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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왜 퀴리부인이 나올수 없나?
[비나리의 초록공명] 쮜리히 공과대학과 퀴리부인 대학, 그리고 특목고
 
우석훈   기사입력  2006/02/15 [13:39]
최근에 생긴 몇 가지 일들로 인해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서 조금 깊게 생각해 볼 일이 생겼다. 순서대로 잠깐 생각을 해보자. 연세대학교에서 등록금을 대폭 올리면서 “교육행정과 예산”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간여할 바가 아니라는 어느 보직교수님의 말씀이 있었다. 우리나라 대학의 많은 훌륭하신 교수님들은 미국의 2,000~3,000만원쯤 하는 대학의 등록금에 비해서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이 너무 싸기 때문에 교육의 질이 나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좋은 대학이 못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경향을 조금은 가지고 계신 것 같다. 이상하게 생각되지는 않는다. 대부분 그런 곳에서 공부하셨기 때문이다.
 
1. 유럽의 살인적 등록금은 50만원 수준
 
그 다음에 벌어진 사건은 아주 가까운 지인이 스위스의 쮜리히 공과대학으로 유학을 준비하는 일이 있어서 등록금을 알아봤는데 한 학기에 50만원이나 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새 그렇게 올랐느냐고 놀라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15년 전의 일이지만 처음 파리 국립대학에 대학원 입학금을 낼 때 6만원을 냈던 기억이다. 그 6만원에는 도서관이용료와 학교 보건서 사용료 그리고 올림픽을 치룬 수영장 등록비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1년 등록금이었는데, 그 등록금이 10만원으로 오를 때 학교에서 “살익적인 등륵금 인상 중단하라!”는 구호를 건 시위가 벌어졌었다.
 
정치적으로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학생회장을 배출하기 위해서 약간은 과장된 시위를 주도하게 되었다는 말을 건너들은 적이 있다. 내가 95년도인가 마지막으로 등록금을 냈을 때의 기억이 14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논문심사비가 포함되어서 조금 비쌌지만 나도 너무 올랐다고 투덜거린 기억이 난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은 대부분 대학 시스템이 비슷한데, 차이가 있다면 국립대학과 연방대학으로 나뉘어져 있느냐 아니면 그냥 국립대학체계로 되어있느냐의 정도이다. 등록금도 비슷비슷하다.
 
쮜리히 공과대학이 좋은 학교이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좋은 학교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이 배출된 학교이고, 집세가 비싼 걸 제외하면 쮜리히라는 도시 자체가 어느 컨설팅 회사에서 평가하더라도 세계에서 살기가 제일 좋은 도시이다. 학교 안에 들어가면 어디에서든지 앉아서 공부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탁자와 의자가 사방에 놓여 있다. 도서관이 지나치게 분화되어 있어서 나같이 한 자리에서 전부 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불편하지만 전세계의 대체적인 자료는 쮜리히라는 도시에서 구할 수 없는 건 별로 없다.
 
퀴리부인 대학이라는 학교는 파리 6대학의 이름이다. 퀴리부인이 이 학교를 나온 건 아니지만 그녀를 기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학교이고, 공과대학으로는 생물학에 특화한 파스퇴르 연구원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학교이다. 여기도 등록금이 많이 올라서 30만원 가량하는 것 같다.
 
쮜리히 대학이 도대체 뭘 믿고 50만원씩이나 등록금을 올렸는지 좀 알아보니까 박사과정을 완전히 개편해서 코스웍도 없애고 마에스트로 시스템에 의한 2년제로 개편 중인데, 유럽이 EU 통합을 맞아 전부 그 방향으로 바뀌는 중이라고 한다. EU에 가입하지 않는 스위스가 약간 표준형을 일찍 도입한 셈이다. 등록금을 올리는 대신에 박사과정은 대부분 생활비 보조가 나오게 바뀌었다고 한단다. 대학원에서 검증된 학생을 뽑는 대신에 쓸데없는 코스웍과 생활비의 부담을 덜어주고 그 대신 학생수를 대폭 제한하는 것 같다. 그야말로 유럽식 마에스트로 시스템의 복권인 셈이다.
 
수 천만원씩 등록금을 내고 그걸 융자해서 졸업하고 나면 좋은 연봉을 받아서 5년 동안 갚고 시작하는 미국식 시스템과 몇 십만원 정도의 등록금을 받는 대신에 국립대학 체계로 간 유럽 시스템이 사활을 건 한 판 승부를 벌일 모양이다. 유럽 교육과정에도 몇 번의 변화가 있고, 나도 “nouveau doctorat”라고 불리는 코스웍이 따라 붙어 전기박사과 후기박사라고 한국 사람들이 번역하는 신박사 체계라는 새로운 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최근의 변화는 박사 시스템의 골격을 흔드는 엄청난 변화이다.
 
물론 아인슈타인을 배출한 쮜리히 공과대학이나 퀴리부인 대학 혹은 베릴린 공과대학 같은 데가 MIT만큼 좋으냐고 물어보면 내가 읽는 논문들의 수준으로는 MIT에서 나오는 논문들이 더 수준 높아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한 사회가 어떻게 대학체계를 진화시키는 것이 좋으냐고 물어보면 학생 입장에서는 당연히 유럽 시스템이 낫지 않을까? 등록금을 더 많이 받는 대신에 허울만 좋은 장학생을 늘리는 것보다는 등록금 자체를 몇 십만원 수준에서 처리할 수 있는 유럽체계가 훨씬 좋을 것 같다.
 
2. 초등학교부터 시작된 특목고 경쟁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수학경시대회용 문제집을 풀고 있는 걸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한 번도 입상권 비슷한 데도 못 가봤지만 오랫동안 수학경시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학교에서 준비해주는 김밥을 먹는다는 즐거움으로 너무나 어려운 문제를 붙잡고 몇 시간 동안 끙끙거려야 한다는 정도의 기억 밖에는 나에게 남아있지는 않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경시대회에 나왔던 수학 문제는 너무 어려웠고, 다시 풀어보라고 해도 어쩌면 몇 문제 못 풀 것 같다.
 
그런데 이걸 초등학교 5학년생이 과외선생 붙여서 풀고 있는데, 그것도 전라도 어느 구석의 시골도 한참 시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부모는 시골에서 소아과 선생님인데,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단다. 특목고에 가기 위해서는 경시대회 수상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고 그야말로 영재 아닌 영재 교육을 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 사건에는 두 가지 서로 독립된 일이 동시에 개입되어 있다.
 
하나는 지금 읍면리라는 이행정구역명을 가지고 있는 서울 강남구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교육 피라미드”의 맨 하단부터의 붕괴가 심각하게 진행되어 이제는 지방 중소도시의 공교육까지도 붕괴 직전에 처하게 된 것이 하나의 일이다. 90년대 후반부터 학교에 경쟁력 논리를 도입한 이후에 분교를 하나씩 정리하고 폐교로 만들면서 조금 더 큰 본교에 학생을 다 모았었다. 농촌 붕괴와 학교 철수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행된 이 사건의 결론이 “본교”에 모으면 더 경쟁력 있는 학교가 된다는 것이었다. 현재는 이렇게 모아진 본교들마저도 폐교가 될 위기에 처해져 있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경제 논리에 밀려 농촌지역에서 이제는 농촌 지역이 아닌 지방소도시의 공교육까지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하나의 흐름은 헌재의 취지대로 공교육을 기반으로 하되 사교육을 통한 교육의 욕구를 국가는 막아서는 안 된다던 몇 년 전의 변화가 이제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처럼 옛말이 되었고, 이제는 사교육이 우리나라 교육의 근간을 형성하고 여기에 진입할 수 없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서 공교육이 아직 껍데기라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냥 내 주위에서 사람들 하는 말만 모아서 계산해보니까 학생 한 명당 한 달에 200만씩 주면서 공부를 시키는데,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반복형 암기 트레이닝을 그 돈을 주고 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무너진 공교육과 지역분산이라는 조건의 최정점에 서 있는 것이 황금 벽돌로 건물을 짓는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특목고이다. 교육예산 전체로 보면 농촌지역과 낙후지역 그리고 가난한 소외 지역에 들어갈 돈을 빼서 특목고 같은 곳에 몰아주고, 그러면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해?”라는 질문에 대해서 정부가 답이라고 낸 것이 서울대 학생들에게 “멘토링”이라는 이름으로 과외 받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교육에 대해서 광적으로 사립 시스템을 발달시킨 것이 영국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대척점에 있는 것이 공민교육을 모든 예능교육까지 확대시킨 독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도 가난한 아이들과 지방에 대해서 지금 우리나라처럼 시스템 바깥으로 내던진 경우는 없다. 글래스고우나 스코틀랜드에도 좋은 대학과 좋은 학교들이 있고, 리즈대학이나 서쎅스 같은 곳들이 런던대학이나 옥스퍼드보다 떨어진다고 할 수가 없을뿐더러, 고등학교의 실업계 교육도 버젓하게 살아있다. 
 
특목고를 보내기 위해서 지방의 초등학교 5학년짜리 학생들에게 수학경시대회 문제를 암기시키는 나라는 21세기에 아무리 찾아봐도 자랑스런 나라 대한민국 밖에는 없을 듯싶다.
 
3. 1만불이 넘어서면 좋아질 줄 알았었다...
 
내가 경제학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가진 기억은 5천불부터 시작된다. 7천불 시절에 박사가 되었고, 8천불 시절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연구원 연봉을 받으면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10년 전의 기억으로 돌아가 보면 1만불만 넘으면 우리나라도 선진국 비슷하게 되고 “압축성장”의 쓰라린 병폐들을 해결하면서 좋은 나라가 될 줄 알았고, 당연히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의 웃기는 줄서기 경쟁 같은 건 상당히 해소될 줄 알았었다.
 
요즘은 아니지만 특수아동 교육에 대한 행정에 약간 관여할 일이 있어서 특수교육 시스템을 지원하기 위한 일을 조금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교육이 아주 이상하다고 지적할 때 나는 호주와 캐나다를 비교한다. 자폐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만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지옥과 같은 일이다. 하긴 멀쩡한 아이들도 다이어트부터 어른이 되면 성형수술을 받겠다고 중학생부터 곗돈을 준비하는 나라에서 조금 다르게 보이는 아이들이 같이 살 수가 있겠는가?
 
자신의 아이가 남들과 조금 다른데, 보이는 것이 다르다고 해서 머리가 이상하거나 마음이 삐뚤어졌을리는 없다. 이런 부모들이 제일 먼저 선택하는 나라가 호주와 캐나다이다. 정상 아이들과 행복하게 학교에 잘 다닐 수 있고, 훌륭하게 자라날 수 있는 나라 중에서 한국에서 쉽게 보낼 수 있는 나라가 호주와 캐나다이다.
 
오천년 역사이고, 인자하고 인사성 바른 동방예의지국이니, 동방의 꿈이니 별 소리를 다 하지만, 초등학교의 문화에 투영된 어른들의 삐뚤어진 마음으로 보면, 그야말로 “원 천만의 말씀을...” 되신다.
 
호주나 캐나다나 전부 생긴지 얼마 안 되는 나라들이고,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별 전통도 없이 가난하고 범법자들이 이민 가서 만든 나라라고 우습게 본다. 그렇게 전통이 깊숙하셔서 약간의 장애라도 있으면 공교육 시스템에 들어올 수 없을 정도의 훌륭하신 왕따 시스템을 운용하고 계시는 것인가? 우리나라 아이들이 못된 것인가? 사회가 못된 것이고, 부모들이 못된 것이고, 아이들은 투명하게 어른들의 못난 점들을 투영하고 있는 셈이다. 호주나 캐나다의 “그들도 우리의 아이들이다”라는 건국 정신도 없고, 유럽의 공교육 정신도 없고, 그렇다고 미국식의 “교육 형평성 이념”도 없는 이 나라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교육 시스템만은 전세계에서 한 번도 구현된 적이 없는 천민 자본주의의 쓰레기통에 불과하다.
 
특목고를 만들자고 해서 내가 그걸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현재의 쓰레기통에서 그래도 돌파구를 찾아보고 싶은 부모들의 갈망이라는 점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자”는 철학으로 자력구제의 방식을 택한다면 모두가 교육비를 위해서 평생을 바쳐야 하고, 그렇다고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 길을 돌파한 소수의 서울대 입학생들에게도 제대로 된 학문의 길이 열려있는 것도 아닌, 이 미친 시스템이 앞으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다고 해도 나아질 길이 없을뿐더러 “10년 전에는 좋았어‘라고 누구나 얘기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교육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나쁜 경우의 길로 진화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4. 소피스트 시대를 넘어, 사랑의 교육을 위하여...
 
역사상 교육열에 가장 높았던 시기는 희랍의 소피스트 시대이다. 웅변술과 대화술 그리고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논리학을 가리키던 사람들이 소피스트이고, 모든 귀족들은 자식들에게 좋은 선생님을 찾아주고, 광장에서 자기 자식이 연설을 잘 해서 대중 정치인이 되기를 바랬다. 소피스트는 우리말로 “궤변론자”라고 번역된다. 노예제 사회에서나 가능할 수 있는 절차 민주주의가 만개한 시대에 딱 한 번 존재했던 그런 시기이다. 이 시기를 종료시킨 사람이 바로 소크라테스이다. “로고스”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였고,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소피스트의 시대가 종료되었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게 된다.
 
특목고를 정점으로 두고 한국의 사교육 시스템이 찾아낸 이 최적점은 노예제 사회라면 잘 어울릴 수 있다. 원한다면 바라만을 정점으로 하는 카스트 제도를 부활시키면 딱 좋겠다고 솔직히 말해주면 좋겠다. 특목고에 갈 수 있는 사교육을 초등학교 5학년부터 시킬 수 없는 나머지 국민들은 그냥 노동하는 바이샤와 노예인 수드라인가? 부의 차등은 있더라도 신분의 차이는 없다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가 서 있는 이념의 기반인데, 한국 자본주의에서 가난한 아이들과 부자 아이들이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것은 역으로 “붉은 악마”가 되어 대한민국을 목 놓아 외치는 순간 밖에는 없어 보인다.
 
지방에서 태어났고, 부모가 가난하다. 그리고 13살인데, 여학생이기까지 하다. 이 여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길로 사회가 배려하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서울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아주 가난한데, 이제 재건축으로 인해서 집도 막막해졌다. 열 세 살이다. 친구들도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이런 아이들이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폴란드에서 이민 온 가난한 여학생이었을 뿐인 퀴리부인이라면 한국에서 어떠한 인생을 살아갔을까? 그저 연방정부에서 운영하는 거의 무료이다시피한 쮜리히 공과대학을 적당히 졸업하고 시에서 운영하는 특허청의 초급 공무원 생활을 했던 아인슈타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막 1만불을 넘은 한국 사회가 제일 먼저 한 것은 2만불을 도약을 위한 사회적 기반과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 사회에서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막아버린 것 같아 보인다.
 
너무나 차갑고 추운 겨울을 보내는 13세 소녀에게 이 사회가 줄 수 있는 사랑은 과연 무엇이고, 그것은 학교와 공교육에서 찾아질 수는 없는 일일까?
 
2만불을 향해서 발버둥치고 있는 이 사회에 “사랑”이라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어 보인다.
 
“대학가는 법을 안다‘는 소피스트들은 이 사회에 아주 많다. 그들 중 일부는 한 때는 좌파였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이 소피스트들은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 아이들의 부모에게도 사랑은 전혀 가르치지 않고, 서울대로부터 쭉 늘어선 대학 시스템이 갖는 한국 사회의 철의 법칙만을 가르친다.
 
5. 지금 개혁이 필요하다...
 
미국식 고가의 대학 시스템은 한국 사회에 잘 어울리지도 않고, 그만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없는 사회에서 잘 맞지 않는다. 총장들끼리 모여서 추첨해서 국립대학 번호를 부여받은 프랑스식 국립대학도 하나의 답이고, 공교육 시스템에서 전통의 마에스트로 교육을 접목한 독일식 공민교육도 하나의 답이고, 4만 5천불의 국민소득을 만들어낸 쯔벵글러의 완전 공교육을 가지고 있는 스위스 시스템도 하나의 답이다. 이도저도 안되면 무조건 최고의 인재를 국가가 만들어주겠다고 하는 캐나다식을 할 수도 있고, 그야말로 “다음세대에게 모든 것을”이라는 모토로 사회교육을 만들어가는 호주식도 하나의 답이다.
 
그 어떤 시스템도 지금 우리나라 보다는 형편이 낫다. 상층부는 미국식 대학을 쫓아가면서 실제로는 인도의 고대 신분제로 진화하고 있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현재로서는 최악의 경우이다.
 
만약 후대의 역사가가 지금 한국의 상황을 본다고 한다면 역사상 가장 빠르고 짧은 시간에 부를 축적한 사회가 내부의 교육 문제로 얼마나 빠른 시간에 부패하고 사회적 문제점을 안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사레가 될 것 같다.
 
2천년 전통이라고 하지만 조금만 아픈 애들이 오면 몰매주고 쫓아내라고 하는 전통이 서당에 있었던가 경당에 있었던가 아니면 명륜당에 있었던가?
 
지금은 교육 시스템에 대한 개혁이 필요한 때이고, 정말 심각하게 한국 사회에서 학교와 교육의 기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이다. 지금이 암울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시스템이 더 정착되고 안착되었을 때 벌어질 일이 암울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부동산 정책의 하위부속물이 아니고, 산업정책의 단순조력자인 것만도 아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별로 좋아보이지도 않는 1류 대학을 중심으로 “소팅”하기 위한 줄 세우기 기법인 것은 정말 아니다.
 
모든 교육예산을 특목고에 쏟아 붓고, 지자체의 예산을 “영어마을만들기”에 집어넣는 이 시스템에서 부자의 아이들이든 가난한 아이들이건 전부 마음에 병이 들고, 한국식 천민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쓰레기통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한미 FTA 같은 개방정책이 정책 1순위가 아니라 병들고 병든 우리나라의 시골학교에서 부패할대로 부패한 사립대학에까지 이 일련의 고리들을 어떻게 끊을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정책 1순위가 되어야 한다.
 
눈만 뜨면 새로 만들어내는 지방의 부동산값 올리기 정책들만 생각하는 구도 내에서 이 땅에 희망은 없다.
 
1명이 10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그럼 먹여줄꺼냐? 음악도 듣고 주 5일제 지키면서 우아하게 살 수 있게 해줄거냐?
 
내 눈에는 한 명의 귀족을 위해서 9만9천9백9십9명은 머리를 “하얗게” 비우고 노예의 삶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는 것처럼 보인다.
 
난 13살 소녀들에게 “10만명을 먹여 살릴 1명이 되라”라고 말할 자신은 정말 없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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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2/15 [13:3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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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팅팅 2006/02/15 [22:42] 수정 | 삭제
  • 정말 숨이 막히네요.
    올해 우리 딸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아이를 지옥문으로 들여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세요
  • 독자 2006/02/15 [15:42] 수정 | 삭제
  • 머잖아 한학기에 천만원대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참여정부들어서 지폐모양뿐 아니라..뭐든지 미국식이 좋다고 따라하는거
    보고 정말 질렸는데...
    이제 이땅의 가난한 젊은이들은 대학졸업하고 꼼짝없이 직장생활로.. 또한번 기업체 노예로 전락하겠군요. 부모돈으로 대학가는것보다는 훨 독립적이긴 하겠지만..
    조금 씁쓸한 현상이군요.
  • 백성주 2006/02/15 [14:14] 수정 | 삭제
  • 살인적인 등록금 인상 10만원...

    우석훈 선생의 글을 여러 가지 재미있게 유익하게 읽어왔습니다. 이번 글은 그 중에서도 탁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일 관심이 가는 것은 등록금이 싸거나 없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대학 방식 중에서 우리가 어떤 모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학교육방식을 두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말을 꺼내고 있지만, 사실은 그런 당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선택의 문제란 말입니다.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이 집에 시킬까 저 집에 시킬까, ..... 바로 이런 선택이죠.

    유럽의 대학들처럼 교육체계를 만들 수도 있고, 미국의 대학처럼 교육체계를 만들 수도 있고, 우리나라처럼 교육체계를 만들 수도 있는데, 그 체계들 중에서 우리가 선택한다는 것이죠.

    대학입학전형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의 바깔로레아를 칠 수도 있고, 수능등급제 내신등급제를 할 수도 있고, 본고사를 할 수도 있고, 백성주가 제안하는 것처럼 '무시험-추첨제'를 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선택의 문제이지, 당위의 문제가 아니죠.

    그런데 아무도 백성주처럼 구체적인 시안을 내놓고 국민들에게 선택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이게 참 기가 막힐 노릇이예요. 학벌없는사회나 학벌없는사회만들기도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고, 추상적으로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고 말만 하고 있습니다. 대학평준화 하자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평준화하는 방법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기가 막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아무 권위도 없는 일개 신문배달원에 불과한데, 우석훈 선생은 그래도 박사이시니, 그래도 말발이 조금 서겠죠. 다음에 글을 올리실 때 이 모든 것이 겨우 선택의 문제이며, 선택을 위해서는 선택지들을 공개적으로 제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 글솜씨나 지식으로는 설득력 높은 글을 쓰지 못하므로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010-5557-4671 백성주 liet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