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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검은 새로 만들어지고 평화를 부른다?
[비나리의 초록공명] 엑스칼리버와 마법사 말린, 신화와 사회적 협약
 
우석훈   기사입력  2006/02/11 [14:49]
Avalon이라는 감동적인 이름이 있다. 아발론이라는 지명은 무엇을 상징할까? 어려운 얘기이다. 대충 감오는 대로 찍어서 얘기하자면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형제가 된다는 것을 상징하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악은 모두 사라진다는 것을 상징한다.

아주 이교도적인 상징이고, 예수의 "부활"과는 전혀 상관없는 원래 유럽의 상징이다.

아발론에는 사과나무가 피어있다고 한다. 이 사과나무가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꿈을 상징한다.

아발론은 엑스칼리버와 마법사 말린이 연결되어 있고, 신과 악마가 같이 만들어낸 최고의 천재 말린도 손댈 수 없는 원래 유럽의 상징들이 연결되어 있다.

▲ 장 마르칼 지음, 김정란 번역으로 나온 <아발론 연대기>         © 북스피어, 2005

엑스칼리버와 말린은 캘틱의 신화이다. 그리고 아발론은 캘틱의 오래된 신화이기는 하지만 5세기 경, 이미 성배라는 또 다른 예수의 전설이 끼어 들기 이전의 이교적 신화이다.

아발론은 아더왕이 묻혀 있는 땅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부러진 엑스칼리버가 같이 잠자고 있다. 물밑에 있다. 그 물밑에서 잠자고 있는 아더가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아발론에서 자라고 있는 사과나무가 보증한다. 사과나무가 자라는 곳에서는 사람도 살 수 있고, 숨 쉴 수 있다.

아발론의 신화는 어렵다. 사람들의 꿈을 간직하고 있을 수 있는 어느 땅, 마치 우리가 용궁을 상상하는 것 같은 땅이 있고, 이곳에는 처음으로 캘틱을 하나의 나라로 만들어준 검은 엑스칼리버가 숨쉬고 있고, 그 첫 번째 왕인 아더가 잠자고 있다.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이 움직일 시간을 위해서 잠자고 있을 뿐이다.

이 신화의 완성은 언젠가 아더가 엑스칼리버를 들고 아바론에서 깨어나 사람들에게 돌아와서 통일된 왕국을 만들어주는 시간이다. 물론 절대로 올 것 같지는 않다.

부러진 검에 관한 신화는 원래는 캘틱의 신화가 아니라 더 북유럽으로 올라간 곳의, 그 바이킹의 신화이고 발키리의 신화이기도 하다.

청동기 시대를 거쳐 철기 시대에 처음으로 왕국을 만든 인간들은 최초의 그 검이 부러진 후에 다시 붙기를 바란다.

우리 말로 얘기하면 정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부러진 검이 다시 이어지는 날 정의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 검의 이름이 나르실이다. 부러진 검 나르실이 다시 붙어서 하나의 검이 되는 날 broken line, 즉 끊겨진 왕의 혈통이 이어져 다시 세상에는 평화가 돌아오게 된다.

기억할지 모르지만 반지의 제왕 1편에서 사루만에게 부러진 검이 3편에서 요정의 왕인 엘프 대장장이에 의해서 다시 만들어지는데, 이 검의 이름이 나르실이다.

나의 친구이자 민주노동당 귀신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던 이재영이 오늘은 술에 잔뜩 취해서 20년 후에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거냐고 나한테 물어봤다.

문득 나르실과 아라곤 생각이 났다.

집에 돌아와서 TV를 켰더니 무슨 조화인지 DVD에서 반지의 제왕 3편 부러진 나르실을 다시 제련해서 잇는 장면이 나왔다.

우연은 계속 우연을 만든다. 내가 읽던 켈트족 신화책 중간을 어느 신문사 편집국장 차에 우연히 두고 내린 다음에 아직 돌려받지 못해서 뒷 얘기를 못 읽고 있다.

또 다른 우연이지만 그 신문사에는 글을 쓰지 말라고 나한테 얘기하는 사람들이 며칠 사이에 3명이 생겨났다.

마음이 약해지면 자꾸 신화 같은 것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신화는 알라스카의 신화이다. 의역하면 톱니달린 거시기, 비슷한 신화가 시베리아에도 있다고 한다. 톱니달린 거시기를 가진 여우에 관한 신화,. 사마귀에 관한 신화이다.

21세기를 향하면서 아바론의 신화들이 다시 많이 거론된다. 가끔 생각해본다. 9명의 여신이 숨쉬는 곳, 아바론...

아바론의 본질은 부러진 검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식한 바이킹 사람들의 신화가 세계를 그야말로 나르실의 신화로 끌어가는 셈이다.

"사회적 협약"이라는 말이 바로 발키리라는 여신을 멋지게 생각하는 그들의 신화에서 나온 얘기이다.

자신보다 강하지 않으면 남자를 죽인다는, 그래서 아름답다는 말 대신에 누구보다도 멀리 활을 쏘고 누구보다도 창을 멀리 던진다고 표현했던 바로 그 신화 속에 나오는 그들의 사회적 협약과 그들의 또 다른 신화 나르실, 여기에 켈트족의 멀린의 전설과 아바론이 대충 합쳐진 것이 어제 대한민국 국회에서 본 몇몇 국회의원들의 주장 가운데에서 내가 가졌던 이미지이다.

부러진 검이 다시 붙을까?

새로운 검을 만들면 그만인데 왜 사람들은 부러진 검을 다시 붙이면 세상이 평화로와진다고 생각할까? 우리한테는 없는 신화이고 스웨덴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신화인데, 그래도 느낌이 없지는 않다.

부러진 검을 다시 붙일까, 아니면 새로운 검을 만들까?

나는 아무래도 조선 사람인가 보다. 부러진 검 보다는 곰도 마늘을 계속 먹으면 사람이 된다는 말을 더 믿고 싶어진다... 마음이 그렇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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