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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경의 폭력보다 친미극우세력에 더 절망한다
[논단] 숭미, 반북 프레임에 갖힌 대한민국, 숭미반북 허구성 무너뜨려야
 
이태경   기사입력  2006/05/11 [14:57]
평택 대추리에서 벌어진 유혈참극을 보면서 드는 느낌 중 단연 으뜸인 것은 ‘공포’였다. 시위대의 10배가 넘는 군경이 벌판을 새까맣게 덮으면서 달려드는 장면부터 시작된 공포는 경찰이 시위대를 초주검으로 만들면서 절정에 다다랐다. 
 
그러나 진정 우리들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든 것은, 경찰의 잔혹한 진압방식이나 광주민중항쟁 이후 최초라는 민(民)과 군(軍)의 충돌이 아니라 이른바 ‘평택사태’를 바라보는 상당수 누리꾼들의 인식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각종 포털이나 인터넷 매체에 실린 ‘평택사태’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살기등등하기 짝이 없다. 범대위와 대추리 주민들에 대한 증오로 무장한 채 정부에 단호한 조치-심지어 일부 누리꾼들은 ‘발포하라’는 극언을 하고 있다-를 요구하는 댓글을 쓴 이들은 대체로 범대위를 친북반미세력으로, 대추리 주민들을 토지보상을 더 받으려는 파렴치한으로 규정하며, 적법한(?) 공권력 행사를 방해하는 자들에 대해 가차 없는 응징을 요구한다.
 
이들은 ‘평택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북한에 대한 전쟁억지력을 위해서라는데 왜 휴전선 근방이 아닌 평택에 대규모 미군기지가 들어서는지, 정작 주한미군은 줄어드는데 당초보다 훨씬 넓은 부지가 필요한 까닭은 무엇인지 등과 같은 기본적인 물음조차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적화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행동은 전부 친북, 반미주의에 물든 때문이고, 이는 국기를 위협하는 범죄이므로 엄단해야 한다는 논리만이 이들의 두뇌 속에서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민주정부 하에서 자행되는 야만적 국가폭력도, 대추리 주민들의 절규와 눈물도, 장차 평택이 미국과 중국사이의 무력충돌의 장(場)이 될 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이들의 안중에는 없다. 이들의 시야에는 오직 반미꾼들에게 매 맞는 군경들의 모습과 동요하는 한미동맹만이 들어올 따름이다. 
 
평택사태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함의는 다양하지만 상당수의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여전히 숭미(崇美), 반북(反北) 프레임에 포획되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되었다는 점은 흔히 간과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범대위와 대추리 주민들에 대해 쏟아내는 섬뜩한 증오와 저주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중요한 기제가 바로 이 ‘친미, 반북 프레임’이다.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그의 저서〈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두고두고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진실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그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프레임에 부합해야 합니다. 만약 진실이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프레임은 남고 진실은 버려집니다."
 
숭미, 반북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은 위에서 조지 레이코프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프레임과 충돌되는 사실은 배척하며 자신의 프레임과 부합하는 사실들만 흡수한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사실조차도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프레임에 맞지 않으면 기각당하는 것이다. 
 
이미 숭미, 반북 프레임의 지배를 받고 있는-물론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더딜 뿐만 아니라 노력에 비해 성과도 적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한 뼘이라도 나아지기를 원한다면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숭미, 반북 프레임의 허구성을 효과적으로 폭로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프레임을 새로운 언어로 구성하는 작업은 그래서 시급하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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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5/11 [14:5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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