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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도 '대한민국' 외치게 하는 기업의 오만
[비나리의 초록공명] 패자를 허용하지 않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시스템
 
우석훈   기사입력  2006/02/21 [12:15]
최근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
 
1.

A씨는 신체 멀쩡하고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20대 후반의 여성이다. A씨는 꽤 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데, 증상이 잘 호전되지를 않는다. A씨가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된 것은 10대 중반부터 시작된 다이어트 때문이다. 정상인보다 날씬한 체형의 A씨는 다이어트가 성과가 있을 때에는 연애도 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만 약간이라도 몸무게가 불어난 조짐이 보이면 생활을 전폐하고 심한 우울증 증세를 겪게 된다. 미인이지만 지금은 사회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얼마 전에 자살을 시도한 다음에는 증세가 더 악화되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딱하게 생각하지만 현재로서는 특별한 대책이 없다.
 
2. 

B씨는 음악과 미술에 재능을 가지고 있고 공부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는 지방대 출신이고, 한 때는 밴드의 기타리스트를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다. 큰 회사 영업사원이 된 B씨의 삶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였는데, 이 B씨의 삶은 어느 종교단체에 의해서 출발부터 뒤틀려 있었다. B씨의 종교가입은 군입대 이전이었는데, 군대에서 정신질환으로 제대를 하였다. 회사생활에서 그의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은 종교단체로 송금되고 있었고, 얼마 전부터 사회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정신질환이 심해지고 환각을 보기 시작해서 가족들이 정신병원에 치료를 의뢰하면서 B씨의 어려웠던 10대의 삶에 대해서 식구들이 알게 되었다.
 
B씨는 입원치료를 거부하고 있는 중인데, 병원 측에서는 약물치료로 고칠 수 있다고 식구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착란과 헛소리를 할 정도로 증세가 심각해진 B씨는 입원치료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B씨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영업실적이 좋아 전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였다고 한다. B씨와 같은 경우가 많고, 정신과에서는 특별히 이러한 종류의 치료를 잘 하는 의사들이 있기 때문에 믿고 입원치료를 시키라고 권고하고 있다.
 
3. 

앞의 두 가지 정신질환의 경우를 보면서 “사회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야말로 그깟 다이어트가 뭔데 사람이 이 지경이 될 정도로 정신적 에너지가 투사되는 것이 가능할까? 외모에 대해서 사회가 던지는 압박감이 이제는 도가 넘어도 지나치게 넘은 것 같다. 그러니 성형수술이라도 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는 사람한테 뭐라고 할 수가 없다. “당당하게 살고 싶어요”라는 말 앞에 무슨 토를 또 달수가 있으랴!
 
미의 기준도 시대에 따라 바뀌고 미에 대한 관념과 대하는 방법도 전부 바뀌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부분의 시대가 전부 미인과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한 “반대의 힘”이 급격하게 사라졌다는 점일 것 같다. “예쁘면 고맙지, 뭐”라는 광고가 있었다. “고맙긴 뭐가 고맙냐!”라는 말이 이제 어디 서 있을 공간이 있을까?
 
10대들의 삶을 생각해보면, 한 쪽에서는 예뻐야 한다는 힘으로 내리 누르고 있고, 또 한 쪽에서는 실력 없으면 죽는다는 힘이 내리누르고 있다.
 
괜찮다고 해봐야 그야말로 “꼰대”가 괜히 심심해서 해보는 말이겠지 아무런 설득력을 가질 수 없을 것 같다. 그야말로 60년대 장 보드리아르가 “상징적 자본”이라는 은유로 비꼬던 바로 그 프랑스 사회의 조금 더 야만적인 모습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 아닐까? 차라리 사람을 베니스 상인처럼 근으로 세어서 돈으로 계산하면 조금 더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외모까지 다 끼어서 계산을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까 그야말로 꾸미기라도 하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서 있을 공간이 별로 없다. 이런 빈 공간을 사이비종교와 다단계 판매망이 치고 들어오지만, 이 길이든 저 길이든 그야말로 인생 파탄인 것은 마찬가지인 셈이다.
 
4. 매스와 공허

우리나라라고 해서 개인들이 무슨 욕망이 특별히 따로 있겠는가? 유럽의 여러 대학에서 수업도 듣고 강의를 해봐도 여학생들이 화장을 하는 나라는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밖에 못 봤다. 중국의 경우는 칭화대학교 밖에 못 가봤는데, 중국의 경우도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개인이야 다를 이유가 별로 없지만 전체적으로 만들어내는 문화의 패턴은 좀 많이 다른 것 같다.
 
사람들이 더 공해해서일까 아니면 자본이 더 악랄해서일까? 얼마 전부터 난 자본이니 시스템이니 하는 구조적 요소보다는 개인들에게서 조금 더 문제를 찾아볼려고 하는 경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중학교, 고등학교 6년간 마음을 다치지 않고, 심경이 망가지지 않고 통과할 수 있을까? 그 나이에는 어쩔 수 없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제도를 통과하는 길 밖에 없고, 이보다 어른들한테는 결국 자기가 선택한 인생이라고 할텐데, 그 이전의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선택도 없는 것 같아 자꾸 마음이 가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사실상 거의 없다. 
 
▲탯줄도 안짜른 갓난아이도 '아~ 대한민국!'을 외치게 하겠다는 기업의 오만함을 시민과 학생들은 알고 있을까?     © KTF 광고
갓난아이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이 아이가 언젠가 대한민국을 외칠 것이라고 하는 이미지 광고가 있다.
 
섬뜩하다. 그게 기업이 아이를 들여다보는 눈이고, 이 사회가 아이를 쳐다보는 시각이고, 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인적자원부가 갓 태어난 한 아이를 인식하는 방법일까? 저 아이도 자라나면 대한민국을 외치게 된다는 기업이 이 당당한 자신감,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답은 뻔하다.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대한민국을 외치고 싶어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기대고 어떻게든 살아가고 하고 싶어하고, 스스로를 그 구호 속에서 잠시 눕혀놓고 쉽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다가도 문득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게 된다.
 
이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은 패자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들이 몇 살에 깨닫게 될까?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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