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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녹색당’ 정말 필요없나?
[비나리의 초록공명] 녹색당이 있을 필요가 진짜 있을까, 정말 있을까?
 
우석훈   기사입력  2006/02/10 [16:55]
녹색당, 없댄다!
 
개인적으로 민주노동당에는 터주대감 같은 사람들이 나의 오래된 친구들이다. 내가 그들에게는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녹색정치준비모임 같은 곳에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이 아주 이상한 일이기는 했을 것이다.
 
그들이 초록정치연대라는 곳을 지지했던 이유는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의외로 간단하다. 그 자체로서의 민주노동당 보다는 어디에서인가 뭔가 극단적인 질문을 하고 치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나는 좋게 이해한다. 3년 전에는 분명히 그 정도의 건전한 논의의 틀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민주노동당에서 2006 지방선거에 대한 대책을 평가하면서 녹색당은 이번에도 없다는 보고서 같은게 올라갔다는 얘기를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었다. 간단한 표현일 것이다. 녹색당, 없다...
 
아주 개인적인 얘기지만 한나라당을 제외한 상당히 많은 곳에서 같이 일을 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물론 난 건강도 안 좋고, 일을 벌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만약 내가 5년 전처럼 힘이 넘치던 때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나도 모른다.
 
다행히도 난 몸 여기저기가 많이 아프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집밖으로 나오지는 못한다. 아주 옛날처럼 벌려지는 대로 할 때 같으면 아마 '덩더쿵 덩더쿵' 했을지도 모르지만, 아주 살살만 움직인다. 어쩔 수가 없다. 내 나이도 이제 마흔인데, 20대에 우울증 10년을 보내면서 몸도 마음도 너무 혹사했다. 그야말로 이 정도라도 아직 살아있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아주 오래된 후배가 나한테 질문을 했다. 왜 그렇게 당을 만들고 싶어하쇼? 모르는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말이 있기는 한데, 난 순간 말문이 막혔다. 왜 당일까... 흐음...
 
할 말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뚫린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다 진실인 것은 아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지난 6개월 동안 나한테 돈을 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았는데, 초록정치연대에 당원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이게 뭘까라고 곰곰 생각했다.
 
현재의 한국에서 녹색당을 만들고 싶어했던 사람들이 서 있는 공간이 그만큼 빙판의 작은 오솔길에 아직 녹지 않은 얼음 한 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을 바꾸어보자. 초록정치연대가 없어지고, 녹색당을 위한 노력이 없어지면 행복한 사람들이 있을까?
 
사랑 같은 거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로 원하는 일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을 구하지는 못해도 한 명이라도 행복하게 할 수만 있다면...
 
딜레마는 있어도 별 거 없고, 없어진다고 해도 별 거 없다는데 딜레마가 있다. 민주노동당은 아주, 아주 조금 좋아질 거다. 아주 조금이지만 여기라도 없어지면 서구의 사회당과 녹색당을 합친 것이 민주노동당이라고 할 수 있다. 별 도움이 될 것 같아보이지는 않지만, 몇 사람은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환경단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말을 풀기가 불편한데, 좋을까 말까라고 질문하면 답하기가 쉽지 않다. 짧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 “환경당이라면 충분히 돕겠지만 녹색당은 돕기 어렵다”로 말했던 어느 분의 말을 잠깐 회상해본다. 답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없어진다고 하면 잘한 일이라고 얘기할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다. 원래 그렇게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들어서 알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서로 불편해져버린 것 같다.
 
여성단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답할 수도 없고, 그렇게 질문하는 것도 편치 않다. 그러나 없어졌다고 아쉬워할 사람이나 단체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여성세력화와 시민세력화는 비슷하지만 분명 다른 말인 것 같다.
 
농업관련 단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문제는 답하기가 쉽다.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질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정답일 것 같다.
 
풀뿌리를 표방했던 단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답은 비교적 명확할 것 같다. noise aborted... 초록정치연대는 정확하게 얘기하면 풀뿌리 단체들에게는 noise, 소음이었을 뿐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을 만들겠다고 하는 이 조직이 아직도 살아있는 이유는 뭘까? 엑기스?. 그런 게 뭔가 있는 것일까?
 
아직 녹색당의 엑기스가 피어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그런 엑기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민주노동당은 “그런 건 없다”고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그 결론을 듣고 정말 한 번 곰곰 생각해본다. 녹색당이 있을 필요가 진짜 있을까, 정말 있을까?
 
그렇지만 대한민국 어느 곳에도 녹색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초록정치연대라고 불리는 사무국의 몇 사람, 그리고 여기와 관련된 다섯 명 안팍의 사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레토릭을 탈탈 털고 나면 진짜로 우리나라에 녹색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10명은 될까?
 
"녹색당, 없다"는 세간의 평가를 보면서 아주 솔직하게 생명평화라는 가치가 어디 위에 서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문 닫으라는 사람이 백 명이면 닫지 말고 버티라는 사람이 1명이다. 현상은 그렇다.
 
맑스가 왜 본질이라고 얘기했는지 엄한 얘기하면서 도망가고 싶은데, 진짜로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싶다. 우리나라에 녹색당이 필요한가? 난 필요한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재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는 5,000명이 절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나만 없어지면 5만명이 된다는 것이 현실이면 정말 좋겠다. 정말 좋겠다. 별 이상한 게 다 꿈이 되어버렸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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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2/10 [16:5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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