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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기의 격정토로] 이인제, 일탈의 정치학
이인제와 김민석, 누가 더 망가진 정치인 워스트인가?ba.info/css
 
장신기   기사입력  2002/12/02 [01:36]
{IMAGE2_LEFT}이인제가 탈당하였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잔류가 예상되었고 본인도 그것을 시인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이인제의 탈당에 대해서 조금은 놀랍다. 이인제는 자신이 공작 정치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하면서 한나라당이 제시한 도청 의혹등을 언급하였는데, 이것을 보면 이인제는 그 동안 탈당의 명분만을 찾고 있었음이 증명되었다. 이로 인하여 이인제는 2차례의 경선불복과 대선 전 탈당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안그래도 한국의 어두운 기록들이 기네스북에 자주 올라가는 것에 대해서 평소에 심기가 좋지 못했는데, 이인제의 이러한 기록이 기네스북에 올라갈 것 같아서 조금은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이인제의 이러한 행동을 일탈의 정치학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자신이 중심이 되지 못하면 이런 저런 논리를 내세우면서 그 판을 깨고 새로운 중심축으로 들어서기를 바라는 심리가 이인제를 지배하고 있으며 이것이 그를 지속적인 탈선의 길로 나가게 하는 것 같다.

정치권 외곽에 있으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꿈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면 거물 정치인이 되어서 자신이 정국의 핵심에 항상 있기를 바라는 속성들이 있다. 물론 욕심이 있어야 무슨 일이든 해도 열심히 할 수 있으므로 성취지향적인 정치인의 그러한 속성을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권력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제도를 통해서 최대한 합리적인 조정과 배분을 시도하게 된다. 이것은 정치를 넘어서 사회 전체적인 관점에서 볼 때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리가 법과 제도를 통해서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것은 그것이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는 경험적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제도적 합리성이 없게 되면 권력과 자원을 향한 무한 쟁투를 막을 수 없으며 이것은 결국 공공선을 파괴하게 된다. 그래서 권력과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문은 누구에게나 열어 놓고 그 절차적 합리성은 철저하게 유지하며 그 결과에 대해서 승복하는 것이 산업사회의 기본 윤리라 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원칙과 합의가 파괴된다면 눈 앞의 이익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자들의 난동을 막을 수 없게 되며, 이는 결국 사회 발전의 저해 요인이 된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이인제는 게임의 규칙과 원칙에 대해서 두 번 씩이나 불복하였다는 점에서 그의 천박한 정치 윤리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이러한 이인제의 행동이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는 것은 한국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천반한 사회 윤리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인제의 이 모습은 비단 이인제라는 특정한 개인에게만 나타나는 돌연변이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비윤리성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솔직히 매우 뼈아프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인제는 일종의 왕자병에 걸려 있는 것 같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언론에 관심을 유도하여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 같고 이 모습은 왕년의 박찬종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또한 이는 대중 스타들이 항상 언론에 노출되어서 국민들의 관심을 어떤 식으로든 끌어 보려고 하는 것과 유사한 행동이다. 그런데 보여 줄 것이 있고 말 것이 있는데 막가파식으로 일이나 저지르고 보자는 식의 이인제의 행동은 한심과 분노를 넘어서 측은함까지 느끼게 한다. 이는 특히 대중적 관심에서 멀어지는 스타들이 옷을 벗는 등의 도발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도 멀어진 관심을 어떤 식으로든 끌어 보려는 의도와 다를 바가 없다. 나는 그러한 스타들을 볼 때마다 솔직히 '안되었다' '불쌍하다'라는 생각을 하곤 하였었다. 예술적 행위가 아니라 단순히 대중들의 말초적 감성이라도 자극하기 위해서 자신의 나신을 조금씩 노출시키는 행위에 대해서 본인도 속으로는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인제의 모습이 바로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선 국면에서 자신이 외면받는 현실에 대해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튀어 보기 위해서 안달하는 것 같고, 그래서 누가 보래도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한 퇴영적 행태를 또 다시 반복하게 된 것 같다.

또한 이인제는 무시무시한 권력욕에만 가득 차 있어서 동시대 정치인인 노무현의 극적인 돌파 과정을 시샘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대세론을 앞세워 당연히 후보가 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었을 이인제에게 노무현의 등장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고난의 과정을 스스로 극복하고 승화하여서 노무현을 진심으로 밀어주었다면 그에 대한 불신은 많이 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인제는 무시무시한 질투심에 사로 잡혀서 노무현의 등장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결국은 정치적 자살골을 넣고야 말았다.

위와 같은 이인제의 철학의 빈곤은 바로 구태의연한 이념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정치적 열정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동시대 정치인의 성장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라는 모든 영역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인제의 멘탈리티를 보면 박정희가 생각이 난다. 이인제가 박정희를 흉내내고 다닌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인제의 인상과 박정희의 그것은 너무도 흡사하다. 나는 인상에서 그 자의 삶의 철학이 그대로 배여나온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단순히 인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넘어서 이인제의 언행을 보면 죽은 박정희가 부활한 듯한 느낌마저 준다. 권력을 위해선 어떠한 일탈과 극적인 변신도 할 수 있다는 지독한 독선과 왕자병이 바로 박정희와 이인제에게 동시에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한 멘탈리티를 가진 박정희에 의해서 통치를 받았고, 또한 그의 복사판인 이인제에 의해서 어지러운 정치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현실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IMAGE1_RIGHT}최근의 사건들을 통해서 이인제와 그 일당들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되면서, 이인제 대세론을 붕괴시킨 것이 참으로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포스트 DJ이후의 질서에 있어서 이인제의 길과 노무현의 길은 질적으로 매우 다르며 노무현의 민주당이 되어야 김대중의 정치 철학의 비판적 계승이 이뤄질 수 있다는 나는 생각했다. 물론 포스트 DJ 질서의 비판적 계승은 결국 탈권위주의화와 반DJ의 돌파에서 그 동력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이회창 대세론을 깨는 노무현 필승론(이인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노무현 필승론)의 근거라는 점을 강하게 주장했었다.

만약에 동교동 구파와 구 당권파 그리고 구 여권 영입 세력들의 카드였던 이인제가 경선에서 승리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그 길은 민주당과 김대중의 정치적 파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을 통한 정치권의 재편은 이회창 대세론을 깨는 것과 중도 개혁 정당의 안정적 착근(포스트 DJ질서의 확립)을 동시에 이루는 매우 중대한 정치사적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깨고 노무현을 후보로 만드는 데에 기여한 수 많은 개혁적 시민들은 매우 중요한 국면에서 실로 뜻깊은 일을 해내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인제가 이제 무슨 선택을 하든 큰 주목을 받지 못할 것이다. 아니 언론이 관심을 가져 준다고 해도 국민들이 그를 외면할 것이다. 그는 이 번 선택으로 인해서 거물 정치인에서 순간 미물 정치인으로 급전직하하게 되었다. 이는 김민석의 그것과 동일한 모습이다. 나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 2002년에 망가진 정치인 베스트를 정리 분석할 생각이 있다. 이 때 이인제와 김민석은 그 베스트 명단에 올라 갈 것인데, 과연 누가 워스트 오브 더 워스트가 되어야 할지 조금은 고민거리다. 독자분들께서 의견을 주신다면 그 자를 망가진 정치인 워스트 원으로 선정하도록 하겠다.

* 필자는 '노무현, 반DJ 신드롬을 넘어서"(시대의창)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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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2/02 [01:3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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