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방황
난 서른세살 때 제일 괴로웠다. 매일매일 자살의 충동과 싸우느라고 모든 것을 소진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서른 세살 때 괴로웠을까? 그 때가 더 이상 내가 시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던 시기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강사생활을 포기하고 현대에 취직하는 순간부터 시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너무너무 괴로웠는데, 강사시절까지 습작처럼 써내려가지던 시가 문득 10년 전 연봉 4,100만원에 고용계약서를 쓰고 난 이후로 거짓말처럼 시가 써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는 시를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에너지관리공단에 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이직을 한 이후의 일이다. 공단에서 하는 일은 나름대로 보람도 있었고, 현대 시절만큼 마음이 부대끼지는 않았지만, 시가 써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이를 먹어도 시를 쓸 수 없고, 시인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안 다음부터 나의 절망이 시작되었다. 절망은 또 다른 절망을 만들고, 20대 박사와 정부기관 최연소 부장이고, UN의 젊은 개혁파 분과의장이라는 잔뜩 어깨에 달아놓고 있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장식들은 당시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매일 아침 오늘도 또 의미 없는 하루를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답을 할 수가 없었고, 알콜중독과 자살 사이의 위태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당시에도 여러 개의 책을 습작처럼 쓰고 있었지만, 에디터들이나 출판사장들의 완곡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내 책'은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매년 세 권 정도의 책을 쓰고, 버리는 일들을 10년을 한 셈이다. 그 서른 세살의 나를 구원해준 단어는 "대기만성"이라는 말이었다. 천천히 살기, 천천히 하기, 조바심내지 않기와 같은 "느림"에 관한 길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나는 천천히 자살의 충동으로부터 벗어났다. 서른 셋, 더 이상 시인이 되고 싶은 문학소년의 꿈은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듯이 빠져나갔지만, 나는 조금 더 생활인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나이 50에 '진실'을 찾는 것으로 나의 인생설계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나의 나이도 마흔, 아직도 10년이 남아있고, 10년 간은 더 학문적 방황과 답을 찾기 위한 오류를 시도할 수 있다. 나의 길은 대기만성의 길이다. 성공의 길과 행복의 길을 접고 진리라는 것을 삶을 걸고 찾아보기로 생각한 다음부터 나는 조금 행복해졌다. 그리고 비로소 나 외에 다른 사람은 다 나쁘다고 생각한 나의 이상한 소년 시절을 마감한 것 같다. 2. 방정환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내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소파 방정환 선생이다. 그도 많은 방황을 하고, 동화구연이라는 길을 열었고, 색동회를 만들었고, 아이들을 '어린이'라고 부를 수 있게 새로운 말을 만들어주고 가셨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이룬 셈이고, 많은 천재들이 그렇듯이 서른 세살의 나이에 우리를 떠나갔다. 방정환이 천재라서 20대에 움직인 것일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굳이 나같은 둔치와 방정환의 차이점이라면 세상에 대한 사랑의 크기 차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말은 20대의 방황이라고 했지만, 아무리 돌아보아도 나의 20대는 살아남고 죽지 않기 위한 몸부림 밖에는 없다. 나는 방정환 선생만큼 세상을 사랑한 적이 없다. 3.
우리나라 근대사를 가장 간단하게 살펴보면,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이 살아야 한다는 이름으로 무엇인가 열심히 했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건국기를 맞게 된다. 나는 이 사람들을 1세대라고 부른다. 이오덕 선생과 같은 분들이 이 1세대에 속하는데, 좌파이든 우파이든, 이 시기에는 정말이지 "새로운 나라를 만든다"는 꿈이 있었던 것 같다. 한 번도 정리되지 않은 우리말 문법이라는 것을 만들고, 사전을 만들고, 말꼴을 만들어내던 이 시기의 1세대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것처럼 사회 전분야에 새로운 나라를 만든다는 꿈이 있었다. 좋은 놈이든, 나쁜 놈이든, 이 1세대들은 열심히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 1세대들이 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면서 대부분 돌아가셨다. 2세대가 등장했을까? 불행히도 이 땅에는 2세대가 등장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시스템에 새로운 희망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80년대에 등장했다고 주장하는 민주주의 세대는 1세대와 비교하기에는 너무 일찍 부패해버렸고, 또 무능했다.
지금의 우파들은 게으르고 파렴치하다. 논문도 슬쩍슬쩍 베끼고, 일반적인 우파들이 가지고 있는 심미적인 추구는 물론 독창성도 없다. 가끔 전형적인 우파학자들을 만나서 "요즘 공부 좀 하십니까?"라고 물어보면, 새삼 왜 그런 얘기를 해서 날 곤란하게 만드냐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열심히 살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우파를 만나기가 어렵다. 기 소르망은 전형적인 우파학자이다. 그래도 독서와 사색의 크기만큼은 인정해주지 않을 수 없다. 기 소르망 정도로 열심히 독서하고 정리하는 우파 인사가 있다면 인정해주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지금 활동하는 우파들은 지나치게 게으르고, 베끼기를 즐겨하고, 우파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고독한 질문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황우석? 학자로서의 그의 문제는 게을렀던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지금의 좌파들은 무능력하다. 그래서 우기기를 즐겨한다. 일제시대와 해방기에 활동했던 우리나라의 좌파지식인들은 '고독한 학'처럼 우아했다. 지금 고독하면서도 우아한 좌파 지식인이 있을까? 난 견문이 짧아서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좌파든 우파든 때로 몰려다니면서 별 얘기도 없는 말을 하면서 서로 감격하면서 박수치고 우쭐해 어쩔 줄을 모르는 것 같다. 자기들끼리 추천하면서 감격해하지만, 그들의 글과 책은 전혀 감격스럽지 않다. 한바퀴 생각이 머리 속에서 돌아가는 일정한 반열에 올라간 사람은 좌파에도 우파에도 없는 것 같다 (물론 나도 속이 딱 막힌 바보같은 말만 해대고는 한다). 한 마디로 믿고 존경할만한 '어른'이 없는 세대를 우리는 사는 셈이다. 이정표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지만, 농촌에 지혜로운 촌로들이 사라지고, 공동체의 주춧돌이 사라진 것처럼, 학계에도 그런 어른이 없고, 이 사회 어느 구석에도 어른은 없어 보인다. 좌파에도, 우파에도, 그런 어른은 없는 것 같다.
지금의 30대 후반부터 50대까지, 앞으로 10년 내에 어른이 될 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침묵의 관찰자 일부와 언제든지 광란의 선동자가 될만한 사람들은 있지만, 1세대가 사라진 이후에 어른이 될만한 분은 어지간해서 보이지 않는다.
4. 20대여, 글을 쓰고, 책을 내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선각자들은 20대에 자신의 논을 내었고, 자신의 첫 주장을 냈다. 어떤 면에서 한 명의 사상가나 철학자는 혼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같이 만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누가 이 시대의 어른이 될 것인가 그리고 누가 시대를 이끌어갈 것인가는 개인에 관한 문제라기 보다는 "어두운 시대에 누가 불을 밝힐 것인가"의 문제이며, 이 불은 한 사회가 같이 밝혀나가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하다못해 이어령도 20대에 선배 문학자들을 비판하면서 등장했고, 시인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다 20대에는 무엇인가 논을 제시하면서 등장하였다.
20대라는 나이는 "다 틀렸어!"라고 객기를 부려도 좋고, 대안이 없어도 좋을 나이이다. 대안? 나중에 보여줄께라고 객기로 치고 나가도 좋은 나이이다. 어느 누가 20대의 작가에게 '사려깊지 못함'이라고 비판하겠는가! 그 나이의 그 시절에는 그런 질문이 필요한 시기이다. 20대 작가에게 상업성과 기획력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질문 그리고 다음 세대의 시각을 기대하는 것이다.
나는 더 많은 20대들이 글을 쓰고, 책을 내기를 바란다. 그건 좌파이든 우파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돈독에 찌든 일부를 제외한다면, 언제나 다음 세대의 질문은 신선하고, 이런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게 될 때 비로소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런게 "협력진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우파가 별 거 없기 때문에 좌파도 무식해진 것이고, 좌파들의 질문이 날카롭지 않기 때문에 우파들도 게으른 우파가 된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위기가 아닐까? 이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어떤 이유로든, 혹은 어떤 목적으로든 더 많은 20대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책을 내고, 서로 반박가능한 형태로 논쟁하는 것이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20대에 책을 내고 데뷔할 수 있게 되기를 나는 희망한다. 설령 덜 다듬어져 있고,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어떠냐! 원래 20대의 특권이 그런데 말이다.
만약 소망한다면 지금 인터넷에서 A4 한 장짜리 글을 쓰는 이들이, A4 100장으로 자신의 생각과 시각을 정리할 수 있고, 비록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이들이 작가로 물결처럼 데뷔하는 일이 벌어지기를 바란다. 나와 같이 4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책을 출간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생겨난 대기만성의 길을 모두가 걸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올해로 박사학위를 받은지 11년째이다. 모든 사람이 학문의 길을 걸을 필요가 없고, 모두가 박사가 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모두가 학자의 입장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상가와 행동가의 길을 걷거나 사색자의 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은 20대를 넘기지 않고 자신의 첫 책을 줄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좌파이든 우파이든, 그런 건 상관없다. 비록 나중에 부끄러움에 뼈를 깍는 듯한 고통을 받을지 몰라도 생각을 정리하고 그걸 사회에 내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20대가 더 많아지면, 그것이 비로소 우리 사회의 새로운 희망일 것 같다. "자신의 모자람과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어 남들이 알게 함"이라는 부끄러움을 통해서 한 세대가, 그리고 한 시대가 협력진화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5. 20대가 얼마남지 않은 사람들이여, 부디 용기를 내시기 바란다 자신이 27이나 28의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20대에 작가로 혹은 사상가로 데뷔할 수 있는 인생의 단 한 번의 기회가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이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명석함과 함께 부끄러움까지 모두 사회에 꺼내놓는데 머뭇거리지 말라는 말을 건네주고 싶다. 한 청년의 방황과 갈등 그것은 모두 사회의 것이다. 마지막 밑천까지 탈탈 털어낸 알몸의 모습으로 사회 앞에 홀로 서 있는 20대가 많아질 때 이 사회는 비로소 좋은 방향으로의 진화를 시작할 것 같다는 것이 내 개인적 믿음이며 바램이다. 실패! 어느 작가도, 그리고 어느 사상가도 자신의 첫 번째 책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혹은 한 번에 성공하는 일은 없다. 설득력 있는 생각을 가지게 될 때까지 10년을 쓰게될지 혹은 평생을 쓰개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인류 역사가 원래 그렇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1만명의 20대 작가가 자신들의 생각과 삶을 책으로 엮어내게 된다면, 예비철학자 혹은 예비 사상가 1만명이 나이를 먹고, 생각이 굴절되면서도 진화하는 과정을 이 사회가 같이 볼 수 있게 된다. 생활인은 직업으로 완성될지 모르지만 사상가는 책으로 완성된다. 동시대인들과 함께 1만명의 20대가 한 명씩 나이를 먹어가고 생각이 변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완성되는 과정을 같이 보고 싶다. 지금 책으로 데뷔하는 20대가 10만명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정말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 10만명의 젊은 사상가들이 서로 논쟁하고, 사회가 그걸 지켜보는 상황은 가히 학문의 백가쟁명 시대라고 할 수 있다. A4 한 장짜리 글을 쓰면서 '인터넷 논객'이라는 호칭을 받는 것이 행복하신가? A4 100장으로 글을 쓰는 것을 우리는 책이라고 부른다. 치고 빠지는 단타 전문으로 지금의 20대를 활용하는 지금의 세태는 잘못되었다. 더 진지하고 더 길게 한바퀴를 돌리는 훈련을 받고 스스로를 단련시킬 수 있도록 30대와 40대가 도와야 한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20대 작가 기금'이라도 만들어서 발간을 돕고, 격려해야 한다. 말도 아닌 인터넷 논쟁에 댓글이나 달고 있으면서 사상가나 철학자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젊은 작가들이 더 많이 필요하고, 이 사회가 해야할 일은 이들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일이다. 30대가 되는 것이 무서운 많은 인문학도와 과학도, 이들에게 자신의 말을 책으로 엮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져야 하고, 이들의 미숙함을 꼬집는 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격려하고 글을 쓸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길'이 열린다. 20대 후반의 방황하는 많은 젊은이들이여! 그 고민을 책에 담고, 책이라는 형태로 사회에 꺼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시장은 당신들을 환영하지 않을지 몰라도, 한국의 사상과 문화는 지금 20대 작가들을 목놓아 찾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 20대의 기자들과 학도들 그리고 자신의 철학을 만들고 싶어서 오늘도 고통으로 점철된 하루를 보낸 이들이여. 제발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첫 책을 위해서 고민을 시작하시기 바란다. 당신들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시스템의 생존과 진화를 위해서 새로운 고민의 물결이 우리에게는 절실히 필요하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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