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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학생은 감성적이고 수학을 못한다?
[비나리의 초록공명] 사회적 편견과 수학, 가난한 13세 소녀의 운명
 
우석훈   기사입력  2006/02/07 [16:05]
“제약”이라는 말을 가끔 쓰는데 원래는 일본말이다. 제약조건이라는 경우 외에는 우리 말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비슷한 말을 정신분석학에서는 “억압”이라고 사용하는데, 에너지가 분출되는 것을 강제로 막아 안으로 집어넣을 때 사용한다. 억압되어 내면화된 “아버지”를 프로이드는 “초자아”라고 부르고, 끊임없이 무엇을 하면 안된다는 하나의 힘과 무엇을 해야 한다는 또 다른 힘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얼마 전에 다들 이름대면 알만한 어느 인권 변호사의 중학생 딸과 길게 앉아서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 기회가 있었다. 숫자가 무섭다고 한단다. 원래 숫자를 싫어하느냐고 물었더니 처음부터 싫어했다고 한단다.
 
국제적인 비교를 조금 해보면 국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OECD 국가 내에서 특별히 여학생과 남학생 사이에 수학 능력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아무런 성별 분별력을 통계적으로 찾아내기는 힘들다.
 
마광수는 우리나라에서의 “억압”이 남자들에게 훨씬 많이 작용한다고 최근에 강하게 주장을 한다. 여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제약이 별로 없고, 남자들에게 제약이 많다는 것이다.
 
두 가지가 예로 제시된다. 남자에게는 “울면 안된다”는 강한 제약이 사회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내면화된 제약이 사회적으로 분출된 증거가 오빠부대는 있는데 누나부대는 없다는 이유라고 한다. 부분적으로 남자들에게도 제약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는 있어도 마광수의 생각처럼 여자들에게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말에는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어느 정도로 성별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것인지 그리고 어디에서부터 사회적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1. 여자는 감성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출범하면서 앞으로 사회의 가능성은 여성노동력의 활용에 있다고 했다. 물론 지수상으로만 보면 아직 우리나라는 전업주부의 비율이 높고, 또 이 전업주부들의 학력이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높기 때문에 수치상으로는 labour potential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런데 여자는 더 감성적이라서 현대적 의미의 감성사회에 더 잘 어울리고 이런 얘기를 사람들이 종종 한다. 이것도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할 것 같다.
 
그렇게 오래 올라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남자가 더 감성적이고 여자한테는 감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던 시기가 있었다. 여자도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한 그 첫 번째 사건이 신여성의 등장의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비로서 과거제가 사라졌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 용어로 바꾸어보면 당상관까지 올라가기 위한 첫 “고시”를 예전에는 시를 가지고 보았다. 한 마디로 1,000년간 우리나라에서는 시 잘 쓰는 사람이 최고였다. 고려 이후에 귀족의 자제라서 자동빵으로 공무원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양민들은 시험보고 공무원이 되었는데, 이 공무원 시험에서 수능식으로 얘기하면 제일 배점이 높아 “변별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과목이 바로 시였다.
 
공부한다고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시인데, 외우고 배워서 할 수 있는 한계 정도로는 공무원 시험에 붙기 어렵고, 조금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시를 시험과목으로 채택한 것인데, 근대적 의미의 합리성은 아니지만 중세적인 의미에서 나름대로 시스템을 작동하기 위한 “시스템의 합리성”이 작동한 장치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시기에 여자들한테는 시를 쓰지 못하도록 하였다. 물론 시만이 아니라 글도 가르치지 않았지만, 일부의 글을 배운 여자들도 시를 쓰는 것은 상당히 엄격하게 우리나라에서 남자들이 감독을 했고, 여자들은 언문을 배워서 편지나 쓰면 된다고 했다.
 
허난설헌이 대단한 건 이런 공간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강릉으로 유배간 초당의 딸인 허난설헌이 더욱 대단한 건 여자들은 시를 쓸 정도의 감성이 없다고 할뿐더러 사회적으로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권력체계에 도전하는 여하한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와중에 등장한 사건이라서 난설헌이 대단한 것이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오히려 난설헌은 수학을 잘했던 천제와 위상이 비슷하다. 어느덧 역사가 흘러서 이제 사회는 감성적인 것과 시와 관련된 일들이나 여성들이 하라고 하고, 남성들은 또 다른 권력을 독점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2. 여학생들은 수학을 못한다
 
이런 태도 없는 거짓신화가 21세기라고 하는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살아 숨쉬고 있다. 다른 편견들은 이해를 해도 여학생은 수학을 못한다는 편견만큼은 도대체 왜 생기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수학을 잘 해야하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 과기대나 공대나 물리학과에 중요한 연구들에 아무런 차이 없이 다 하고 있는데, 사회적으로는 수학은 여성의 일은 아니다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맞는 것처럼 가르치고 또 재생산하고 있다.
 
물론 이 자체로 하나의 권력관계에 가깝다. 경영학과가 학부에 버젓이 있으면서도 30년 동안 아무도 이상하다고 얘기하지 않는 것이나 변호사들이 가지고 있는 왜곡된 권력들 혹은 신문사나 방송에서 별 기술같아 보이지도 않는 말장난 몇 개 만들면서 대우받는 좀 이상한 한국 근대사의 왜곡된 권력 구조들이 합쳐져서 이런 것이 생겨난 것 같기는 하다.
 
정작 수학과나 물리학과에서 수학을 잘 하는 사람들은 정말 한 두명 빼고는 수능 수학선생님이나 되어야 하는 권력관계들이 이런 묘한 편견을 사회적으로 만들어내는 것 같다.
 
최근의 연구경향으로는 이것을 gender asymetry라고 부르는데, 수학에 대한 비대칭성은 일본에도 존재하지 않고 동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에서도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현상인 것 같다. 인도도 이렇지 않고, 필리핀도 이렇지 않고, 더군다나 막 “압축성장”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는 호치민의 상징을 가지고 21세기를 헤쳐나가는 베트남에서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3. 부작용이 있는가?
 
수학 때문에 생기는 것 같지는 않지만, 여학생은 수학을 못한다는 사회적 편견을 만들어놓고 가장 덕을 보는 것은 웃기게도 한국에서 움직이는 대자본들인 것 같다. 현대 사회의 많은 지식들은 어쨌든 숫자 형태로 나타나고 테이블 형태로 나타나는데, 단편화된 숫자로 표시되는 지식들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약간의 함수 관계 혹은 공식 같은 것들이 머리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
 
큰 회사가 만드는 물건일수록 믿을 수 있다는 탈포드주의 시대에 아무런 근거없는 신화를 비롯해서 식품회사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상의 비대칭성, 화장품 회사들이 케미컬을 가지고 왜곡시키는 원가와 경영이익 상의 미친 짓들 혹은 최근의 요가열풍까지 좀 웃기는 현상들은 “이 사람들은 절대로 숫자를 보지 않을 것이다‘는 전제 하에서 잘 움직일 수 있는 현상들이다.
 
이 문제를 감성으로 해결하는 방법과 수리적 사고로 해결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감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권위있는 누군가 실험을 해보거나 체험을 해보고 이건 그게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게 된다. 전형적인 미메티즘 게임의 형태가 된다.
 
이런 미메티즘에 광고들이 접목을 시키는 것은 나르시시즘이다. 나르시시즘에 근거한 미메티즘 모델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꿈에서 깨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냥 그게 좋거나 그러한 형태의 소비를 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스스로 뭔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수학을 잘 할 필요는 없지만 숫자마저도 두려워해서는 곤란하다.
 
4. 13-18세대에 대한 자본의 공략
 
대학교 근처에 가보면 많은 대학생들이 화장을 하고 다니는 나라는 역시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는 없다. 물론 성인의 문화적 선택에 대해서 뭐라고 말 할 생각은 별로 없지만, 집단적으로 전혀 다른 뭔가가 발생할 때에는 복합적이라도 요인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지금 자본이 노리는 것은 13세에 처음 화장을 시작하는 우리의 아이들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13세와 18세 사이에 기초화장품을 사용할 나이에 자기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게 되면, 18세가 되어 본격적으로 색조화장을 사용하면서 평생을 자신의 고객으로 “모실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경쟁력 같은 골치 아픈 얘기가 아니더라도 퀴리부인을 자신의 상징으로 생각하면서 수학공부도 할 유럽의 아이들과 우리나라의 중고등학생들이 13세와 18세 사이에서 얼마나 다르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마음이 그냥 편하지는 않다.
 
담배 회사가 90년대까지 국제적으로 최고의 금기였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자본과 기술의 잘못된 만남에 관한 지적이 이제 화장품 회사이다.
 
영화상으로는 딱 두 번 화장품 회사가 자신의 제품들에 대해서 저지르는 비리에 대한 것이 영화화된 적이 있는데, 첫 번째가 중독성이 강해서 끊으면 바로 노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영원히 소비해야 하는 제품을 시중에 팔고자 했던 화장품 회사의 비리와 관련된 ‘캣 우먼“이다.
 
두 번째는 세계를 지배하는 다국적 기업이 일종의 치료약으로 만들어내려고 했던 T-바이러스가 모든 사람을 노예로 바꾸게 된다는 ”바이오 해저드“라는 오락을 영화로 바꾼 ”레지던트 이블“이라는 영화이고, 4편까지 나올 예정인데, 많은 사람들이 목 빼놓고 6월에 개봉된다는 4편을 기다리는 중이다.
 
수학만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시도 읽고 신화도 읽고 수학도 풀고 가끔은 실험도 할 수 있고, 또 예술도 사랑해서 악기도 연주할 수 있고, 글로 자신의 간단한 생각은 표현할 수 있는 그런 1318 세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수능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많은 여학생들이 중학교 2학년을 끝으로 다시는 수학에 대해서 고민을 안 하고 성인이 되는 것 같다. 모든 것이 수능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생겨나는 또 다른 부작용인 것 같다.
 
5. 가난한 청소년들이 수학공부를 할 수 있어야
 
한국 사회를 가르는 두 가지 중요한 축은 남자냐 여자냐라는 성별 관계이고 또 다른 관계는 부모가 부자냐 아니냐라는 것 같다. 청소년 문제에 대한 통계들은 지역별로 큰 편차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아무래도 TV가 강요하는 인생이 전국화되었다는 점에서 지역별 편차가 적어도 아이들에게 작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정상적인 사회는 부모가 부자냐 아니냐라는 것이 아이들의 삶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데, 특히 OECD 국가 중에서는 우리나라가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아이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도가 가장 크기는 클 것 같다. 터키보다 심하고, 프랑스보다 심하고, 일본보다도 심할 것 같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두 가지 차별의 축을 합치면 여자이고 부모가 가난한 경우 2 x 2 매트릭스에서 최악의 경우에 있는 “가난한 여학생”들의 삶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모두에게 해당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나는 이 경우에는 수학이 답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레슨을 받아야 하는 음악이나 체육관에는 갈 수 있어야 하는 수영이나 배구 같은 것들에 인생을 걸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돈만 주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사교육 시장의 천국에서 가난한 부모를 만난 13세에서 18세의 소녀가 이 사회에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좁은 길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수학 공부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는 좋은 장점이 있다. 가난한 13세 소녀들도 쉽게 수학에 관심을 가지고 고급스러운 지식을 익힐 수 있는 좋은 수학 도서관 하나 만들어주고 싶다. 우리나라에 수학책이 별 거 없어서 1,000권 정도만 모아놓으면 돈과 시간만 있다면 TV가 제시하는 길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작은 돌파구 하나는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
 
TV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면 부모가 가난해서 어쩔 수 없는 13세 소녀의 운명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에 대한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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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2/07 [16:0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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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지던트 이블 2006/02/09 [01:53] 수정 | 삭제
  • 레지던트 이블 6월개봉하는 것은 4편이 아니고 3편입니다 ^^
    레지던트 이블 3 : 애프터라이프 (Resident Evil: Afterlife)
    게임 바이오 해저드는 4편이 나왔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물리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