨 대가리로 뛰어다니고, 날라다닌다.
 
태양광을 비롯한 대체에너지는 늘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가? 일본 내에서는 그렇지 않다. 어차피 무기공학의 일부분일 뿐이다. 지금도 무인 감시용 로봇 - 우리나라에는 신호등 - 같은 것들이 태양광으로 가는데, 자주 태양광 설비, 즉 외부에서 도와주지 않아도 가는 군설비는 굳이 만화작가들이 나서서 칭송하지 않아도 무기설비들과 결합되는 방향으로 간다.
 
일본 내부에서 어떤 논쟁이 있었는지 몰라도, 캐산은 태양광의 꿈의 시대를 상징하는 이 캐시킷을 한 번도 쓰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늘을 날 때 쓰는 추진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와? 아무 데서도 안 나와... 영화에서는 비행하다가 추진력이 떨어져서 결국 마지막 전투신에서  떨어져버린다.
 
그야말로 최첨단 그래픽에다가 영화 전체는 일본의 전작 대형만화들에 대한 조롱으로 가득차 있다.
 
(주유소에 가서 주유하고 가면 안돼? 바보 아냐? 석유는 이제 없는 시대가 시대배경 아냐? 이런 것이 일본 미래 만화들의 출발점이다.)
 
3.

그러나 영화는 재미가 하나도 없다.
 
일본에서 그걸 염두에 두고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신조세포를 만드는 황우석이 주인공이고, 그 세포를 받아서 공화국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나이 먹은 수상이 노무현이고... 이렇게 보는 것이 그나마 이 지루한 조롱을 끝까지 참고 보는 한 가지 방식이다.
 
그러면 노무현 아들은 누구고, 캐산은 누구야? 대충 영화의 노무현 아들은 유시민이나 정동영 정도 되고, 캐산은... 강양구 정도 되나?
 
에너지와 바이오 기술에 대한 오래된 일본 내에서의 논쟁을 한 배경으로 하고, 영화의 진짜 플롯은 왜 일본의 지도자들은 영감쟁이만 되면 젊었을 때의 그 창창하던 평화에 대한 열광을 다 잊어버리고 똑같아 지는가? 뭐, 그런 현재 진행형인 지문을 담고 있다.
 
그래서 영화 후반부로 오면 TV용 에반게리온의 그 난감하던 사이코 세라피신이 다시 이어진다 (이 세라피신은 몇 년 전 아톰에 대한 오마쥬로 만들어진 <메트로폴리스>에서도 다시 반복된다. 나는 누구야? 아나따와 난데스까?)

캐산에서의 질문은 조금 다르다. 왜 너와 나는 싸워야 하지?
 
혹시 영화의 복잡한 플롯과 만개한 그래픽에 사람들이 미처 따라오지 못했을까봐, 아주 또박또박, 그리고 잊어버리지 않도록 강조해서 알려준다.

"굳이 괴롭히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에게 피해를 줘."
 
이 문장이 영화 <캐산>의 주제 문장인 셈이다. 난 널 괴롭힌 적이 없잖아. 아니, 네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난 괴로워. 우린 모두 그런 존재야. 그래서 난 널 없애야 해.
 
이게 전쟁이다.
 
영화 내에서 가슴찡한 감동은 아니지만, 그래서 영화가 제시하는 단어는 딱 하나로 요약된다. "공존"...
 
그래서 공존하는 법에 대해서 생각해보자가 이 재미 하나없는 영화가 최첨단 CG를 동원해 하고 싶은 말이기는 하다.
 
태양광이니 원자력이니 하는 에너지 판타지에 숨어 있는 전쟁 욕구는 그만 버리고, 그야말로 가늘고 길게, 같이 살아갈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자구...
 
(보너스로 신조세포가 스스로 결합해서 신조인간이 태어났다는 얘기는, 다 뻥이야... 보스 신조인간에게 수상 아들이 하는 말이다. 신조세포로 뭘 만들었다구 하는 거, 다 뻥이야...)
 
4.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난 영화는 한국 영화는 두 가지 있기는 한데, 두 개 다 끔찍하게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하나는 좀 낫고, 또 하나는 더 형편없다.
 
그래도 캐산보다는 재밌다... 21세 이후에 만들어진 상연작이 캐산만큼 재미없기는 쉽지 않다. 아마 참고 끝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일본에서는 연장상영까지 될 정도로 흥행작이고, 그 해 최고의 문제작 중에 하나였다. 실사와 결합한 에니매이션으로서는 새로운 기법들이 많이 소개되었다고는 하지만, 난 그림은 잘 모른다.
 
우리나라 애니매이션은 대개는 '천사표'인데, 너무 뻔한 메시지를 아주 공들인 그림에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캐산은, 너무 뻔한 반전이라는 질문에 담아서 일본 영화사 자체에서 전작의 감독들에게 "엿 먹어"라는 메시지를 담았던 것처럼, 이넘의 늙탱이들, 어쩌면 그렇게 30년대 늙탱이들하고 똑같냐!
 
이 질문이 일본에서는 분명히 맥락이 있는 질문인데, 우리나라로 넘어오면 맥락이 없어져버린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지루하고 참을 수 없이 괴로운 영화가 되는데, 일본으로 돌아가면, 할아버지들, 제발 우리에게 권력을 넘겨주쇼.
 
영화의 마지막은 서글프다. 수상 아들의 쿠테타는 실패로 끝이 났고, 다시 수상이 말한다. "네가 돌아올 자리는 없어." 물론 아들은 당당하게 "돌아갈 생각 없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전투신은 돌아갈 곳도, 더 이상 살아갈 이유도 잃은 시대의 모순이 터져나온 20대들이 한 자리에서 그저 박터지게 싸우면서, "이게 바로 오늘, 일본의 모습이야..." 이렇게 외치는 셈이다.
 
참 슬픈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죽음은 의미가 없고, 다만 질문만이 남는다. 다들 왜 내가 이러구 사나, 내가 원하는 것은 뭔가...
 
(이런 점에서 영화 <캐산>은 70년대 에니메이션 전성 시대의 프랑스 애니메이션에 더 가깝고, 일본식 공각기동대에 대한 혐오도 담고 있다... well-made? 남의 손에 놀아나면 행복하냐?)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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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5/18 [11:5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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