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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탄압을 당해도 모른채 하다니 ...
[바라의 장애없는 세상] 장애인의 강제연행 다루지 않은 몇몇 언론사들
 
이훈희   기사입력  2006/09/06 [00:30]
참 어이가 없다. 지난 8월 31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중증 장애인과 장애인 부모 등 92명과 취재기자 2명까지 무려 94명을 강제연행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던 것. 그럼에도 몇몇 장애인 신문은 입을 다물었다.

전날 경찰은 정부종합청사 앞에서의 집회를 불허했다. 그러나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단의 장애인들은 기어코 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자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활동보조서비스에 배정된 예산은 총 105억에 불과했던 것. 이걸로는 자립생활이 불가능했다. 정부가 시혜를 베풀겠다는 저소득 전체 중증 장애인에게도 이 금액으로는 하루 30분의 활동보조비에 불과하기에. 군대가 아닌 이상 30분 안에 활동보조인의 도움으로 밥을 먹으라는 주장밖에 되지 않는 셈. 누군들 화가 나지 않겠는가.

  ©김오달

불법 과잉 폭력을 행사한 경찰

장애인들은 청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겠다고 작정했다. 텐트를 가져왔고 또 텐트를 치기까지 했다. 그러자 경찰은 아주 발빠르게 '이건 위법 행위'라고 경고 방송하면서 참가자 94명 전체를 연행했다.
 
이중에는 활동보조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중증 장애인의 이동을 돕기 위해 곁에 있던 사람조차 끌고 가버린 것.

연행된 장애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경찰은 미란다 고지조차 하지 않았다. 미란다 고지는 그저 확성기로 외친다고 성립되는 게 아닌 것. 사법 경찰관이 연행자 일일이 고지를 해야 성립이 된다, 하지만 경찰은 무사안일주의(설마 장애인들이 법을 알겠냐는 심보). 불행히도 장애인들조차 이 사실을 몰랐다.

자신들이 집시법을 어겼으니 강제연행되는 게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 어이없는 일이지만 경찰의 직무태만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다. (경직법 제 10항의 2 항 등) 나아가 신체의 일부인 휠체어로부터 강제로 분리되어 각 경찰서로 강제연행되었다.

굳이 과잉 공권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강제 연행을 한 것 역시 경찰의 위법 행위였다. 이를 '불법 과잉 폭력'이라고 한다. 이 와중 많은 장애인들이 경찰의 폭력에 발버둥을 쳤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다.

이것은 형법 제 21조 정당방위법에 행당하며, 만약 상해를 입었다면 해당 경찰의 신분을 확인하여 형사 고발까지 할 수 있는 사항. 나아가 취재 중인 기자까지 연행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국민의 알 권리 방해'에 해당했다.

▲ 현수막을 빼앗아가려는 구청직원과 이를 막으려는 성람투쟁단 사이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경찰은 보고만 있었다.     ©김오달

희한하다. 언론사의 침묵이 ...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사회의 공기'이자 '장애인의 권리'를 주장하던 일부 장애인 신문 기자들은 어디에 있었냐는 것. 미처 그 자리에 있지 못했던 나로서는 어떤 신문사에서 왔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연행된 언론사 기자를 제외하고 이 사건 이후 인권 탄압이라면서 기사화시킨 언론사가 몇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특히, 장애인계 신문사에서는 그 양상이 더욱 분명히 드러났다. 예컨대, 장애인에게 알려진 인터넷 신문인 에이블 뉴스는 사건을 다루지도 않았으며, 이후 연행된 장애인들이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내며 집회를 가진 것조차 기사화하지 않았다. 단, CBS 사회부에서 짧게 연행 사건을 다룬 것과 민주노동당의 성명서를 간단하게 올린 것에 불과. 물론, 에이블 뉴스만이 아니다.

참 희한했다. 왜 그랬을까. 이날 강제연행(불법 연행되었다는 뜻)된 장애인들은 모진 수모를 당했다. 함께 연행된 장애인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은 장애인 화장실에도 가지 못한 채 소변을 참고 있어야 했고, 언어 장애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수사관들은 자기 마음대로 진술서를 꾸몄다. 나아가 신상정보를 알려주면 지문 날인을 하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로 간주되어 지문날인까지 당해야 했다.

게다가 언어전달과 활동에 필요한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이 모든 게 다 경찰의 위법 행위였다. 법률 조항을 일일히 다 써야 위법인줄 알겠는가? 누가봐도 기사화가 될 필요가 이 사실들. 그러나 유독 장애인계 신문에선 무시되었다. 직접 기사를 취재한 위드 뉴스 등을 제외하곤.

편 가르기 하지 말라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기자의 수도 별로 없고, 취재할 건 많고, 이렇다보니 능력이 안 되어서 취재를 못할 수 있다고. 게다가 연행된 장애인들이 경황이 없어 보도자료 하나 내지 못한 채 또다시 인권위원회에 찾아갔다고 볼 수 있다.보도자료를 못 받았다면, 모를 수도. 나조차 8개월된 아기를 보느랴 취재는 커녕 그 시간 아기를 안고 달래면서 연행되었다가 풀려난 장애인들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벅찼다.

바쁜 거야 누구나 다를 거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왜 관심을 갖지 않는가. 과천 종합청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장애인들은 취재하면서, 광화문 종합청사 앞에서 집회하다가 강제 연행된 장애인들을 취재하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뭔가? 장애인 신문에도 '편 가르기'한다는 느낌이 확 들었던 건 제발 우연이 아니길.

누구, 누구의 편이란 건 굉장히 웃긴 발상이며, 장애인계에서 이러한 분리는 더욱 웃기는 발상이다. 나 역시 이번에 연행된 장애인들의 조직과는 사이가 아주 좋지 않다. 내 기분일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계의 사건이라면 눈을 부를 뜨고 편 가리지 않고 달려가고 있는 게 상황. 부탁하건대, 기자는 기자의 소명을 다하길 바란다.

기자로 죽어도 상관없다면 기자로서 살아야 하지 않는가. 앞서 특정 신문사 이름을 열거한 까닭은 그 신문사에 감정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더 잘 하라고 하는 의미다. 잘못하면 지적할 수 있지 않는가. 동료이자 독자로서.

더욱 열심히 취재해달라

장애인들은 계속 싸울 수밖에 없다. 그건 운명이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든,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든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성과. 이번에 구속될 각오를 하고 소위 불법 집회를 한 장애인들은 진정성과 열정을 갖고 있다. 언론사로서는 당연히 관심을 갖고 취재해야 할 부분.

나는 인터넷 신문 대자보의 기자로서 언제나 함께 할 것이다. 월급은 처음부터 원치 않은 명예직 기자다. 그렇다면, 월급을 받는 장애인계 신문사의 기자들은 더 열심히 취재를 해야 한다는 결론밖에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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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9/06 [00:3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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