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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말아톤'의 초원이, 방치만 할 것인가
[비나리의 초록공명]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수영장을 개방하자
 
우석훈   기사입력  2006/01/30 [19:39]
내가 만나본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은 대부분 부모는 극단적인 고학력이고 소득은 극빈층에 해당하는 것 같다. CA 운동하던 부부가 귀농한 집, 20년 전에 유기농 운동한다고 귀농한 집, 아빠는 아직도 조직활동한다고 정신 못차리고 엄마가 미장원하면서 버티는 집, 혹은 부모가 모두 활동가라도 갚을 수 없는 빚이 수천 만원씩 쌓인 집...
 
그래도 이 아이들의 눈빛은 천진하고, 책 읽기를 좋아한다. 사교육이라고 하지만 그런 건 근처에도 못 가볼 이 아이들의 미래가 우울할까? 극빈층에 해당하지만 그렇게까지 우울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내가 알고 있기로는 이런 집에서 부부싸움이 장난 아니고, 이혼하고 싶어도 이혼하고 난 다음에 먹고 살 길이 대략난감하기 때문에 그냥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구로동에 있는 하자센타 같은 곳에서 보게 될 아이들은 서울 내에서 가장 어려운 집안의 아이들이고, 이미 기존 학교에 적응할 수 없는 아이들이 이 곳에서 밴드를 만들어서 기타라도 열심히 치는 걸 도와주거나 영화 시나리오 쓰거나 촬영하는 걸 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문화운동으로서의 홍대 앞 문화운동은 조안혜정 교수가 처음에 디자인할 때에는 작은 문화거리를 만들고 가난한 아이들이 나름대로 "화"를 풀고, 또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게 해주자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홍대앞의 밴드나 문화들은 나의 취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희망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적어도 시에서 개입하면서 "굽고 싶은 거리"를 조성하기 전에는 말이다.
 
홍대 앞에 야타족들이 몰려들면서 싸고 작은 돈으로 문화를 느낄 수 있던 곳에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하였는데, 불과 1년이 지나지 않아서 고기집들이 밀고 들어왔고,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던 인대밴드들이 공연하던 곳들은 밀려나가고, 이내 "굽고 싶은 거리"가 되어버렸다. 대학로의 소극장들마저 호프집으로 바꾸자고 하는 임대료의 질곡 속에서 그야말로 근근히 버티고 있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직접 보게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지금 서울에서 저소득층의 자녀들의 삶과 미래는 대략 난감하다. 학교의 이중화는 공교육 내에서 완벽하게 구현되어서 자신의 자녀가 저소득층 자녀와 어울려서는 미래가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특목고 같은 곳들을 수 년째 목놓아 외치고 있고, 특목고가 동네에 신설되면 가난한 집 아이들과 자기네 집 아이들을 구분할 수 있다는 장점과 덩달아 집값도 올라가니까 일산에서 마포를 거쳐 상계동까지 이르도록 모든 동네에서는 자립형 특수고 같은 곳을 만들어달라고 그야말로 목놓아 외치고 있다.
 
이런 특목고는 물론 집에서도 아무 것도 아니고 사회화는 커녕 사회의 언저리에서 겉도는 아이들 혹은 그런 조건에 있는 중고등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사회통계 중에서 노래방이나 편의점 혹은 유흥주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청소년에 대한 통계들이 가끔 나오는데, 생각보다는 많은 것 같다. 도대체 이 사회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에게 소위 불량청소년이 되지 말고 독서를 열심히 하라고 하는 말이 가당키나 한 말일까?
 
가끔 청소년들에게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기는 한데, 대개는 정중히 거절한다. 나는 도대체 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거나 책을 열심히 읽으라는 말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입에서 그런 말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거나 책을 읽을 수도 없는 그런 삶을 살지는 않았고... 그래서 내가 이해할 수 있다는 건 거짓말에 해당할 것 같다.
 
그렇지만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점점 더 꿈도 희망도 없이 그야말로 "게토"의 밀려난 아이들처럼 아무에게도 대변받지 못하고, 그들 스스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부자들을 위한 도시로 재편되는 서울 속에서 더 많은 희망없는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강남북균형개발이 이 아이들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을까? 강북도 강남만큼 비싼 아파트를 만들어준다는 말을 뒤집으면 이젠 강북의 주요 아파트단지의 전월세도 높아진다는 말이고 가난하다면 이 도시에서는 죽어나도록 고생하는 것 외에는 별로 해결책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얼마 전부터 이 아이들에게 수영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수영이 아니라도 좋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각 구마다 한 두 개는 있는 수영장이나 올림픽 수영장 같은 사회 체육시설을 이들에게 개방해서 수영이라도 배울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고 고민해본다.

좋을 것 같기도 한데, 수영복도 없고, 무엇보다 저소득층으로 인지되지 않으면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없는데, 스스로 저소득층이라고 드러나게 되는 것을 꺼린다고 한단다. 이해할 수는 있다.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은 1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중소기업에 다니고 송파구에 있는 올림픽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마라톤 연습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정도의 삶이 행복할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절망 속에 있는 아이들에게 수영이라도 하나의 작은 돌파구가 될 수는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방학 중이라도 YMCA 같은 곳에서 수영장이나 체육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고, 점심은 한살림에서 제공하는 유기농 도시락을 같이 모여서 먹고, 영화나 음악 아니면 조소같은 걸 취미로 배울 수 있게 해줄 수는 없을까?
 
지역화폐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면 수영-유기농 쿠폰 같은 걸 구청에서 약간의 예산으로 발행을 한다면, 1인당 하루 만원에 쿠폰 정도의 예산이라면 각 구청별 백명에게 이러한 프로그램을 제시한다면 여름과 겨울방학 4달로 잡으면 연간예산 1억 2천만원이면 이 프로그램은 돌아갈 것이다. 진행자에 대한 인건비와 운영단체에 대한 지원금을 추가하면 2억이 되지 않는 수준에서 이 프로그램은 운용이 가능하다.
 
방학 때가 아니라 연중 운영한다고 하면 6억원이 된다. 서울시에 25개의 구가 있고, 서울시에서 절반, 구에서 절반의 예산을 배정한다고 하면 각 구청에서는 3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구별로 100명의 아이들에게 수영과 점심을 해결할 수 있고, 몇 가지 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연말에 보도블록 새로 깔거나 중간에 새어나가는 정말 택도 없는 돈들을 조금이라도 가난한 아이들에게 눈을 돌리면 사회에서 해줄 수 있는 것들은 많아보인다.
 
그래도 조금 넉넉한 주부들이나 운동하고 싶어하는 노년층들이 많이 이용하는 수영장의 작은 한 구석을 아이들에게 내어줄 수 있을 정도의 넉넉함으로 이 도시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길을 잃고 있는 아이들이 작은 희망이라도 경험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주위의 활동가들에게 얘기해보니까 좋을 것 같다고 하기는 하는데,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되겠느냐? 어려운 질문이지만, 이 정도는 될 것 같아보인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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